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신랑은 항상 위기상황에 대비하는 사람입니다.
전쟁이 나지 않을까. 지진이 나지 않을까,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불이 나지 않을까. 강도를 당하지 않을까..
이런 저런 걱정들로 매일 매일 무엇인가를 사들이죠.
우리 신랑이 주로 보는 책은 "생존의 법칙", "세상의 종말에서 살아남는 법" 같은 거에요.
이런 책은 읽으며 줄 긋고,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저에게 한 마디 하죠?
우리 "방독면 사야하지 않을까?"
저는 사실 모든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어떤 상황이든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그러니 처음엔 남편의 생각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과 5년 살다보니 저도 비슷해져가는 것 같아요.
저희 집엔 가방이 두개 있습니다.
하나는 차안에, 하나는 작은 방에..
이 가방 안에 뭐가 들었냐구요.
그 속엔 구급약 부터 코펠, 고체연료, 침낭, 각종 식량(육포, 옥수수콘, 참치, 건조 식품 등), 위급시 사용할 칼, 후레쉬, 나침반, 호일(?)로 된 얇은 침낭 등이 들어 있어요. 정수장치도 하나 사고 싶다 하네요.
항상 차 트렁크에 실고 다니는 걸 본 저희 도련님께서 한 마디 하시더군요.
"형아차는 물로 가나? 뭐 이렇게 무거운 걸 매일 싣고 다니노?"
그런데 그 뿐 만이 아니예요. 저희 집에 소화기는 4개가 있습니다. 원래 있던 것 하나에 추가로 3개 더 구매했구요. 하나에 7만원이 넘는 방독면도 2개 샀어요.
산소캔도 구매하자고 하는 걸 간신히 말렸지요.
그 뿐 아니라 저에게는 방범용 스프레이와 위기 대비용 봉도 사주었는데요. 저는 그걸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우리 신랑은 안 가지고 다닌다고 늘 걱정하구요.
그리고 신혼 초에 칼도 하나 사자고 하는 걸 말렸어요. 길이가 좀 긴 것인데, 그건 사면 신고도 해야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무서워 안된다고 했는데, 언젠가 모르게 신고 안해도 될 만한 크기의 칼도 구매했네요. 그리고 자동차 앞좌석에 넣어두었어요. 위기 상황이 오면 사용하라고..
이런 신랑을 보며 참 걱정도 팔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죠.
그런데 이젠 저도 닮아 갑니다.
쌀이 좀 떨어질라 치면 " 여보, 쌀 사야되지 않을까? , "라면도 모자란 것 같은데 한달을 버틸려면.."
몇 년 전 연평도 도발 일어났을 때는 신랑한테 전화해서
"여보, 우리 빨리 밑으로 내려가야하는거 아니야? 전쟁나면 어떡해" 했지요.
그랬더니 오히려 남편이 안심시키더군요.
"그렇게 쉽게 전쟁 일어나지 않으니깐 걱정말고 있어. 빨리 마치고 갈게" 하구요.
이래서 부부인가 봅니다.
오늘도 저희는 유통기한 지난 육포를 먹으며, 마트가서 새 육포를 사서 옵니다. 비상가방에 채울려구요.
매일 위기상황에 대비하는 우리 신랑과 거기에 맞장구치며 살고 있는 저희 부부, 특별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