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끝이고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의 예술인생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발레리나 강 수진--
보통은 얼마만큼만 이루고 나면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파라다이스에서 꿈꾸듯 살고 싶다고...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고 싶다고 목을 매고 일을 하면서도
정작 그 목적하는 바를 이루고도 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이룬 것들에 파묻혀 죽어가는 쓸쓸한 모습,모습들...
가질수록 그 가진 것들로 인해 힘들어 하게 생겨먹은 우리네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려,
법정 스님은 그토록 맑고 깨끗하게 살아 보이시고 가시면서 '무소유'의 본보기를 보이셨건만,
여전히 자유롭기 보다는 소유의 종이 되어 몸도 마음도 내주고 싶어하는 사람들 일색이라니...
소유한 양으로 평가를 하는 세상이라며 그 세상의 틀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의 인생은 내던지다시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나 혼자 살 수는 없는 인생이기에 나의 또 다른 분신을 위해서라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내달려야만 하는 슬픈 자화상이다.
혼자 살아보니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형식적이기만 한 그 흔한 사랑의 격식이 갖춰지지 않으면 왠지 잘못 살고 있는 것만 같아 거듭해서 상처를 향하는 모습들도
나의 욕망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려 물불 안 가리는 것과 같으니...
혼자 있으며 자유로운 나만의 인생을 향유할 시간이 많아지며 한결 행복하단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집안 어딘가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아주 짧은 동안만이라도 명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고 권유를 하는 걸 게다.
자연 속에 푹 파묻혀 인생공부를 하는 고고한 수도인들의 인품이 ,그들이어서가 아니라 그래서라고 생각된다.
법정 스님이 그래서 그리도 사람들을 피해 더 깊이,더 멀리 피해다니려고만 했던 건지도...
그런 그를 외롭지 않냐고,고통스럽지 않냐고 저마다의 기준으로 평가를 해버리며 생각해준답시고 기어이 찾아다녔던 것이...
그런데도 따로 말로 하지 않고 더욱 안으로만 잦아들며 행복의 길을 가셨던 스님은 어쩌면 가장 이기주의적인 분이었는지도...
가끔 법문을 펼치는 것으로,그리고 글로 사람들을 일깨우려다 가신 스님은 가장 본능에 충실한 분이었는지도...
자신의 주제를 일찌감치 파악하여 분수껏 최선의 삶을 살아보여 주시고 가셨는지도...
어차피 인간은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어 하셨을까?
높은 산에 올라 아래를 굽어볼 때의 자유자재함이 그 분의 심정이었을까?
나도 환갑을 전후해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짚시처럼 본능이 시키는대로 따르면서 살고 싶다.
지금이라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그 시선들로부터 자유롭다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모습이 답답하다.
다 벗어버리고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하며 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간마다 주어지는대로,발길 닿는대로 헤쳐가며 나만의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발레리나 강 수진은 발레라는 예술에의 추구가 그것이었을까?
난 특별한 재능도 없는 인간이어서일까?
그저 닥치는대로 해치고 다니며 ,안주하기보단 새로운 현실에 부딪혀가며 무식하게 살고 싶다.미개인처럼...
중학교 때부터였을 거다.
미개인이란 애칭을 쓰기 시작한 것이...
미래를 개척하는,인간적인,참으로 인간적인 인간이 되잔 의지를 담았다.
덜 깨서 깨고자하는 강한 의지를 담아 보기도 했었지.
그 때 이미 나의 이 미개인적 삶은 결정된 것일까?
펜팔을 하면서부터 아호처럼 소중히 이름 앞에 내걸곤 했던 未開人!
37 년째 소중히 간직해 온 이 애칭이 난 참 좋다.
잘나지 말라고,소박한 것으로 만족하고 살라고 ,운명적으로 내게 와준 것은 아닐까?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성명학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운명을 스스로 택하게 되는 것이 애칭이 아닐까?
법명이나 아호,카톨릭 신자들의 본명...그런 것이 그런 애칭일텐데...
그런데 법명이나 본명이란 것 역시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라 선승이나 부모들로부터 받는 경우가 아닌가?
그런데 나는 누구의 강요도,권유도 없이 사춘기였던 그 때 스스로 차고 앉아버린 것이다.
미개인이길 거부하고 문명인처럼 가식적이고 계산적인 삶을 추구하는 순간,미개인의 인생은 끝인 것을 스스로 정한 것인지도...
그래서 지금 이렇게 미개하게 살아가는 순간이 평생 어느 순간보다 행복한 건지도...
법정 스님도 계를 내려주신 선승께서 법의 꼭대기(法頂)에 서보라고 지어 주셨을 이름대로 살려 애쓰다가
그 법의 절정에 무소유가 있음을 알리고 가장 법정답게 살다 가신 것은 아닐런지?
저마다 이상을 ,꿈을 애칭에 담아서 그 애칭답게 죽는 순간까지 살다가 가면 좋지 않을까?
강 수진은 애칭을 발레리나로 정하고 발레리나답게 살다 죽고 싶은 것인지도...
이 세상 누구보다 가장 그 애칭이 뜻하는대로 살다가 죽는 것으로 목표를 정하고 살아간다면
잔인하리만치 고통스러운 현실이 어쩌면 밝은 나만의 무대로 보이며 신이 나고 마구 날뛰듯 살게 될지도...
나답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