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739

경쟁자에게 배우며 살자!


BY 미개인 2014-06-06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장점에 맞서는 방법은,오직 그것을 사랑하는 것밖에 없다.

                         --괴테--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독일.작가.철학자.과학자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재상을 지내기도 했다.

 

르네상스 초기,

예술가의 대다수가 틀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 조각을 하던 무렵,

미켈란젤로는 직접 돌을 쪼아 조각을 하는 방법으로 예술혼을 불태운 것이 진정한 예술혼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듯,

기계로 찍어낸 뇌의 소유자인 듯 비슷한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저마다 개성을 발현하고 발휘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주도하는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새가 제한된 공간인 알을 깨고 나와서 열심히 성장하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만 계속 살 수 있고,너른 세상을 향유할 수 있는 것처럼 ,

씨앗이 껍질을 깨는 고통을 감수하고 거듭나려는 의지를 보일 때라야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

우리들의 삶도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양성을 수용하며 자신들만의 잠재력을 발휘할 때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새가 알 속이 편안하다고 알을 깨는 고통과 불편을 거부하며 버티다간 곯아버려서 생명을 다하고 말 것이다.

씨앗이 껍질을 깨는 아픔을 거부하다간 생명력을 잃고 썩어 없어질 것이다.

그처럼 인간이 인간이길 거부하고 일정한 틀의 부속품처럼 안일을 추구하다간 짐승이나 노예로 전락하여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어떤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비슷한,똑같은 생각을 강요하며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갑'의 ,가진 자의 ,권력자의 폭행에 다름 아니다.

'남들이라고 다 이러고 사는데...'하면서 레밍쥐처럼 인간성 상실의 행렬에 기꺼이 동참한다.

그리곤 차마 어쩔 수 없는 인간적 존재감에 불평불만만 토로하며 절규를 하고,

그런 획일적인 삶을 강요한 권력에,갑에,가진 자에게 책임지라고 고함을 쳐대지만 ,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왜?"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누가 따라오라고 했느냐며 ,스스로 알아서 따라온 네가 책임지라며 외면한다.

하지만 남들 뒤를 따라가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과 두려움에 빚을 지고 사교육으로 자식들을 괴롭히며 뒷감당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십억 명의 인류가 모두 다른 상태이니,다양성을 존중하지 않으면 사회는 원론적으로 존재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잘난 사람도 있고,부자도 있을 수 있으며,존경을 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못난 사람도 있고,가난한 사람도 있으며,비난을 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잘난 사람은 나쁘고,까짓 부 따위 별 것 아니라며 멸시하고,존경받는 이를 잘났다고 비아냥대서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비난하는 대신 나와 다른 그들의 능력과 인품을 사랑하는 것만이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괴테는 가르치고 싶은 것이리라.

상대의 뛰어난 재능을 사랑하여 흠모하고,배우고 ,훈련하고,향상시켜 그의 재능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그의 부를 사랑하고 비결을 들으려 애쓰며 나에 맞는 비법으로 체화시켜 나름대로 부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고아한 인품을 사랑하여 인격수양에 힘쓰고,도리를 추구하며 살면서 그보다 더 큰 존경을 받으라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비난만 하고,질시를 한다면 내게 무슨 도움이 될까?

살짝 같잖은 자긍심을 느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인간성만 험악해져갈 뿐일 것이다,

 

자신만의 특출난 재능을 살리며 행복하게 성공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글로 써서 내놓는 것들이 차고 넘친다.

당신들도 나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내가 그랬듯 당신들도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라고 권유하고 싶은 것이다.

경쟁과 비교의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걷는 자들의 여유 내지는 자선이라고나 할까?

조금만 부지런하고 약간의 댓가를 치루면 그들의 진솔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 세상이다.

배우고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어 얼마간의 것을 이루고 나면 나누고 향유하다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처럼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을 향유하고 나누고 싶어하는 것까지를 틀렸다며 비난하고 비아냥대서야 어디 사람이랄 수 있을까?

 

그러나 정도를 걸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바르게 배우고,바르게 익혀서,바르게 이루고, 올바르게 쓰며 나눌 줄 알아야 한다.

불공정한 방법으로 출발하고,남에게 피해를 줘가며 이룬 것은 정도가 아닌 것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심판의 눈을 피해 살짝 저만치 앞에서 뛰어 1등을 하곤 ,심판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나대는 인간들이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

후배들에게,후손들에게 너도 적당히 불법,편법으로 이기고 보라고 가르친다면?

 

인간적으로 살려면 얼마간의 껍질을 깨는 아픔은 감수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살고,원칙을 지키며 공정하게 경쟁하고,내가 중요하듯 남도 그들의 삶에선 중요하기만 한 존재들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런 원칙을 강요한다고 해서 ,잘난 척 좀 그만해라,남들이라고 다 도둑질하고 사기치며 사는데,왜 나더러만 성인군자처럼 살라고 하느냐며 비난을 한다면?

자기가 도둑질로,탈세로,편법으로 돈을 벌었다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으려니 여긴다면?

 

그리고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다.

적절한 선에서 자제할 줄 알지 않으면 제 아무리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지고 누린다고 하더라도 그는 가난뱅이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예 욕심이 없다면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가난뱅이로 비참하게 살게 될 것이다.

당장 이건희를 보라.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면서도 욕심을 부려대며 ,더 큰 부를 좇고,나누는 데 인색하며,불법,편법으로 자신의 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치더니,결국 의식조차 없는 상태로 ,자신이 이룬 것을 병원비로 쓰는 게 고작이지 않은가 말이다.

한참 손주들 재롱이나 보면서 행복해하고,유유자적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황혼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며 살아야 할 때에

자신이 이룬 것으로 인해 전과자가 되고,비난을 받고,결국은 추한 꼴로 답답한 병실에 누워 식물인간으로 연명을 하고 있다니...

그가 부러운가?

무소유를 주창하며 평생을 검약하게만 살면서  자신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려면서 이룬 즉시 나누며 살면서 

삶에 순응하며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다 ,죽어서도 어떤 흔적도 남기길 거부하며 자신의 저서 일체를 절판선언하고 한 줌 재로 돌아간,

법정 스님이 훨씬 아름다운 ,바람직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미개인은 그저 미개하기 때문일까?

황야의 야생마처럼 권력의 총칼 따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호령을 내리다 돌아가신 함 석헌 선생님이 훨씬 아름다운 인생을 살다 갔다고 생각지 않는가?

모두에의 사랑을 최고 목표로 삼고 바보처럼 살다 가신 김수환 추기경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도 그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향유하다 갈 수 있으니...

그 아름다운 인생들과 맞서보자.

미워하고 질시하지 말고 그것들을 사랑하고 배워서 나만의 경지로  체현시켜보자!

 

http://blog.daum.net/migaei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