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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무


BY 미개인 2014-12-25

자신의 운명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사람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의무이다.

                     --파울로 코엘료--

 

파울로 코엘료(1947~     ) 브라질.소설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삶의 본질적 측면을 다루는 소설을 써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예수회 학교에 다녔으며,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부모들은 그가 작가의 길을 걷는 것에 반대했다 한다.

진로 문제로 부모님들과 갈등을 겪으며 그의 청소년기는 우울증과 분노로 점철됐고,정신과 치료를 위해 세 번이나 입원을 했었다.

1960년대에 실험적인 연극,전위예술에 촛점을 맞추는 감독과 배우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70년부터 히피운동에 뛰어들어 활동했고,잡지의 기자로도 활동했다.

영국의 밀교 신봉자인 '사탄주의자'등과 교류를 하며 군사정권과 마찰을 빚기도 하다가 ,영적탐구에 매력을 느끼고 동양 종교에 빠져들고 세계여행을 하게 된다.

1984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지순례를 하며 영적인 깨달음을 얻고 ,

첫 작품 '순례자'에서 그 가르침을 묘사했으며,이듬해에는 '연금술사'를 썼다.

세계경제포럼 크리스털 상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포함하여 국제적으로 저명한 상을 숱하게 받았으며,2007년 UN평화사절에 위촉됐다.

1996년 파울로 코엘료 재단을 설립하여 빈민층 어린이와 노인들을 돕고 있다.(위키백과,etc)

 

'꾸뻬씨의 여행'에서의  '행복은 의무이다'라는 말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아주 명쾌한 답을 도출할 수 있을 것 같다.

즉,궁극적으로 깨달아야 할 자신의 운명이 곧 행복이란 걸 알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런 생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꾸뻬씨가 그렇고 코엘료가 그렇듯 ,그들은 공통적으로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읽은 '마음의 힘'의 저자 바티스트 드 파프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위대한 스승들을 만나고 ,인터뷰를 하며 깨달음을 얻어 ,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힘'을 내보인 것도 여행의 힘이 아닐까?

 

사랑스러운 나의 두 딸들도 그래서 초등학생의 신분으로 40일 간의 유럽배낭여행을 통해 희미하나마 깨달음의 실마리를 느껴서 ,

귀국하자마자 이구동성으로 여행작가가 되기로 했다고 선언을 했던 건 아닐까?

그동안 수없이 바뀌어 온 녀석들의 인생목표를 봐왔으면서도 화들짝 반가운 생각이 들었던 것도 ,나 역시 어렴풋이 느껴왔던 것이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내가 젊은 시절부터 주욱 꿈꾸어왔던 것이 고행에 가까운 무전여행쯤이었던 것도,

그리고 지금의 내가 은퇴를 하면 방랑을 하겠노라며 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예감하고 있는 깨달음에의 욕구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시간이 나면 사람들은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하며 좁아터진 도로를 가득 메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그런 시늉만의 여행은 공허함만 안기고,뒷감당을 해야 하는 부담만 안기고 있는 건 아닐까?

 

'비둘기호'란 완행열차를 타고 시끌벅적한 열차에 앉고 서서 따분하게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는 과거의 여행풍경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아로새겨진다.

삶은 달걀과 사이다쯤을 나누며  낯선 사람들과 정겹게 어울릴 수 있었고,머무는 곳 마다 있었던 가락국수집을 향해 뛰어다니던 기억이라니...

열차가 머무는 동안 주문하고, 먹고, 슬금슬금 움직이는 열차에 뛰어오르는  숨막히는 긴장을 즐거워 했었다.

그렇게 당도한 곳의 역광장에 나서면 온 몸이 찌뿌드드한데,기지개를 켜면서  낯선 풍경을 가슴 한가득 담으며 정처없이 발길을 옮기곤 하던 정경이라니...

 

나는 어렸을 때 수레를 끌고 무전 전국일주를 하고 싶어 했더랬다.

수레에 고물 등을 채우며 걷고 또 걷다가 고물상이라도 만나면 고물을 팔아서 하루를 지내고 또 걷는...

그러면서 일손이 바쁜 곳에서 일손을 거들고 한 끼 식사를 해결하며 정처없이 떠돌고 싶었었다.

그러나 마음 뿐으로 ,젊음의 치기를 단 한 번도 발휘해 보지 못한 채 숨막히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식 삶에만 여념이 없었고,

대신 시간이 날 때 마다 배낭을 메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었고,산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인데...

밤차를 타고 떠나서 밤차를 타고 돌아와 새벽에 당도를 하면 이내 출근준비를 하곤 했었던 것이 그리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보다 어렸을 땐 무서운 줄도 모르고 서너 시간씩 걸리는 산행을 혼자서 했다는 것인데...

고향이 관악산과 삼성산이 만나 이뤄진 계곡 지역인 안양예술공원 언저리여서 ,관악산과 삼성산을 놀이터 드나들듯 혼자서 다녔었다.

지금도 가끔 혼자 산행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혼자서 다니는 게 무섭지 않냐고 하는데,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올 초에 큰 딸이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려 인천에서 부산까지 18일 간 도보여행을 혼자서 했었다.

어려서 정조대왕이 서울에서 수원외곽의 부모의 묘를 찾아 행차를 했던 것을 기리는 ,효행 행사에 서너 번 참가는 했었지만,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녀석이 혼자 걸어서 국토종주를 할 생각을 하고 나섰다는 것이 ,그리고 멋지게 해냈다는 것이 대견하기도 했었다.

역시 나의 딸다웠다.

그런 언니를 본 작은 딸은 내년에 졸업을 하고 언니와 같은 직장에 들어가게 되는데,어떤 일로 사회생활에 나서는 출사표를 던질지 기대된다.

야리야리한 언니에 비해 훨씬 당차고 씩씩한 녀석인데...

상황상 여행작가에의 꿈을 접은 듯한 행보를 선택한 녀석들이지만 ,희망의 싹을 꺾어버리지 말고 이렇게 차근차근  키워갔으면 한다.

 

나는 이미 80~90퍼센트의 준비를 마치고 나머지 일이십 퍼센트는 실행에 옮기는, 시간문제일 뿐인 여행을 앞두고 있다.

나의 운명이라고 어렴풋이 느껴만 오던 것을 확신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것이다.

내가 세상 무엇보다 사랑하게 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자유롭게 나래를 활짝 펼치고 온 누리를 훨훨 날아다니렴!하는 생각에 두 딸의 이름도 나래,누리로 지어줬었다.

무의식적으로 스스로,그리고 딸들에게 ,그것이 나의 운명임을 암시해온 것이리라.

다행히도 딸들이 그런 나의 운명에 공감을 표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냥 벅차오른다.

녀석들의 어미도 참 여행을 좋아했었다.

처녀시절,여행이 가고 싶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45일간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는 소리를 듣고 반해서 결혼을 결심하게까지 됐던 것이니...

객기가 철철 넘치는 아비 ,어미를 둔 녀석들의 핏속에도 그런 객기가 차고 넘치리라.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그렇게 여행을 하다가 노상객사를 하는 것인데...

그때까지 건강해서 나의 시신이 옮겨져 장기와 안구,조직 등이 온전하게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행복해야 할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운명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혀가 빠지게 돈돈돈 하면서 헉헉거리다 가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루빨리 ,한시바삐 자신의 운명의 정체를 파악하고 ,행복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는 길을 찾아떠나야 하지 않을까?

조금 있다가...나중에...언젠가... 하면서 삶을 ,인생을 낭비하는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

진정 운명적인 삶을 추구할 때라야 비로소 성공도 할 수 있고,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