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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그릇' / 정호승시인


BY 모란동백 2014-09-28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 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 보았나

개는 내가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 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 이 시를 읽고 안도현 시인은 이런 평을 남겼답니다.

" 어찌 밥그릇의 밑바닥,

주가의 밑바닥, 쌀통의 밑바닥, 은행 통장의 밑바닥,

술잔의 밑바닥, 경제의 밑바닥, 인생의 밑바닥, 사랑의 밑바닥,

생명의 밑바닥, 죽음의 밑바닥, 존재의 밑바닥....

 

무엇이든 그 밑바닥에 닿아보지 않고는 그 무엇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 /담아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