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배우고,자세히 물으며,깊이 생각하고,분명히 분별하며,꾸준히 실천하라.
--주자--
주자(1130~1200) 중국 남송의 유학자.주자는 존칭이고 본명은 주 희다.
중국 복건성 우계에서 태어나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맹자,공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고대 경전을 탐독하고 풀이,주해를 편집하고 공.맹 등의 사상을 풀이했는데,이것이 하나의 학문이 되어 성리학으로 발전했다.
주 돈이 ,정 호,정 이 등의 유학사상을 이어받았다.
유학을 집대성하였으며,오경의 진의를 밝히고 주자학을 창시하여 완성시켰다.
그는 주렴계,정주로 대표되는 이전 송학의 흐름을 이어받아 이를 집대성하고,
종래 유교가 불교,도교에 비해 사상적인 약점이었던 이론적 결여를 보완하는 우주론적,인간론적 형이상학을 수립하게 된다.
이로써 한당의 훈고학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윤리학으로서의 본질을 되찾는 한편,그것을 우주론적 체계 속에 자리잡게 했다.
우주만물을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하학적인 기(氣)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인간의 본성은 선한 理가 발하여 나타나는 것이나,불순한 氣로 인하여 악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 이기이원론에서 강한 영향을 받게 되고,
이러한 이와 기로 이뤄진 우주와 만물이 생성되고 움직이는 운동법칙,원리로서 태극을 제시하게 된다.
젊은 시절 탐독했던 불교와 도교의 사상에서 받았던 영향에서 착안하여 유학의 사상적 ,이학적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것에 기여한 것이다.
이후 주자의 철학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주도 이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후 문공의 시호가 내려지고,다시 휘국공(徽國公)에 추봉됐다.
저 명언은 주자의 삶을 축약한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그 자신, 자신이 잘못 살지 않았다는 믿음이 있었고,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처럼 흠결없는 인생을 살아주길 바라며 설한 말이 아닐까 싶다.
배움이 없다면 우리 인간은 하찮은 짐승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혼자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갓난 아이가 배우고 익히며 점차 사람의 꼴을 갖추게 되고,,
끊임없는 호기심을 발하여 묻고 또 물으며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고,
보고 듣고 배운 것에 대해 생각을 하며 자신만의 경지를 이루고,
그 중 멀리할 것과 본받아야 할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터득하게 되면 ,
이제 비로소 실천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일텐데...
아 사이클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쉬지 않고 업그레이드를 시켜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주자는 그게 바로 인간적인 생을 영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갈파하여 널리 가르친 것이다.
하지만 우린 어떤가?
배우는 것이 따분하고 힘들다 하여 게을리 하고,설사 모르는 것이 있어도 체면이나 자존심을 앞세우느라 묻기 싫어하고,
인문학적인 사고 자체를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하며 생각하는 것을 멀리하며,
인간적인 삶,나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데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남들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부화뇌동하며,
스스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이끌려 살아지는대로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곤 생각지 않는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무의미한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적을 하면
'너나 잘 하세요!'라며 무질러버리고 형이하학적 삶 추구에 온몸을 불사르다가 죽음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아뿔싸...!'하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만다.
지금 당장 죽음에 직면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가까이 법정 스님이나 김 수환 추기경님 정도를 제외하곤 ,정말 ,원없이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살다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하고 있지만,그들의 삶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고 한다면 무섭지 않은가?
'나도 저렇게 살다 가야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두려워지진 않는지?
10여 년 전 ,이웃한 동네의 해준이 할머니께서 재발한 위암으로 임종을 코앞에 두고 어려운 발길을 하셔서 ,
참으로 고통스러울텐데도 불구하고 ,성모 마리아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나를 만나 주시고,이내 돌아가신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얼굴까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의 분위기는 지금도 나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준다.
그 고통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시고,다 성장한 자식 손자들을 걱정하시던 ,당신의 모습이라니...
어려서 어머님을 잃은 나의 휑하니 뚫린 한쪽 가슴을 대신 채워주려던 하늘의 뜻이었을까?
내가 얼마나 더,얼마나 잘 살다가 가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의 사랑스런 두 딸,나래,누리가 주자의 저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고 살아가주길 당부하는 것으로 유언을 대신하고 싶다.
나래야,누리야,이 글 보고 있지?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