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지심(四端之心) 즉,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
--맹자--
맹자(BC 371경 ~BC 289경) 고대 중국.철학자.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인접한 추나라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공자와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어린 아들에의 교육열이 각별했던 것은 맹모삼천(孟母三遷),맹모단기(孟母斷機)의 일화와 함께 유명하며 ,수천 년 간 전형적인 어머니의 본보기로 숭배돼왔다.
젊은 학자 시절,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생으로 수업하며 공자 사상의 맥을 이었다.
남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고,잠시 제나라의 관리로도 일을 했으며,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제후들에게 인정을 베풀라고 조언했다.
당시는 난세였던 전국시대였기 때문에 제후들은 인정보다는 패도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고,그래서 그의 왕도정치의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다.
비록 자신의 원칙이 주의를 끌지 못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쳐갔다.
통치자는 백성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물질적인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하고,그들을 교육시키는 도덕적,교육적 지침을 마련해야 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백성의 복지를 보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계수단이 든든할 때라야 든든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는 지론을 펼치며,통치자는 백성들의 복지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백성이 국가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토지와 곡식의 신은 그 다음이다,통치자는 가장 마지막에나 놓이는 구성요소이다."라고 과감하게 주장했다.
패권정치가 횡행하는 시대에 목숨을 걸고 왕도정치를 주장했다 할 수 있는데,그 어디서도 귀를 기울이는 제후를 찾지 못하자 ,
절망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후학 양성에 바쳤다.
저서 '맹자'는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인간의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고 있다.
수천 년 간 중국인들에 의해 공자와 함께 유교의 공동 창시자로 숭배돼 왔고,공자 다음의 성인으로 추앙받아 왔다.(브리태니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위의 사단을 일러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일종의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이며 ,
이것들을 확충함으로써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덕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단지심을 하나하나 새겨 봄으로써 일상에서의 자신을 돌아보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인용해 봤다.
나는 매일 하나의 글을 ,딸들에게 전하는 심정으로 고하듯 쓸 때, 위의 사단지심의 잣대를 들이대곤 해왔다.
훌륭한 사람들의 명언을 거울 삼아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한 계획도 세워보고 다짐도 해온 것이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고,가슴을 갈갈이 찢어놓고 재조립하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댄다.
사실 나의 글쓰기 실력은 민망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그리고 사고의 폭도 좁기만 하기 때문에 ,블로그에까지 올리게 되면서 더욱 몸부림은 치열해지기만 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생활이 지장을 받을 정도까지 이르기도 하지만,그것이 몸에 배게 돼서 일상화만 된다면 좋아지리라 믿기에...
2년 남짓이 지나도록 아직도 훈련 중인 것이다.
아직도 답답하기만 한 행태이지만,전혀 진척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일거수일투족에 조심을 하게 됐고,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 것도 있음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개인도 하는 걸 나라고 못할쏘냐며 분발하는 계기로 삼아주면 고맙겠다.
*측은지심(惻隱之心):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남의 불행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란 뜻의 말이다.
나는 과연 이런 생각을 갖고 살고 있는가?생각은 하고 있으되 실천을 하진 않고 있지는 않은지?오늘은 과연 무엇을 실천했는지?를 돌아보라는 말일 것이다.
끊임없는 경쟁을 부추기고 ,은연중에 비교를 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상 ,약자들은 무시하고 강자에겐 아부를 하도록 내몰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
정말 비겁하기 그지없는 자기변명에 불과하고,옳지 못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할 것이다.
이렇게 무시와 아부를 반복하면서 살다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면 으레 자신을 좌절시킨 사람들을 비겁하다 평가하며 비판하는 것이 저 논리가 아닌가?
그런다고 마음이 편해지진 않는 것도 아주 많이 경험해 봤으리라.
그 어떤 경우에도 적용할 수 없는 잘못된 것이란 걸 알려주는 것이리라.
약자에겐 후하고 강자에겐 냉정한 것이 옳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냐고 항변을 하고 싶겠지만,그것은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는 것과 다름없으니 당장 거두시라.
강자와 약자의 판단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대상은 강자도 됐다가 약자도 될 수 있으니,실제로 강자와 약자는 따로 없다는 것이다.
단지 사리사욕과 편리를 위한 방편으로만 보기 때문에 부자나 공무원이나 권력자들이 강자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진짜 그를 존경하고 사랑해서라면 그들에 빌붙어 아부를 할 게 아니라 그들의 잘잘못을 냉정히 밝혀 그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태계의 약육강식 논리를 극복한,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강약에의 강박관념은 버려야 할 것이다.
단지 그가 어려움에 처했다면 ,사심없이 그를 돕고 싶어하는 것이 진정한 측은지심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죄책감도 못 느끼는,군림형 권력을 추구하는 친일 매국노들로 이뤄진 정치권을 비판하는 것 역시 측은지심의 일종이다.
사이코패스 내지는 소시오패스적인 그들의 정신질환은 스스로는 절대 자기반성을 못 한다는 특성이 있기에,
그들은 모르는 그들의 추잡스러운 작태를 보여줘서 깨닫고 고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비판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뭔가 댓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무언가를 바란다면 끝없이 아부를 하며 훌륭하시고 위대하시다 칭송을 하며 간신노릇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무리들이 모여 있다는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에 그런 간신들이 차고 넘치면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잖은가?
그들을 비판하면서 거기 끼어들지 못해서 안달을 하거나 ,그들과 같은 언행을 일삼거나,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나는 과연 진정한 측은지심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할 것이다.
*수오지심(羞惡之心):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남의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나는 과연 옳기만 한가?그래서 남들의 잘못을 지적하는가?내 눈 안의 대들보는 안 보려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지적하고 싶어하지는 않는가?
나부터 옳고 바르게 살려 애쓰라는 말일 것이다.
인간으로선 도저히 해선 안 될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그런 자신을 손가락질 하는 사람에게 대들면서,넌 잘하고만 사느냐며 패악질을 해대면?
그래,난 올바르게만 살아왔고,지금도 옳은 길만 걸으면서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으면 그런 놈의 얼굴에 귀싸대기를 올려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깨갱하고 말고,그러다 보니 저것들이 더욱 패악질을 일삼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저들을 비판했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지금 가진 것이라도 잃지 않으려면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처세술을 펼쳐댄다.
친일 매국노들이 친일한 댓가로 일본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하사 받은 ,원래 우리의 것인 재산을 독점하고 그것으로 현대판 가렴주구를 일삼고 있고,
거짓말쟁이가,사기꾼이 능력자로 칭송을 받으며 주인들의 상투를 쥐고 흔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도 적잖은 오점이 있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 조용히 당하고 살고자 한다.
그리고 당당한 사람들이 미워하고 비판하는 것을 싸잡아 비난을 해대면서 공격하기까지 하고 있으니...오호 통재라!
반성해야 한다.나부터 석고대죄를 해야 한다.그리고 옳게만 살려고 애써야 한다.
'김 영란 법'이 소위원회를 통과해 놓고도 그 범위를 놓고 궤변들을 늘어놓고 있는 사이 ,공포에 떨고 있을 사람 ,많을 줄 안다.
만약 2천만 명의 범위로 확정되면 ,그 두 배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두 저촉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 ,아예 없던 것으로 되돌리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들 혼자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데,받는 놈은 누군가 주는 놈을 전제하기 때문인데...
하나같이 연줄과 빽을 운위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부정부패의 골을 깊이깊이 파온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통렬히 반성하고 사죄할 것이 있다면 사죄하고,어떤 처벌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달게 받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사양지심(辭讓之心):겸손히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란 뜻인데,사양은 커녕 새치기나 끼어들기가 일상화 된 지 오래다.
양보를 강요하다 거부하면 길 한가운데 차를 막아 세우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참 귀여운 재롱에 불과하다.
각종 특혜와 불법으로 탈취한 부와 권력을 당연한 것으로 누리며 사회를 양극화 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는 무리들의 가증스러운 작태에 비하면 말이다.
수많은 정치꾼들이 그렇고, 재벌이나 대기업들의 작태가 그렇다.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 뛰는 놈과 ,출발점에서 한참 뒤진 곳에서 출발하는,이미 순위가 결정된 경기에서 1등을 했다고 좋아하며 나대는 것들이 차고 넘친다.
즤들끼리 단합과 담합을 해서 개미새끼 하나 끼어들지 못하도록 자신들만의 철옹성을 지어 놓고 즤들끼리만 잘 살면 그만이라며 낄낄댄다.
성밖의 하찮은(?) 무리들은 자신들의 그런 꿈같은 생활을 위한 노예로 만들어 버리고 줬다가 뺐었다가,이놈 줬다가 뺏어서 저놈 주는 식으로 갖고 놀면서,
그들 스스로 아귀다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 착취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철옹성은 천 년, 만 년 무너지지 않고 갈 것인가?없앨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있다,분명히 있다!
당장 아귀다툼을 그만 두고,내가 먼저 엎드릴테니 나를 밟고 차곡차곡 올라서라며 성을 넘을 생각을 해야 한다.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모두가 그 성을 넘을 수 있는 튼튼한 사다리를 만들어가면 된다.
성을 넘어 성문을 열어젖히고 안에서, 밖에서 허물어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 먼저 겸손히 양보를 하고 먼저 엎드리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철옹성을 허물어버리고 나서도 그 안의 전리품을 서로 사양하며 모두가 공평히 누릴 수 있도록 쓰일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사양하고 겸손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저들이 조장하는 아귀다툼에 나서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이 아귀다툼은 저들이 자신들의 철옹성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조장하고 있는 음흉한 흉계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시비지심(是非之心):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이란 뜻으로 ,도덕적 양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피 튀기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불의를 보고도 당장 나한테 손해가 되지 않으면 못 본 척하고 만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가 만연하게 되면 언젠가 나와 내 가족에게도 닥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집단이기주의도,내 지역내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님비현상과 결과만을 중시하는 법체제도 마찬가지다.
나만 잘 살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 모두가 화합해서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인,내가 제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나 혼자 살 수는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들 하나하나는 모두가 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나도 동등한 권리의 주인이고 너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저 사람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다 자기만 잘 살면 그만이라고 하고 남을 무시하고 이용하려고만 든다면 사회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이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는지?
우리들 민주 시민들에겐 우리들 스스로 정한 의무와 권리가 주어져있다.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서,논을 갈아야 하고, 모를 심어야 하고, 잡초를 뽑아줘야 하며, 가뭄과 홍수를 대비한 이후에야 비로소 잘 익은 벼를 수확할 수 있고,
그것을 가공해서 우리의 입맛에 맞는 밥을 지어 온 가족이 배를 불릴 수 있는 것처럼,
권리를 앞세우기 전에 의무 수행에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의무 수행에 충실한 것이 옳은 길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의무 수행엔 소홀하기만 하면서 권리 주장에만 기를 쓰는 사람들은 옳지 않다 할 수 있다.
집단이기주의자들의 만행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단만 잘 살면 그만이지 우리들의 집단 이기를 추구하느라 다른 집단들이 죽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다고 부르짖는다면 세상이 뭐가 될 것인가?
법에 있어서도 동기나 과정은 무시하다시피 하면서 결과만 놓고 시비를 가리는 것은 옳지 않다.
가령 성공한 쿠데타는 무죄라는 식의 판단이 그런데,그렇다면 누구나 다 성공적인 쿠데타를 꿈꾸고 추구하라고 부추기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권력의 시녀들의 작태로 비난받아 마땅하고, 척결돼야 할 법체제라 할 것이지만,
여전히 경찰과 검찰,법원,관피아 등은 정권의 시녀노릇에만 충실하고 있고,정작 그들이 보호해야 할 약자들은 희생양으로 희생시키고만 있다.
공정한 시비지심이 개인적으로,전 사회적으로 절실한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사단지심이 지금은 케케묵은 고리짝 취급을 당하고 있는데,과연 그럴 정도로 무의미한 것일까?
오히려 더욱 갈고 닦아서 반짝반짝 빛내가야 할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지?
그러려면 나부터 앞장서서 곱새기고 실천해감으로써 나부터 떳떳하고 당당해져야 한다.
그래야 개혁도 가능해지고 ,모두가 생전에 천국에서처럼 살 수 있다.
천국이나 지옥은 죽어서나 가능한 것인데 어찌 살아서 누리자고 하느냐고 ,헛소리 하지 말라고 비아냥대지 말기를 바란다.
종교를 갖지 않아서가 아니라 ,설사 내가 종교를 갖고 있거나 사목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주장을 할 것이다.
만약에 사후세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곳에 가려면 현재를 천국에서처럼 바르게 살아야 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지옥에서처럼 아귀다툼을 하면서 살더라도 헌금만 많이 하면,기도만 많이 하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절대지존인 신들이 하잘것 없는 인간들의 세균덩어리 돈을 어디에 쓴다고 거기에 홀딱 반해서 천국의 문을 열어줄 것인가?
그깟 잘 살게 해달라고 칭얼대는 기도 따위,소음에 불과한 것에 감동을 받아서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주고 싶을까?
평소에 바르게 살고 ,나누고 배려하며 살고,양보하며 살며,늘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사는 사람이 예쁘지 않겠는가?
우리들도 자식을 길러 봐서 알지 않는가?
만약 죽을 때 집이라도 한 칸 유지할 수 있었다면 ,어떤 자식에게 남겨주고 싶겠는가?
바르게 잘 살면서 부모인 나를 욕되게 하지 않고,형제자매간에 서로 돕고 양보하며 사이좋게 잘 지내며,
부끄럽지 않게 살려 애쓰고,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겠는가?
물론 그 집 한 칸을 물려받기 위한 가증스러운(?) 위선 여부를 구분할 줄 아는 우리일텐데,하물며 전지전능한 신(神)임에랴!
난 종교를 갖고 있지 않고,재산을 물려줄 부모님도 계시지 않으며,만약 뭐라도 물려주신다고 하면 사양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살아서 뭐라도 갖고 누리다 가게 되더라도 절대 자식들에게 물려주진 않을 것이다.
그저 지금 사는 세상을 천국이라고 여기며 즐겁게 누리며 살고 싶을 뿐이고,얼마간은 의도하는대로 살고 있다.
'얼마간은'이란 표현 대신 '완전히 '로 바꾸기 위해 매일매일을 사단지심으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부디...많은 사람들이 이런 느낌을 갖고 살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