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같다. 오르면 오를수록 숨은 차지만 시야는 점점 넓어진다.
-- 잉그마르 베르히만--
잉그마르 베르히만( ? )
따르꼽스끼,파졸리니,브레송,펠리니와 함께 세계영화사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그는,
1959년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였으며,
늙어가는 예술가의 고집스러움과 어두운 전망이 드러난 그의 작품 <가을 소나타>는 베르히만 자신의 고백과도 같은 영화이다.
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 베를린 영화연구소에서 기획한 '7인의 사무라이'에 속했던 감독 중 한사람이다.
국내엔 '5인의 사무라이'란 책으로,상업영화에 맞서 싸운 감독으로 소개되고 있다.
당당하게 늙어라,멋있게 늙어 가자,주름살은 흠이 아니라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는 식의 말들을 많이 들어 왔고,
깊이 공감해 왔으며,나이가 든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본 적이 없으며,
만일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으냐는 식의 질문엔 단호하게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해 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커지는 부담과 힘겨움은 있었으나 ,이전보다 조금씩이나마 시야가 넓어지는 것에 흡족했던 것 같다.
단 하루도 되돌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겹기만 했던 나날들이었기에 현실을 살아가며 조금씩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물론 늘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살아왔던 건 아니지만 ,굴곡을 거치며 삶의 만족도나 성취감은 커져왔던 것 같다.
당연히 후회나 미련도 없다.
물론 예전엔 했던 적도 있었지만,부질없다는 걸 깨달은 후론 그런 쓸데라곤 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물론 오지 않은 미래에의 두려움도 없다.
지금까지 헤쳐온 나날들이 워낙 험난했기 때문일까?
어떤 일이 닥친다해도 감당할 자신도 있는데다,까짓 하는 데 까지 하다가 안 되면 죽기 밖에 더 하겠는가 하는 배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막막하다고 해서 두려워만 하는 것 역시 후회나 미련을 갖는 것 만큼이나 덧없는 것이란 걸 들어 왔고 느껴 왔기에...
그런데 이처럼 과거나 현재,미래에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내 인생이 현찰 인생이어서일 수도 있다.
빚을 져 본 기억이 거의 없고,앞으로도 제아무리 살기 어렵더라도 빚을 져가면서 살고 싶지 않다.
'되는대로 분수껏 살자 !'주의인 것이다.
그러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고,비굴하지 않을 수 있으며,나만의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의 편리와 행복을 위해 미래를 담보 잡힌 삶은 늘 쫓겨야 하다보니 여유를 찾을 수가 없고,삶의 의미까지도 찾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쫓기는 삶을 영위하며 인간성과 점점 멀어지고들 있진 않은지?
양보나 배려는 남의 나라 말이기라도 한듯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며 남을 이용하고 짓밟느라 싸움만 걸어댄다.
내가 30대 초에 '너는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한다!'며 나의 안면에 벽돌을 찍은 가까운 가족의 모습을 보며 치를 떨었더랬는데,
지금은 온통 그런 사람들 뿐인 것 같아 ,세상이 온통 아귀들의 천지인 것만 같다.
때로 마음을 열어보여주는 사람이 있어도 의심부터 하고 보게 되는 덴 이유가 있다.
수없이 많은 배신을 당한 탓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욕심도 없고,혼자 사는 것이 불편하다거나 외롭단 생각을 하지도 않게 된다.
대신 짐승들이나 흙과 자연 등과의 교류가 훨씬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런데도 불편을 무릅쓰고 친일 매국노를 척결하자고,슈퍼갑들의 횡포를 고발하고,버려지는 양심들을 주워 모아 쌓아 놓고 고발을 하는 것은,
아무도 하지 않는 그 일을 함으로써 이런 행복을 안겨주는 세상에의 빚을 갚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 살되,죽을 때까지 은인자중하진 않으리라.
어떤 식으로든 옳은 길을 찾아 헤매고,거기서 얻어지는 나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누며 살다가 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 애써 가리라.
안분지족(安分知足)할 줄 아는 비결을 몸소 살아보임으로써 ,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불행해 하는 대신,가진 것에 감사하며 행복해 할 수 있도록 외치고 또 외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