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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극복하는 비결은 희망


BY 미개인 2014-08-27

역경은 희망에 의해서 극복된다.

   --메난드로스--

 

메난드로스(BC 342 ?~BC 292 ?) 아테네 .극작가.

고대비평가들은 그를 아테네에서 마지막으로 꽃을 피운 무대 희극인 '신희극'의 가장 탁월한 시인으로 평했다.

그러나 그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닥 주목을 받지 못해 ,100편이 넘는 희곡을 썼지만 연극 축제에서 여덟 번 우승을 했을 뿐이다.

그 당시 희극은 공적인 내용보단 일상생활 속의 허구적 등장인물들을 주로 다뤘으며,합창단의 역할은 대체로 막간의 여흥으로 제한됐다.

로마의 작가인 플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는 메난드로스의 작품을 많이 각색했는데,

그들을 통해 메난드로스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유럽 희극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선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으나 ,일설에 의하면 부유하고 훌륭한 가문 출신이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였던 철학자 테오프라테스의 제자였다고 한다.

생애의 대부분을 아테네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되며,아테네의 항구에서 수영을 하다 익사했다고 전해진다.(브리태니커)

 

불가에선 인생을 사바라고 표현한다.고난의 바다란 뜻이다.

그런 고난의 바다를 헤치면서  자아를 추구하며 자신의 속에 내재된,허공을 떠도는 티끌에도 내재돼 있다는 불성을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고 수련하라고 가르친다.

고난을 헤치며 살아가는 것도 벅찬데,자아를 실현하라는 숙제라니...

그러나 부처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을 보면 속세를 떠나 수도생활에 전념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불만이다.

해탈을 하여 부처의 반열에 오르려면 속세를 떠나야 한다는 것인지,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해탈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사바에서만 허덕여야 한다는 것인지...

신자들에게나 승려들에게 모두 한결같이 "성불하십시오!"라며 인사를 하지만,성불을 하는 경우는 가뭄에 콩나듯 드물기만 하니...

많이는 모르지만,그래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진 모르겠으나 ,불상에 절을 하며 기복을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기독교는 원죄를 말하며 ,죽어서의 천국을 기원하며 선하게 사랑하면서  살다가 내세에 행복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그래서 누구도 증거한 적이 없는 천국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의혹의 눈초리를 던지며 다가서질 못하는 미개인.

그러나 그런 기성 교회들로부터 이단으로 취급당하며 박해를 겪은 끝에 겨우 자리를 잡은 통일교에선 ,

살아서 천국에 살다 가자며 모든 교파와 종교가 전체의 4분의 3의 통일된 교리를 갖고 있다며, 서로 싸우지 말자며,

가정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대규모 합동교차 결혼식을 이끌고 ,순결한 가정의 중요성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

교주 문 선명의 자서전을 통해 본 바로는 냉전의 벽을 허물어뜨린 것도 통일교의 업적이며 

북한의 김 일성과의 만남을 통해 북한을 IAEA에 가입시킨 것도,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이룬 것도,금강산 관광을 제의한 것도 그들의 업적이란다.

현재 북한에서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투자한 평화자동차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그들이란다.

전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하는 이유도 선교를 위한 자금 마련에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 비오는 거리에 내다버린 책을 주워온 것이 문 선명의 자서전이었는데,최근 보기 드물게 진도가 아주 빠르다.

지금으로선 언젠가 종교에 귀의하게 된다면 통일교 신도가 될지도...^*^

해탈에의,천국에의 희망이 있기에 신앙을 가진 자들이 불행해질 위험이 눈에 띄게 낮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무리들을 헛똑똑이라고 잘라말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미개인은 종교를 인정하고 있진 않지만 가슴 깊은 곳에선 어떤 절대자를 경외하고는 있다.

그래서 그 절대자의 존재를 희망의 근거로 삼아 역경을 헤쳐온 것이다.

개신교와 천주교,그리고 불교를 믿어보려 기웃거리긴 참 많이도 했었지만 ,매번 실망을 하곤 말아서 무교를 고수하고 있는 것인데...

개신교의 천국이라고 할 수도 있는 미국에서,교회는 더 이상 종교의 전당이 아니라 사교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마당에

새로운 신앙에의 도전을 하기란 정말 어려운데,사실 삶 자체가 조금씩 벅차오면서 의지할 곳을 찾게도 된다.

어머니의 큰 아버님께서 신부로 사목을 하셨지만 이혼을 하고 돌아가셨고,

아이들의 어머니인 전처도 천주교 신자였지만 이혼을 하자고 해서 성공을 했다.

미사 도중 자신의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를 외치는 과정에 감동을 하기도 했고,엄숙한 미사의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했었지만,결국은 세례를 받지 않았고,

거의 매일같이 교회를 다니며 동화돼 보려고 했지만 ,성당에서보다 더 큰 실망을 안고 물러났으며,

시골의 주지스님이 친구하자며 행자들의 책도 갖다주시면서  정성을 들이셨고,산행을 하면서 ,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기에 만났던 독서친구와 함께 절을 많이도 따라다녀봤지만 역시나...

 

성경도 읽어봤고,불경을 들고 옥편을 끼고 앉아 파보기도 했지만,그 어느 것도 종교로선 부족하단 생각을 하며,

결국엔 철학으로서만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 모든 종교들을 망라하는 절대자에의 동경을 해 왔다.

인간의 삶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기에 최종적인 희망은 신앙에서 찾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어렴풋한 예감은 해보지만,

아직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면서 ,선하게 열심히 살아내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대신하고 있는 중!

선지식들의 일생을 그들의 저서 등을 통해 살피면서 스스로를 살피는 정도로 나만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래서일까?

요즘은 불안하거나 두렵다는 생각을 하는 일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다.

 

일단은 정의가 무엇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 실천하는 것이 현재로선 나의 종교이다.

언젠간 정의로운 세상이 이뤄질 거란 희망이 있다보니 역경을 찾아다니며 깨질 줄 알면서도 부딪치고 보는 중에도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은 

메난드로스의 저 명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치관 내지는 인생관을 정립하는 걸 최우선시하라는 고교시절의 은사님의 말씀이 보약이 됐다.

은연 중에 뇌리에 깊이 새기고 살아온 덕분에,이런 역경에 처해있음에도 아파하지 않고 불안하거나 두렵단 생각을 하지 않으며 행복하다고까지 말 할 수 있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보약이 됐던 그 말씀을 툭 던지듯 일러주신 그 선생님...

강원도 산골에 '호야지리 박물관'을 설립하시고 역사교육과 독도수호 운동을 하고 계시다는데...

늘 건강하시고 안녕하시어 제가 찾아뵐 그 날까지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