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08

현재는...


BY 미개인 2014-03-06

현재를 잃어버리는 것은 모든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영국 속담--

 

과거는 부도난 수표,미래는 약속 어음,오로지 현재만이 마음껏 쓸 수 있는 현금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이런 사실을 잘 안다고 자부하고 싶었는데,요즘 심한 몸살을 앓으며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그렇지 만도 않은 나를 발견한다.

여전히 부도난 수표를 불태워버리지 못하고 고이 보존하며 살아나주길 고대하고 있기도 하고,

백지수표랄 수 있는 어음 쪼가리 하나 들곤 영의 자릿수를 몇 개로 할까 ,눈을 게슴츠레 뜨곤 실실대고 웃는다.

그러는 사이 현금은 손가락 사이로 ,뚫어진 호주머니 아래로 줄줄 새나가고 있구나....

건강을 잃고 몸져 눕게 되면서 생긴 의외의 모습에 스스로 화들짝 놀라고 있으니...

 

늦은 오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밀린 일도 하고,텃밭에 나가 삽질도 하고,근처 논바닥에 주저 앉아 파릇파릇 돋아나오는 부드러운 풀도 뜯는다.

작년말과 올초,두 해에 걸쳐 요술처럼 나타나 준 사랑스러운 토깽이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출장을 가는 길에 약수도 좀 뜨고,물이 차는 동안 근처 산자락에서 토끼들의 양식을 마련한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녀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나와준 풀친구들이 고맙기만 하다.

야금야금 뜯어모으고 있는데,매애에~~~낯익은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근처의 고객의 집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인데,지금은 안 기르고 있는 걸로 아는데...?갸웃거리며 염소 우리가 있던 곳으로 가 보니...

와우!어제나 오늘 태어났을 세마리 새끼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웅크리고 있고,최근 한 달 사이에 났을 두 마리와 한 마리 새끼들이 깡총거리고 있다.

애비 한 마리와 에미 세 마리가 우리 안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토끼 주려고 뜯었던 풀들을 녀석들에게 헌납하고 맛있게 먹는 표정을 보며 잠시 추억에 젖어본다.

평생 낫질이라곤 해보지도 못하던 내가 아버지의 염소 수십 마리를 얼떨결에 떠맡아선 일도 못하고,몸은 몸대로 축났던 ...ㅠㅠ

야반도주를 해서 3교대 공돌이 생활을 하면서,막간의 시간을 아까워하다 새끼 염소 서너 마리를 먹이기도 했었다.

새끼가 새끼를 낳고,포동포동 잘 컸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새벽,도씨께선 흔적도 없이 가져가시고...에효!

 

남의 집 창고를 뒤져서 낫이랑 삼태기를 들곤 풀이랑 나뭇잎이랑 뜯어다 주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주인양반이 나타났다.

항암치료로 힘들어하는 줄 알았는데,운동 삼아 기르면서 매일 청소라도 해준다고 했다.

사료만 먹던 녀석들이 파릇한 풀잔치에,마른 참나무 이파리 등을 먹으며 신이 났다.깡총깡총...

녀석들이 기분이 좋아지면 폴짝 뛰어오르며 몸을 비틀어대는데...경쟁적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깡총댄다.

자주 들러야쥐~^*^

 

아무래도 전원생활을 하며 여러가지 짐승들을 서너 마리씩 기르며 유유자적할 팔자인데...

아직 못해본 방랑을 원없이 하면서 전국적 서명 독립운동을 해 보고,노상객사할 운명이 아니다 싶으면 심심산골로 접어들어야겠다.

토끼랑 염소,강아지,고양이,화초닭을 몇 마리씩 사들고 들어가서 약간의 텃밭을 일구면서 살아가면 자급자족도 할 수 있고,

녀석들과 나의 배설물을 잘 발효시키면 화학비료나 농약없이도 유기농으로 자체 먹거리는 조달 할 수 있다.

아직도 엉터리 농군이지만,그래도 처음보단 아주 쓸만한 농군이 돼 있다.

'현재'라는 현금을 향유하기에 농사만한 직업이 있을까보냐고 평소에 늘 생각해왔는데,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못한 걸 한탄해왔던 적도 있었는데...

 

농사나 지어볼까?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정말 위험천만한 소리다.

대충 하고 싶을 때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려는 생각으로 대들었다간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다.

농사야말로 저 영국속담이 그대로 적용되는 직업인 것이다.

파종시기를 놓친다거나 ,물꼬를 제 때 터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제 때 거둬주지 않으면 망치는 경우가 많다.

감자나 마늘을 하지 전후헤서 수확하지 않으면 1년 농사를 망치게 된다.

 

오늘은 이래저래 '현재' 공부 한 번 근사하게 잘 했다.

'현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건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절실하게 깨달은 하루였다.

올 늦가을에 독감예방 접종 소문이 들리면 꼭 접종해야지!


http://blog.daum.net/migaei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