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뒤의 휴식이야말로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기쁨이다.
--칸트--
임마누엘 칸트(1724~1804) 독일.계몽주의 사상가.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르네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합리론과 프랜시스 베이컨에서 시작된 경험론을 종합했다.
그는 철학적 사유의 한 시대를 열었으며,그의 인식론.윤리학.미학에 걸친 종합적.체계적인 작업은 뒤에 생겨난 철학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부모 모두 독실한 루터교 경건파의 신자였고,이 교파는 검소한 내적 삶과 도덕법에 대한 복종을 가르쳤고,
칸트는 이 교회 목회자의 영향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며,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 신학생으로 입학하게 됐다.
신학과정을 이수하면서 때때로 설교도 했지만,주로 흥미를 느낀 것은 수학과 물리학이었으며,합리론 철학을 체계화시킨 크리스티안 볼프를 연구했고,
동시에 아이작 뉴턴의 과학을 열심히 신봉했던 어떤 젊은 교수의 도움으로 뉴턴의 저작도 읽기 시작했다.
1744년에는 최초의 책을 썼는데,주제는 운동력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학자의 길을 걷고 싶어했지만,1746년 아버지가 죽고 ,대학부속학교에서 조교직을 얻는 데 실패하자 가정교사직을 구해서 9년 간 일했다.
1755년에는 친구의 도움으로 대학에서 학위를 마치고 무급 대학강사가 됐는데,15년 간의 강사 시기는 그가 강사와 저술가로 명성을 얻게 되는 시절이었다.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교수직을 얻는 데 두 번이나 실패를 했고,다른 대학들로부턴 교수직을 제안받았음에도 불구하고 ,
고향에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지내면서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완성해가기를 더 원했기에 거절을 했다.
마침내 1770년,그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서 논리학.형이상학 교수로 임명되는데,
이때부터 죽기 몇 년 전까지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놀랄 만큼 독창적인 저작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미 비판 철학의 중요한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던 1770년의 교수 취임 논문 이후 11년 동안 아무 글도 발표하지 않고 연구에 전념한 끝에,
1781년 '순수이성 비판'을 내게 되는데,이때부터 비판철학의 시기가 전개된다.
'순수이성 비판'이 나온 이후 9년 동안 위대하고 독창적인 저술들이 계속 나옴으로써 단기간 동안 철학 사상에서의 혁명이 일어나고,
이후 철학의 나아갈 방향이 정립됐지만,이 책에 대한 해석자들의 비판이 많은 오해를 범하고 있다고 불평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학으로 성립할 수 있는 모든 미래의 형이상학에 대한 입문'이란 책을 냈고,6년 후 개정판을 발간했다.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 코페루니쿠스적 혁명을 성취했다고 자랑스럽게 주장하게 되는데,
근대 천문학을 기초한 코페루니쿠스가,겉으로 보기엔 별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실은 관찰자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통해 설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칸트는 마음의 선험적인 원리가 적용됨을 설명함으로써 ,마음이 대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마음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가 형이상학을 비판한 것은 결코 종교와 도덕을 거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오히려 그는 형이상학을 '확실한 학의 길 위에'올려놓으려고 했고,
이것이 비판철학의 진정한 의도였다고 이해되고 있다.
그의 비판철학은 곧 독일어를 쓰는 모든 중요한 대학에서 강의됐고,그는 큰 존경을 받게 됨에도 , 규칙적인 습관과 엄격한 생활을 유지했다.
노령으로 산책이 힘들어질 때까지 루소의 '에밀'을 읽는 데 열중하느라 며칠 집에서 나오지 않은 때를 제외하곤,
'철학자의 산책로'라 이름 붙여진 거리를 규칙적으로 산책하는 걸 어긴 일이 없었지만,점점 쇠약해지면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가 1804년 쾨니히스부르크에서 죽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제 되었다."였다고 한다.
그의 묘비명엔 '더욱더 자주,그리고 더욱더 곰곰이 생각해볼수록,내 위에 별이 반짝이는 하늘과 내 속의 도덕법칙은 더욱더 새롭고 큰 존경과 경외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준다."고 새겨져 있다고 한다.(브리태니커)
칸트나 아리스토텔레스,니체,플라톤 등 위대한 철학자로 손꼽히는 수많은 철인들을 가까이 할 수 없었던 것이,
그들의 난해하기만 한 논리법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는데,대뜸 서양철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나름대로 정의를 해버리곤 ,
평소 일상생활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유.불.선의 동양철학 만이 진정 살아있는 철학이라며 듣고 보고 소화를 시켜왔던 나였기에 ,
최근 들어서 기원전서부터 유래된 토론을 통한 저들의 철학의 실체를 조금씩이나마 알듯말듯 하게 됐고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며 인문학 강의를 듣고 싶어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로서도 너무 난해했던 칸트의 철학은 인터넷 백과사전의 간단한 프로필을 통해 감 정도를 잡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아야겠단 생각이 드는데,
진득한 근성의 소유자가 못 되는 비겁한 자의 자기합리화 내지는 도피성 발언일 수 있으니 ...
과연 내가 죽기 전에 뭐라도 하나 남기고 죽을 수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하루를 일하지 않았거든 하루를 먹지 말라는 말을 불가에선가 하는 걸로 아는데,그리고 칸트의 저 말이 있는데,우린 과연 어떤가?
먹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서 먼저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인해,세상이 온통 빚천국이 돼가고 있진 않은지?
그러다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이자 작가.연설가로 예순다섯 권이 넘는 저서들 가운데 스물한 권이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로 꼽힌 디팩 초프라가
"우리가 경제 위기를 겪는 것은 잘못된 전제를 토대로 경제를 세웠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카지노 심리를 토대로 한 경제체제를 비판하게 했다.
'세계시장에서 순환하는 2조9,000억 달러의 소위 금융 생산물들 가운데 2퍼센트도 안 되는 비율만이 사회에 온갖 혜택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게 했다.
나머지 98퍼센트 이상의 것들이 잘못된 사고방식의 인간들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도박심리를 해소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텐데...
일단 질러놓고 보잔 생각이,일단 일부터 하고 저축부터 하고 보잔 게 아니라 ,일단 소비하고 보잔 생각이 만연하게 되면서
인간을 물질의 도구로 만들어 버리고 물신숭배의 광신도로 만들어 버린 게 아닐까?
처음 사회에 나와 라면박스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해 2교대 근무를 해서 받은 월급이 77,000원인가 했었다.
그걸 들고 동생들과 함께 시내에 나가서 하룻밤 만에 모두 소비하고 났을 때의 허탈함이라니...
질리도록 라면 부스러기로 끓인 죽같은 걸로 끼니를 때우고,기숙사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벌었던 것인데...
그러고도 얼마간 소비의 마력에 이끌리어 한참을 헤맸지만,병역의무를 마치고 취직한 곳에서 비로소 땀의 소중한 열매인 돈을 아끼게 됐고,
일단 저축부터 하고 보잔 습관을 들임으로써 모든 것을 다 잃었달 정도로 절망을 느낀 이후에도 굶어죽진 않을 수 있게 됐으니...
많지 않지만,노동을 앞세우고,그 후의 휴식을 만끽하는 습관이 몸에 밴 지금은 걱정도 두려움도 없이 여유롭게 살 수 있게까지 됐다.
그러면서 독서의 즐거움도 ,공부의 즐거움도 깨닫게 되고,사내대학이란 피곤한 배움의 길도 멋지게 해냈다.
개업도 하고 결혼도 해서 제대로 온갖 미각을 경험하게 됐고,지금은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중년이 될 수도 있었던 건 ,
너무 늦지 않게 노동의 소중함을,땀의 소중함을 알게 된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조금 불편하고 시장하다고 해서 빚을 내서라도 일단 소비하고 먹고 보잔 생각과는 아예 담을 쌓을 수 있었고,
분수껏 살면서 앞날을 내다보고 조금씩이나마 저축을 하는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배고 보니 평생 빚을 모르고 살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지나치게 여유를 즐기는 취향이 생기고 나서 일반 노동자들보다 훨씬 적은 수입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빚은 커녕 아주 적으나마 이자수입도 올리고 있고 임대수익까지 올리고 있으니 나로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빈 손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이었고,반대급부를 생각하며 인간적인 도리를 하는 식의 계산적인 삶을 살아오지 않았으면서,
오로지 나의 노동으로 이룬 것이기에 남들 눈에 어찌 비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있고 당당하기만 하다.
심지어는 행복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의 자식들이 알아서 어려서부터 앞가림을 할 생각을 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것을 보게까지 됐으니...
좀 더 멋지게 ,근사하게 살지 못한다고 해서 녀석들이 불행한 것은 아니란 것을 알기에 흐뭇하기만 하다.
내가 행복한데,녀석들은 나보단 훨씬 좋은 조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고,아비,어미가 다 살아있는 상태라 언제든 즤들이 원하기만 하면 다가설 수 있고,
그 아비 어미가 녀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자유롭게 노동하고 휴식하며 그 열매의 달콤함을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누릴 수 있으니...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아비인 나보다 더 잘 살 수 있을테니,스승으로서,아비로서 흡족할 따름이다.
이만 하면 할 도리도 다 했고,남은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봉사하며 빚을 갚아나가면 분에 넘치게 살다 가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그야말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달 정도로 행복하다 감히 외쳐대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지 않는가?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그저 최선을 다하고 하늘이 주시는대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란 말이다.
감히 신의 경지를 넘보며 스스로 결과부터 챙기고 대충 시간만 때워서야 제아무리 많이 가지고 누려도 행복을 느끼긴 어렵지 않겠는가?
거기에 빚까지 끌어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가며 살아간대서야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지 않을까?
우리 모두 노동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노동 후의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