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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는 길


BY 미개인 2014-12-21

당신의 적에게 늘 화해의 문을 열어 놓아라.

    --발타자르 그라시안--

 

발타자르 그라시안(1601~1658) 스페인.문필가.철학자.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세네카와 비견되는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열다섯 살에 발렌시아 사라고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열여덟 살에  아버지의 권유로 예수회에 입회한 후 평생을 수도사로 살았다. 

젊은 시절 탁월한 설교 솜씨가 스페인 국왕 필리페 4세의 눈에 띄어 한동안 궁정고문을 역임함으로써 남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 등

'생각은 남다르게,기발하게 하고 ,말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평범하게 하자'주의자였던 그는 글 만큼이나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와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46년 종군 신부로 참전한 그는 전쟁터를 넘나들며 군인들을 격려하고 위안을 줌으로써 '승리의 대부'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세상을 해석하는 독특한 주관과 고집스러운 태도 때문에 상층부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했다.

그의 초기 저작 '영웅'은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절묘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필리페 4세는, 이 책은 '위대함이 가득한 주옥 같은 책'이라 평하고,궁정 도서관 서가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라고 명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비판기,전3권', '지혜와 기술'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네이트 지식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묻거든...'이란 그라시안의  책을 읽고 있다.

그의 처세론을 모은 책인데,무난한 인생을 사는 지혜를 담은 책이라고나 할까?

충격적인 깨달음을 주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이기적인 처세법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하게 만들어서 옥석을 가리며 취하고 있는 중이다.

친구를 너무 믿고 자신의 비밀을 함부로 털어놓음으로써 적으로 돌아섰을 때 공격을 당하는 빌미를 제공하지도 말 것이고,

적에게도 늘 화해의 문을,그것도 가장 확실한 관용의 문을  열어 두고 친구가 되는 길을 모색하라는 말인데,

적이 됐다고 성급한 보복을 함으로써 후일 고통을 당하는 일을 없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합집산을 밥먹듯 하는 정치꾼들이 거울 삼을 만한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일반 개인에게도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

설사 상대가 한 지붕 밑에 살면서 살을 섞고 사는 부부라고 할지라도 이혼을 참으로 쉽게 하며 사는 세상이다 보니,

흉허물을 없애고 진솔한 관계를 원하여 상대도 나 같으려니 생각하고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고 지내다가 

자칫 무시를 당하거나 이용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가화만사성을 외치는 것도,정직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만고불변의 말도 아이에게 가르칠 수 없게 됐다.

너무 정직하면 속임수에 잘 넘어가 버리는 바보가 되고 마는 세상이라니...

때린 사람은 편한 잠을 잘 수 없지만 ,맞은 사람은 차라리 두 다리 주욱 뻗고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치던 것도 이젠 사어가 되고 있다.

때리는 대신 맞고 속 편하게 살려다간 질근질근 짓밟히고 또 짓밟히고 말아서 삶 자체가 곤란해지게 되니 말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슈퍼갑을 비난하면서도 슈퍼갑을 지향하고 있다니...ㅠ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갑질을 하고 싶어하며 광분하고 있다니...ㅠㅠ

승자독식의 분위기가 정치,사회,문화,교육계를 망라해서 만연하고 있으니 ,인간사회가 아니고 맹수들의 집단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그라시안의 저 말은 변화에 적응하는 날렵한 처세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17세기의 약육강식적 시대조류의 한 가운데 살던 사람의 ,

전쟁에 있어서 '승리의 대부'란 별명을 가진 수도사라는 모순적인 한계를 지닌 사람의 말이니 얼마간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 목숨을 보전하며 희망을 키워나가는 말로는 최고의 것일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지금은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지구촌의 시대다.

그럼에도 여전히 적과 동지라는 개념은 존재하고 있으며 ,처절하달 만치의 생존경쟁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나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동지이고,이익에 반하거나 경쟁적인 위치의 사람은 적으로 삼는 세태이고 보면 ,

아직도 공존으로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 ,두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마음으로 ,비가 와도 걱정,안 와도 걱정인 ,

그러나 서로를 경쟁 상대로 보지 않고 상부상조해야 하는 피붙이란 것을 가르쳐 둘 다 잘 살게 만들어주는 지혜가 절실하다 할 수 있겠다.

 

얼마 전 안 철수의 정치 아카데미에서도 ,안 철수가 그런 공존의 틀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평지풍파를 겪은 지금이지만 ,그는 그런 공존의 길을 찾아 목하 고민 중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양비론을 외치는 약삭빠른 회색분자란 소리도 듣고 ,그의 새정치가 모호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면서 양측 모두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돼 있지만,

그는 흑도,백도 모두 포용함으로써 화합하는 세상을 추구하고 싶은 것일 것이다.

흑도 ,백도 다 틀렸다면 그 절충점인 회색이 솔루션일 수도 있는데,사람들은 흑 아니면 백,양자택일을 강요하고만 있으니...

정치 시스템도 독일식 다당제가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제3당으로의 모색을 했었지만,너무 서두른 탓에 진영논리에 휩싸여 실패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고 주저앉아 버리면 안 철수가 아니지...

통진당 해산의 아픔은  헌재의 월권을 부추기며 뒤를 봐주고 있는 현 정권의 만행일 뿐이니... 과도기적 몸살일 뿐이리라.

미국식 양당체제도 아니고 독일식 다당제도 아닌,우리 만의 획기적이고 모두가 따를 수 밖에 없는 합리적 대안을 꼭 찾아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지금 친일 매국노 척결이란 대명제에 여생을 바치겠노라며 불쏘시개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렇다고 이미 대세가 돼 있는 그들을 몰살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 기회는 70여 년 전에 있었지만 미국을 등에 업은 만고의 역적 이승만이가 하지 중장과 공모하여 날려버리고 말았다.

이후 이승만이의 부패를 심판한다고 등장한 것들이 윤보선과 박정희로 이어지며 되돌리려야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박정희의 독재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민중들의 열망을 전두환이와 노태우란 군바리가 또 짓밟아버리고 말았으니...

그러면서  친일 매국노들의 철옹성은 더욱 강고해져만 왔으니...

이젠 그동안의 암약의 세력이 아니라 ,역사까지 왜곡시키며 우리가 대세이니 우리를 따르라면서 설쳐대고 있는데,

그들과 총칼을 앞세운 전쟁을 해서 몰살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저들의 역사왜곡에 당당히 맞서 싸우며 진실을 보호하고 알리는 데 전념하며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증거를 얻게 될 때까지 

정성을 다해가는 것이 유일무이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천명이 내리지 않거든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우리의 정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더욱 매진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역사적 죄인인 저들에게 ,자신들과 자신의 조상들의 죄를 시인하고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며 취득한 불법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촉구하는,

그렇기만 하면 죄를 사해주겠노란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빠져나갈 구멍을 두고 몰아야지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면 쥐가 고양이를 물고 대든다지 않던가?

피차가 손해를 보고 마는,모두가 패배하는 싸움을 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인도의 간디가 있고,우리 나라의 함 석헌 선생이 있으니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다.

무능이 아니라 총칼을 앞세운 저항보다 훨씬 무섭고 효과적인 비폭력 저항으로 대중들을 감화시킴으로써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는 방법이어야 할 것이다.

만물 일체의 주인인 정신을 정의로운 한 곳에 집중시키는 전략이야말로 모두가 윈윈하는 것일 것이다.

이미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정신을 ,정의에 눈뜨게 만드는 일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란 건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해내고야 말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정신으로 ,미련하단 소리를 듣더라도 묵묵히 추진해야 할 유일무이한 길인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조울증 환자처럼 굴지 말자.

분위기에 휩쓸려 부정한 세력들의 손가락질에 휘둘리며 놀아나지도 말자.

신중히 살펴 옥석을 가릴 줄 아는 안목을 키워가며 초지일관,정의롭기만 한 세상을 추구해 가야 할 것이다.

지금껏 그런 세상이 없어 왔기에 우린 해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

우리의 여생을 바칠 만한,참으로 기쁘고  보람찬 일이 아닌가?

예수가 스스로를 십자가에 매달며 세상의 부정을 고발함으로써 사랑의 세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과 버금가는 위대한 의지가 아닐까?

우리는 물질의 노예도 아니고, 명예의 노예도 아니며,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들임을 깨닫고 위대한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