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인 동시에 친구일 수도 있는 여자가 참된 아내이다.친구가 될 수 없는 여자는 아내로도 마땅치가 않다.
--윌리엄 펜--
윌리엄 펜(1644~1718) 영국.펜실베니아주 개척자.
영국 왕실 해군 제독이었고,아일랜드에 엄청난 땅을 가진 대주주 윌리엄 펜의 아들인 그는,
1681년 아버지가 죽자 ,당시 왕이었던 찰스 2세로부터 뉴욕과 메릴랜드 사이의 넓은 땅을 하사받았는데,
왕의 뜻에 따라 그 지역을 아버지 펜의 이름을 따 '펜의 숲이 있는 곳'이란 뜻의 '펜실베니아'라 불렀다.
그는 영국 프로테스탄트의 또 다른 분파인 퀘이커교로 개종했는데,
중류계급 출신이 많았던 청교도에 비해 그보다 하층에 속했던 퀘이커교도들은, 구원예정설과 원죄개념을 부인했다.
청교도가 신의 전지전능과 정의를 강조하고 인간의 무가치와 무능을 강조했던 반면 ,
퀘이커교도는 신의 자비와 사랑을 강조했고,구원과 저주에 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 각 개인에 달렸다고 보았다.
또한 17 세기에 완전한 남녀평등을 지향했고,계급도 구분하지 않았으며,대인관계에서도 평등주의를 지향했다.
교회 건물이나 행정기구 없이 집회소만 있었고,월급을 받는 목사도 없었으며,철저한 평화주의를 추구하며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종교 탄압을 피해 대서양을 건너온 퀘이커교도들은 추방되거나 사형,교수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신대륙에 먼저 정착한 청교도들이 그들을 증오하고 두려워한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퀘이커교로 개종한 윌리엄 펜의 등장과 펜실베니아는 구원의 땅이었다.
펜은 델라웨어강과 슈일킬강 사이에 그리스어로 '형제애'란 뜻을 가진 '필라델피아'를 만들었는데,직사각형의 거리로 설계됐고,
이는 이후 미국 여러 도시의 모형이 됐고,다른 지역에 비해 빈부격차도 덜했으며,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인 식민지 헌법을 채택했다.
인도주의를 지향한 퀴이커교도들의 땅 필라델피아는 인디언에 대한 양심적인 대우와 흑인 노예에 대한 반대에도 선구적이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 자신의 삶은 험난하고 불행했는데,
정치적 분쟁에 휘말려 반역죄를 뒤집어썼는가 하면, 한때 식민지 소유권을 잃었다가 되찾기도 했다.(위키백과,etc)
퀘이커교라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이 30여 년 전 고 함 석헌 선생의 전집을 통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의 퀘이커의 흔적도 그와 함께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오늘 윌리엄 펜의 저 글을 접하고 그에 대해 알아보면서 퀘이커교에 대해 상기하는 기회를 갖게 돼 함 석헌 선생님을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갑다.
나는 늘 아내에게 친구같은 부부가 되자고 강조를 해 왔다.
피차가 가정 형편 때문에 뜻을 펼쳐보지 못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기에,자녀교육에의 열망도 비슷했고,
뒤늦은 결혼으로 충분한 공감 나눔이 가능하다 생각했기에 ,그리고 온.오프라인으로 사랑을 나누는 과정에서도
싸울 땐 피튀기게 싸우되 뒤끝은 남기지 말자며 확인을 하고 또 했던 터라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는 상황이라 믿었는데,
그래서 치열하달만치 아내와 아이들에게 몰두를 했건만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말았다.
집착이란다.헐~
나의 행동철학이 낙이불음(樂而不淫)인데...즐기되 집착하진 말자는 것이었는데...
지금에 와선 그 어떤 이성적 만남도 회피하는 중이지만,정말 좋은 친구는 하나쯤 만났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그게 남자여도 좋고 ,딸들이어도 좋고,이성이어도 좋지만,하나같이 고달픈 현실 탓만 하면서 이상을 환상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 뿐이어서 기대를 접은 지 오래!
이 세상에 부부같이 좋은 친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가장 많은 정성을 쏟아 부어 결혼까지 한 사람이언만,정작 결혼을 하고나서부턴 잡은 고기로 격하시켜 버리고 미끼조차 주고 싶어하지 않고 ,
어떻게든 내 구미를 채워주는 요리의 재료가 돼 달라고 요구를 해대는 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바깥으로 나돌며 친구를 찾고 거기서 위안을 얻고자 하며,다시 집에 돌아오면 서로를 원수처럼 대하는...
참으로 잘못된 결혼 문화가 아닐 수 없다.
난 폭군 아버지를 어려서부터 보고 자랐다.
아내도 자식도 당신께서 바깥에서 기분을 내시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일 뿐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 휘둘러대는 폭력의 희생양들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아주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존경하는 대신 두려워하고 반면교사로 삼아 아버지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야겠다고까지 생각하는 꼬마철학자가 되기 시작했다.
곱씹고,다른 사람들의 상담사례 등을 보고 또 보며 '나라면...'하는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했다.
인생의 목표도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걸로 삼고 살아왔다.
그러나 누구도 나의 그런 상처를 헤아려주질 못했고,외곬수로 몰아붙이며 비난을 하고 공격을 하기에 바빴으니...
난 늘 외토리였던 거 같다.
글쎄,친한 중학교 친구의 어머니께서 당신의 자식보다 더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셨던 것 같은 느낌을 얻었을 뿐이지만,
그 분도 외화내빈형의 분이었던 남편 때문에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
당시로선 상당한 부의금을 들고 가서 마음 아파하는 나를 보고 친구도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
철이 들어서 그 분처럼 나를 따스하게 품어주셨던 분이 없었던지라 그렇게라도 마음을 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지...
그래서인지 난 어려서부터 연상의 이성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말귀도 통하고 ,어느 정도 성숙한 면도 있어서 나의 치열한 모습을 대견해해주기도 했고,남다른 가정에의 몰두를 어여삐 여겨주기도 해서이리라.
하지만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꼴에 체면치레를 하고 싶어하며 연상과의 사랑을 이루진 못하고,
그나마 좀 철이 들었을 법한 사람을 만나 원숙한 가정문화를 이루고 싶어했지만,
결혼을 하자마자 달라지는 태도에 당황을 하고,더욱 열심히 살고 사랑하면 변하겠지~하는 희망을 걸고 내 몸을 상해가면서까지 몰두를 했건만,
결국은 집착이나 해대는 정신병 환자라서 못살겠다는 식의 대응만 돌아왔을 뿐.
사람은 상황이 변함에 따라 변하는 종족이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고,경제사정이 달라지면 변한다.기분에 따라 변하고,남들의 시선때문에 변하기도 한다.
변하는 게 당연하지만,사랑만큼은 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서양 격언처럼 연애할 땐 의심하고 또 의심하되,일단 결혼하고나면 무조건 믿어야하는 부부일텐데...
그 가장 좋은 길이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고 본인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친구같은 부부를 추구했던 것이지만,
자기의 기분에 따라 낄낄대며 좋아하고 ,기분이 좀 안 좋으면 호의마저 집착으로 몰아붙이는 식의 변덕은 한두 번은 견딜 수 있지만,
해를 거듭하며 정도를 심화시키고,묵은 감정까지 터뜨리면서 점점 색안경을 들이밀어대면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친구들은 싸우면서 더 친해진다지 않던가?
그래서 피할 수 없는 부부싸움도 친구같은 부부를 추구하노라면 더욱 금실이 좋아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을...
친구가 아닌 경쟁상대이고,이겨먹어야 할 원수로 생각하는 상태에선 점차 불신의 골이 깊어만 갈 뿐.
사랑을 할 땐 자기와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른 사람에의 호기심 등에 의해서 호의가 생길 수도 있지만,
살아가다보면 그런 호기심에 의한 매력이 오히려 장애가 되어 그것때문에 못살겠다며 이혼을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최선의 노력을 하고 배려를 해가야겠지만,참을성이 부족한 현대 한국인들은 툭하면 이혼을 입에 올리는 것 같다.
잘해보려는 노력도 피차가 함께 했을 때라야 그 빛을 발할 수 있는데,일방적인 노력은 오히려 비웃음을 사는 경우도 있으니...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요즘 세상에 마지못해 결혼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본다.
서로가 사랑해서 친지분들을 모셔놓고 잘 살아보겠다고 맹세를 하지 않았던가?
처음 만났을 때의 서로에의 감정을 오래도록 간직하며 ,잡은 고기일수록 더욱 좋은 먹이를 주려는 관상어 사육가처럼,
내 사람을 만들기 위해 들인 노력의 반만이라도 꾸준히 견지해가며 아름다운 사랑을 하려고 한다면 본인들은 물론이고 2세들까지도 행복하게 자라줄 것이다.
힘들거나 슬플 때면 보통 친구를 찾아 나선다.
술친구를,수다친구를 ...
하지만 그걸 가정 안에서 해소하려 해보자.
남편같은,아내같은 좋은 친구가 어디있는가?
아내이면서 친구일 수 있는,남편이면서 친구일 수 있는 진실한 사람들이 되자.
가식은 더욱 큰 가식을 필요로 하는 피곤하기만 한 몹쓸 행위이다.
가식하려야 할 수도 없는 부부사이라면 가장 편안하면서도 많은 위안을 얻을 수도 있고,행복할 수도 있는 좋은 친구다.
꼬투리를 잡으려 눈에 쌍심지를 켜는 그런 부부가 아닌,감싸주고 다독여주는 다정한 친구같은 부부를 추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