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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완성


BY 미개인 2014-05-24

백 명의 환자를 무덤으로 보내야만 유명한 의사가 될 수 있다. 

완성의 순간에 도달할 때까지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그라시안--

 

그라시안(1601~1658) 스페인.철학자.작가.

간결하고 미묘한 언어 속에 과장된 재치를 담아내는 사유양식의 하나인 스페인 콘셉티스모의 대표자로 알려져 있다.

칼라야투드와 사라고사에서 공부한 뒤 18세 대 예수회에 들어갔고,뒷 날 티리코나 예수회 신학교 학장이 됐다.

초기작은 대개 세속생활의 윤리를 가르치기 위해 쓰여졌다.

깜짝 놀랄 만한 은유를 사용해 끊임없이 독자에게 충격을 주는 기발한 작법과 콘셉티스모에 관한 그의 문학사상은 

'미묘함과 천재예술'이란 작품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상급 성직자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익명으로 발표한 '비평쟁이'는 쇼펜하우어로부터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그라시안은 야만인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면서 의지력과 투쟁을 강조하는 자신의 염세주의 철학을 매우 분명하게 표현했다.

 

17세기의 의학수준으로 봤을 때 백 명의 환자를 무덤으로 보내고 나서야 유명한 의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당연한 것인지도...

물론 지금에 와서 그런 주장을 펼친다면 큰 일이 나겠지만...

그만큼 많은 공부와 경험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일텐데...

오늘로써  단국대학교 치대병원과의 투쟁이 2주일째로 접어든다.

엊그제부터 새로 써 붙인 피켓의 내옹은 ,

'대학병원들의 2년차 전공의의 평균보수가 시급으로 환산해서 5885원이랍니다.믿을 수 있습니까?'라는 것이다.

전공의 자격증을 딴 초보 의사들을 환잔들에겐 의사라고 내보이며 사라고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초보 의사들에겐 박봉이긴 하지만 긴 안목에서 봤을 땐 돈을 내지 않고도 많은 환자들을 경험할 수 있으니 박봉도 감지덕지하라고 할까?

한 마디로 환자들은 초보 의사들의 실습도구인 셈이고,대학병원들의 돈줄일 뿐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국대학교 치대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이란 곳의 만행이라니 개탄스럽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학병원들의 이런 행태에 피해를 당하고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듯 끙끙대고만 있는지를 최근에야 알게 된 것이...

시위 현장에서,온라인에서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해주며 ,자신들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임을 고백(?)해 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억울하지만 공룡과 병아리의 싸움일 것이 뻔하다며 지레 투쟁하길 꺼리면서  저들의 기고만장을 극에 달하게 만든 것인데...

언론들에도 이슈화를 도와달라고 청해보지만 꼴랑 한 군데서 시늉만 해주곤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미개인인 나는 이 뙤약볕을 피해다니며 단국대학교 치대병원 앞을 지키고 있다.

미개인의 때묻지 않은 순수성과(?) 계산하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부딪히고 보는 무모함으로  고발하고 있다.

친일 매국노들의 비리와 타협하는 세상의 비겁함을,대학병원들의 겉만 번지르르한 행태에 속고도 저항하지 않는 현실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소수가 촉발한 불쏘시개가 지금껏 사회를 변화시켜온 것이라 믿기에...

언감생심 그런 대단한 결과를 이루리라곤 상상도 하지 않지만 ,분수껏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친일 매국노를 척결하자고 외치는 1인시위를 하고 있고,어마어마한 공룡과도 같은 대형 대학병원의 입구를 지키며 2주째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참 많은 손해를 보고 있지만,그 행위들이 전혀 개인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거기서 느끼는 보람은 그것을 충분히 보상을 해주고도 남는다.

오죽하면 과거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민주화를 위하여 총칼에 맞선 순국선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는 말을 할까?

 

시위 현장에 화물차를 몰고 가다 한 주요소에 들렀더니 반색을 해준다.

'매일 지나다니시더니 처음으로 들러주시는군요.'하면서...

그래서 주유를 하는 동안 서명철을 내밀며 서명을 부탁했더니 쭈삣쭈삣 물러서며 얼버무리고 만다.

남이 하는 건 대단하다며 고마워는 하면서 정작 자신이 나서는 건 망설이는 걸까?

뭐가 두려운 걸까?

그러다 세상이 좋아져서 보다 많은 걸,나은 걸 누리게 되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말겠지?

우리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고,하고 싶은 말을 해가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이전의 누군가의 희생의 덕분이란 걸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꾸벅 고맙다고 묵념이나 하고 말면 도리를 다 하는 것일까?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아도 좋을 만큼 충분히 이상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들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데 왜 행복지수는 예전보다 훨씬 낮기만 한 걸까?

감을 키우고 깎아서 건조를 시키는 수고로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먹기엔 곶감이 최고라며 빼먹기만 하는 몰염치한 행위는 아닐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 곶감이란 것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지도 모른다.

먹고는 싶은데 직접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기는 아까워서 가만히 있으면서 ,

누가 나에게 곶감을 갖다 먹여다오~라고 하는 식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는 빚쟁이인 것이다.

그 빚은 후손들에게 갚아야 한다.우리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게 바로 인류의 역사였고,앞으로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는 비법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도리를 다하지 않고 인간으로 대접만 받고 싶어한다면 ,

또 다른, '노스트라다무스'가 등장해   무시무시한 논리를 내세우며 지구의 종말을 예언할 것이다.

위기다.

물신을 숭배까지 해가면서 인명을 경시하는, 가치가 전도된 풍조가 만연한 전사회적 위기다.

그래서 다들 불안해 하고 두려워는 하고 있는데,처방엔 관심이 없이 불안과 공포를 키우는 데만 급급하다보니 ,

구원파와 같은  사이비 종교가 발호하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신앙으로 인정을 받아 온 종교들이 면죄부를 팔고 ,내세를 분양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이 딛고 사는 땅의 법칙은 무시한 채,자신들의 망상만을 추구하며 인류에 피해를 입히는  피해망상,과대망상의 환자들이다.

유 병언이란 희대의 사기꾼이 그런 나약한 민중들의 심리를 이용해 신도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작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불안과 공포의 포로들은 헤어날 줄을 모르고 상식과 도리,법에 저항하고 있다.

이게 다일까?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구원파가 아닌 우리들은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오십 보 백 보 라고 생각하는 미개인이 어리석은 선동자이기만 할까?

 

나에게 빚쟁이란 의식을 심어준 안 철수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사랑과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