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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는 법


BY 미개인 2015-03-28

우리 모두에게는추구하는 자신만의 삶이 있고,이뤄야 할 자신만의 꿈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꿈을 현실로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우리가 계속 그것을 믿기만 한다면...

                       --루이자 메이 올코트--

 

루이자 메이 올코트(1832~1888) 미국.작가.

이상은 높았으나 경제적으론 무능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 경제를 책임졌던 헌신적인 딸이었다.

아버지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주입식 교육 대신 소크라테스 식의 대화 지향적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몇 차례 학교를 열었지만 번번이 실패를 겪으며 엄청난 빚을 지게 되며 가족들의 삶은 곤란했지만,그녀의 어머니와 네 자매들이 부지런히 일하면서 돈을 벌었다.

루이자는 바느질 등 허드렛일부터 연극배우,하녀,가정교사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초기에는 여러 가지 필명으로 대중소설을 쓰면서 돈을 벌었으며,'작은 아씨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그녀가 죽은 지 100년도 더 지나서 알려진 유작 '치명적 사랑'은 사랑과 연애에 관한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인 면모를 엿보게 해주는데,

악인과의 흥미로운 사랑을 갈구하는 로맨스적인 세계관이 결코 여성들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현실적이고 계몽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이다.(www.ildaro.com)

130여 년 전에도 지금처럼 나쁜 남자를 여자들은 좋아했던 것일까?

딸만 둘이 나로선 그런 같잖은 남자들의 꼴값에 넋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라며,녀석들이 루이자 메이 올코트를 알게 되기를 빌어본다.

 

누군가 분리수거해서 내다 버린 책더미에서 구해낸(?),약간은 조잡한 아동교육서적을 보고 있다.

유대 랍비가 쓴 것이라 ,유대인들의 이중적인 면과 자기들만 잘났다는 식의 선민의식이 마음에 들진 않아 좋아하진 않지만,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 ,그들에게 결여된 것을 보충해간다면 최고의 반면교사는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오자까지 고쳐가며 보고 있는데,

한 독일 화학자이자 세균학자였던 사람이 매독 치료제를 개발하여 그 이름을 '606호' 라고 지었다는데,

그 이유가 605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606번째 시도를 해서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7년간의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꿈을 버리지 않고 믿음을 갖고 추구한 결과 얻은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운이라며 겸손해하더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하고는 횡재를 한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위의 명언을 말한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코트의 경우,자칫 부모의 무능을 탓하며 비뚤어졌더라면 ,

그리고 '606호'란 약의 개발자가 605번의 실패에 좌절을 하고 말았다면 ,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세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 얘기하는 이상의 역사적 반전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다행히도 그들은 반복되는 실패와, 곤궁하고 피곤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꿈을 키워 현실로 만들어준 덕분에 인류가 이처럼 잘 살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이태백,사오정,청년실신,양극화,가치전도,도덕불감증의 만연 등 온통 부정적인 소리들로 사회 분위기는 가라앉아만 있지만,

한편으론 작은 희망의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음을 명심하고 ,희망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지속적 추구를 함으로써 ,

정의로운 사회를 이룬다는 공동의 목표를 ,공동의 이상을,꿈을 현실로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 오전에 아산의 현충사에서 오랫동안 펼쳐오고 있는 의미있는 운동현장을 방문하고 왔다.

민족문제 연구소의 천안 .아산 지역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현충사 본전에 모셔진 충무공의 영정이 ,

지난 2007년 교체된 유 관순 영정의 작가인 대표적 친일 화가 장우성화백의 작품이란 걸 알리고,

아산시와 민족문제 연구소가 공동으로 교체를 검토해달라고 촉구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것인데...

두어 시간 함께 했을 뿐이지만,거기서 엄청난 희망을 볼 수 있었고,가슴이 설렐 정도로 흥분이 되는 걸 느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친일 매국노에 대한 관심과 반감을 가진 민중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정말로 화창한 봄날씨를 만끽하는 중간중간 짬을 내서 설명을 들어주고,질문을 하고 ,서명을 해주며 격려까지 해주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던 것이다.

나의 친일 매국노 척결 및 친일 재산 환수법 통과를 위한 천만 인 서명운동이 지지부진 한 것은 민중들의 관심이 없어서인 것이 아니라 ,

입지조건이 별로 좋질 못하고,나홀로 자영업을 하면서 병행을 하려다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깨닫게 됐다.

조만간에 본격적으로 나서서 뛰어든다면 훨씬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도 갖게 된 하루였다.

2년 간 서명을 받으며 친일 매국노 척결법과 친일 재산 환수의 필요성을 설명하다 보면 ,

우리가 서명을 한다고 바뀌겠느냔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게 참으로 힘빠지는 일이었는데,

오늘의 현충사에서 목격한 바도 비슷한 것이었지만,여러사람이 함께 하면서 서로 다독여주고 격려를 하면서 하니 별로 힘도 안 빠지고 즐겁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혼자서 그 정도라도 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거라며 칭찬을 해주는 회원들을 만나니 큰 위안도 된다.

 

안 될 것 같던 유 관순 열사의 영정교체를 시민과 시민단체가 합심해서 해낸 것처럼 ,현충사의 충무공 영정도 교체를 해낼 것이라 믿고 매진하면 이뤄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 원권의 세종대왕과 오만 원권의 신사임당 영정도 친일 화가들의 작품이라 하니 지속적으로 바꿔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위층의 대부분을 친일 매국노들이 장악했다고 해도 ,정의는 승리할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가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 곳곳에서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떠올리며 한다면 불끈불끈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코 외로운 길이 아님을 알게 됐고,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온라인으로,오프라인으로 만나다 보면 ,머리 속도 ,가슴 속도 훈훈해지고 ,든든해진다.

오늘 하루는 정말 보람차고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