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와이프의 별명은 '아차'입니다.
하도 깜빡 깜빡 잘 잊어버리고, 자꾸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
많은 여자들이 출산하고 나서 건망증이 심해진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제 와이프의 경우는 해도해도!!! 정말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반면 제 별명은 '철두철미' 입니다.
무엇을 하든 미리 일의 중요한 순서대로 정해놓고 그것 대로 체크해가면서
준비합니다. 하다못해 운전의 경우도 머릿속에서 미리 어떤 길로 갈 것인지
체크해놓기 때문에 네비게이션도 필요치 않습니다.
차를 갖고 외출할 때는 교통상황이 어떤지까지도 미리 교통정보나 인터넷으로
실시간 도로상황 검색을 하기 때문에 약속시간에 늦어본 적도 없습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사야할 품목과 최근의 가격시세, 인터넷 최저가 까지 모두
체크하기 때문에 손해보고 물건 사는 경우가 없고
어떤 카드를 사용해야 더 할인받고 캐쉬백이 되는지까지도 철저하게 생각해서
사용합니다.
그런 성격이다 보니 와이프의 이런 건망증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됩니다.
같이 외출이라도 하려면 미리 시간을 알려줘야 합니다.
워낙 잊어버리고 깜빡하고 가는 것들이 많아서 미리 챙기라는 의미에서
시간까지 알려주는데도 불구하고
신발 신고 현관을 나서면서도
'아차!? 휴대폰 놓고 왔어.' 하고는 다시 집에 들어갔다 나오고
문 잠그려고 하면
'아차! 음식 쓰레기 나가는 길에 버리고 가야하는데... 음식쓰레기 들고 나올께 기다려'
하고는 다시 들어가고...
다시 문 잠그려고 하면 '아차! 나 자외선 차단제 깜빡하고 안 발랐어.'하고는 도로 들어갑니다.
참다 못해서 '깜빡 했으면 그냥 가자' 하면
'안돼. 나 햇빛 알러지 있는 것 알잖아.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하면서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립니다.
엘레베이터가 오는 시간까지도 계속해서 집을 들락날락
그러기를 몇번을 또 반복합니다.
아내의 이런 성격을 알기에 외출시에는 만약 1시에 출발해야 한다면
아내에게는 12시 30분에 출발할거라고 미리 앞당겨서 이야기합니다.
그래야 겨우 출발시간을 맞출 수 있으니까, 이것도 제 나름의 철두철미한 분석에 따른 노하우입니다.
그래놓고 차 출발해서 좀 달리다 보면
'여보야, 내가 가스불 중간 밸브 잠갔던가?' 하면서 제게 묻습니다.
헐... 제가 미칠 노릇입니다.
예전에는 이사가기 위한 집을 알아보려고 다른 동네에 있는 부동산까지 와서
집보고 다니는데 갑자기 '아차! 나 빨래 삶는다고 불 올려놓고는 안 끄고 나온 것 같아. 어떻게 해?'
하는 바람에 집 보다 말고는 후다닥 다시 차 타고는 집으로 되돌와 왔던 일도 있습니다.
와서 보니 다행이도 불 끄고 중간밸브까지 잘 잠갔더군요.
그 다음부터 외출할 때면 제가 맨 마지막으로 집안을 다 살피고 나갑니다.
깜빡증과 함께 물건도 잘 잃어버려서
외출할 때면 가방이고 지갑이고 아무것도 들지 못하게 합니다.
사실 지갑도 잃어버리기를 몇 번 해서 그 다음부터는 와이프에게 지갑을 사주지 않고 있습니다.
귀중한 것들은 모두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라고.
와이프의 '아차' 대신 와이프가 챙겨야 할 것들을 제가 챙기고 다니다 보니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인지 제 머리카락은 30대 중반부터 머리가 하얗게 세더군요.
와이프한테 그런 불평을 이야기 하니 와이프는 자기는 자신의 건망증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인지 '철두철미'하게 하나부터 백까지 모든 것을
다 신경쓰는 제 성격탓이라고만 합니다. 참나.
결혼생활 15년동안 '아차' 와이프 챙긴 제 노고도 몰라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