스스로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피하는 편이 좋다.
한 사람이 가지는 진지함의 정량은 제한돼 있어서 자신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남에게 쓸 진지함이 없다.
--존 코널리--
난 어제부터 영어이름을 존 하(John Ha) 라 쓰기로 했는데,오늘의 명언은 이름이 같은 존 코널리다.
좋은 미개인 하 상욱이란 뜻으로 작명한 것이다.
우리 딸들은 하이 나래,하이 누리이다.애비가 하가이고 에미가 이가이니 애비 에미의 성을 다 쓰면 자연스레 한국이름이자 미국식 이름이 된다.
Hi! Narae,Hi!nuri! 순서를 바꿔도 ,나래,하이! 누리 ,하이!가 된다.
이혼 전에 개명을 해주고 싶어했는데,녀석들이 어색해해서 지어만 주고 결정권은 녀석들에게 줬다.
작명소나 차릴까?^*^
지나치게 진지하고 신중한 사람이 있다.자기 자신에게...
그러다보니 남에겐 신경을 쓸 생각을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옳은 길을 걷는 건 분명한데,다른 사람에의 배려는 없는...어딘지 인간미가 안 느껴지는 그런 사람.
위의 말이 아니어도 그런 사람의 곁엔 친한 사람이 없어 보이고,그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것 같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것 못지 않게 경계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은데...
항공사진 분야의 개척자인 알프레드 버크햄은 '신중함의 끔찍한 대가는 무미건조함이다'라고 했단다.
실수와 실패,그리고 위험을 가능한 한 멀리 하려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다보면 ,
무난한,평범한 생을 살 수는 있겠으나 ,그 대가는 끔찍한 무미건조함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선 그런 무미건조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대접을 받으며 본보기가 되고 있다.
100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무난한 ,무미건조한 삶은 더 이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뒤안길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가령,대기업의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있다가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되어 자신의 능력을 가일층 계발하고
은퇴후 노년기를 더욱 풍성하게 가꾸는 계기를 마련하여 방송으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힌 서 상록씨나,
휠라의 윤 윤수씨처럼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치밀한 추진력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우리 앞에 놓인 무한한 가능성의 장을 ,장르를 불문한 자신만의 특기로 자신의 성공의 장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만은 절대 안 될 거야,자포자기하고 자조하며 가라 앉는 데만 몰두하는 사람들 또한 왜 이리 많은지...
고민 끝에 둔 수가 최악수인 경우를 겪어본 경험은 없는지?
안정만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 그런 경우일 수 있다.
잘 되는 업종을 찾아 신중하게 아이템을 정하고 막상 뛰어들어 보니 ,이미 상투끝을 잡은 꼴이 돼선,
회복불능의 피해를 당하곤 ,조루증에 걸려버려서 더 이상의 도전의지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도 십몇 년 전의 쓰라린 경험이 있는데,지나치게 신중한 탓에 자초한 최악수였다.
평소 투자나 투기엔 무관심했고,비난 일색의 태도를 견지하며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려는 철학을 고수하던 중.
평소 정이 들어 이 곳에 뼈를 묻고 싶다고 생각해 왔던 주변에 개발의 거품이 끼기 시작하면서 나의 성과를 왜소화 시키고 있을 때,
기어이 그 투기의 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말았으니,친척 중에 부동산 경매를 업으로 하는 이에게 일임을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당시로선 나의 전재산이다시피 한 2억여 원을 대출까지 해서 불려 달라고 맡겨 놓곤 몇 년 만에 홀라당 날리고 말았으니...
그럴 수 없는 사람이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도 적은 돈이라고는 할 수 없는 돈을 흔적도 없이 잃고 만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수업료로 생각하고 말았더랬는데,맨손으로 일어나기 시작하던 즈음의 손해라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이후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고,모든 일의 책임은 나에게 있음을 깨닫곤 직접 역량을 갖추지 못한 분야엔 눈을 돌리지 않게 됐다.
최근들어 법적으론 전혀 무지할 뿐인 상태에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알아보고 직접 부딪히며 배우듯 법원이나 경찰서,검찰을 드나들고 있다.
사업에,살림에,작은 농사에,시위에,법적 투쟁까지 ,오로지 나홀로족이 돼 버려서 사실 벅찰 수도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진지하려 하지 않고,까짓 것 뭐 별 거 있겠냐며 즐기듯 경험해가니 그럭저럭 재미도 있고 견딜만도 하면서 스스로를 보다 높게 평가하게 된다.
지금 열독 중인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의 저자인 존 맥스웰은 말한다.
"위인들이 위대한 까닭은 무언가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 아니라,안정을 버리고 인생을 바쳐 무언가를 성취했기 때문이다."
그들 위인들이 처음부터 위인이 돼야겠다며 그렇게 살았을까?
안정보다 ,가치를,의미를 추구하며 애를 써서 성취를 이룬 끝에 후세에 평가를 받게 되고 위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일 것이다.
가치나 의미는 그닥 멀리 있지 않다고 본다.
세상의 객관적 가치관에 자신을 꿰어 맞추는 데 올인하느라 자신의 자존감을 묻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당부하고 싶다.
물론 나 자신에게도 당부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요즘 환호하고 있는 ,나로선 생전 처음 팬클럽에까지 가입하며 환호를 했던 나의 스타 안 철수가,
의원직이나 대통령직을 손에 넣기 위해 ,기득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의 인생을 걸 만한 의미심장한 성취를 위해서 ,조금만 더 크게 생각해주길 부탁하고 싶은 것이다.
최근 두 번의 대통령이 스스로 던져버린 한국 현대사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반면교사 삼아주길...
지금 우리 국민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대통령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영웅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길...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정권교체를 시켜주고 10 년을 기다려 줬다가 실망을 하곤 다시 후퇴의 선택을 하며 좌절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 철수 현상의 열매를 기대하며 반신반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 간과하려는지?
당신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안 철수 당신 앞에 놓여있는데,왜 딴전인지 원~
이제 겨우 50대 초반인 그가 왜 이리 서두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는지...
기존의 틀이 잘못됐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왜 그 틀에 자신을 꿰어 맞추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100세시대다.
왜 60대가 넘어가면 대통령쯤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이제 막 절반을 살았을 뿐인데,급속히 노령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벌써 완성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곤 생각지 않는지?
왕초보 정치인이 왜 기존의 구렁이들의 놀음판에 끼어들어 놀아나려고 하는지...
늘 하는 말이지만,지구촌의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조해내서 세계적인 귀감이 될만한 성취를 꿈꾸어볼 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두 딸들도 ,나의 훌륭한(?) 작명솜씨로 얻어든 이름을 당당하게 등록하고,
'하이'( Hi )란 성을 지구촌에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솔직히 꿈꿔본다.^*^
다음 블로그 '미개인의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