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두 손이 부지런하다면,그 속에서 많은 것이 샘솟듯 솟아날 것이다.
--스탕달--
스탕달(1783~1842) 프랑스.소설가.본명은 마리-앙리 벨이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시초로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 이래 이탈리아 예찬자가 됐으며,독특한 연애관에 의한 최초의 소설 '아르망스'로 문단에 데뷔했다.
최초의 사실주의 소설이라고 불리는 '적과 흑'을 써서 왕정보고 시기의 특권계급에 도전했고,
'파르므의 승원'에서는 전제군주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퍼부었다.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잃은 그는 애정을 주지 않는 완고한 아버지,위선적이고 까다로운 숙모,엄격하기만 한 가정교사 신부 밑에서
굴욕적이고 증오에 찬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다행히 외가쪽 친척들로부터 정신적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 중 특히 외할아버지로부터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6세에 나폴레옹 군에 입대했으나 1814년 나폴레옹의 추방과 함께 그만뒀다.
모짜르트,로시니의 음악과 이탈리아 미술을 좋아했으며,각지를 여행하면서 소설.평론.여행기 등을 썼다.
정열적인 이탈리아의 풍물을 사랑하였고,자신처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쫓는 정열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을 썼다.
그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을 아무리 보기 싫은 것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표현하여 발자크와 함깨 사실주의의 개척자로 알려졌다.
생전에는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지금은 프랑스 19세기 최고의 작가로 손꼽히며,그의 문학을 따로 '벨리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뇌출혈로 사망한 그는 대부분의 삶을 이탈리아에서 보내며,이탈리아를 제2의 고향으로 사랑했고,묘비명에 자신을 '밀라노인'이라고 표기하게 했다.(위키백과)
흥하고 망한다고 하면 어쩐지 시대의 흐름쯤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개인에게 있어서도 흥망성쇠는 있는 게 아닐까?
늘 좋기만 한 삶도 없지만,늘 나쁘기만 한 삶도 없다고 볼 수 있는데,괘종시계의 추처럼 흥과 망 사이를,성과 쇠 사이를 오가는 게 인생이라 말하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흥이나 성에 처하면 겸손하기가 참 힘든 것 같고,망과 쇠에 처하면 의욕을 갖기가 힘든 것 같다.
나 역시도 오래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크게 흥하거나 쇠한 기억이 없는 것처럼 크게 망하거나 쇠해본 기억도 없지만,
오밀조밀 자그마한 사이클을 이루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즈음엔 작은 도시였던 안양의 변두리에서 살며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우쭐해 했었고,
어린 나이에도 우쭐하며 어른들까지도 업수이 여기는 꼴값을 해댔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어른들에게 도발적으로 대꾸를 하곤 했었고,그런 당돌한 모습이 귀여워서 칭찬을 해주시는 걸 진짜인 줄 착각했던 것 같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골탕먹일 친구들이 차고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했고,그래도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걸 실력이라고 생각했던 듯도 하다.
그러다 부모님들이 이혼을 하시고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점점 많이 방황을 했었고,학생의 본분이 뭔지를 모르는 채 습관적으로 등하교를 했다.
만사가 귀찮을 땐 수업시간 외엔 책하곤 아예 담을 쌓았고,62명 중에 61등까지 해 봤던 기억이 있고,
따분해서 조금 하면 상위권까지 치솟기도 했었지만,어느 경우에나 무덤덤했던 건 마찬가지였던 듯.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대기업 생산공정에서 일을 하면서 뒤늦게 사내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
피곤한 줄도 모르고 정말 재미있게 공부를 한 끝에 1회 수석 졸업을 했지만,자만만 하다가 이내 퇴사를 하고 ,결혼과 함께 구멍가게를 시작했다.
말이 구멍가게지,손바닥 만한 가게에 도구 몇 개와 부품 몇 개만 걸어두고 사흘인가를 사람 구경도 못하면서 덜컥 두렵기도 했지만,
운이 좋아서였던 듯,참 좋은 고객이 찾아와서 개시를 해주셨고,아주 흡족해 하시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주셨다.
게다가 지역유지라 할 정도로 인맥이 넓으신 분이었던지라 가게는 이내 북적이게 됐고,돈이란 것도 벌게 됐다.
그러나 너무 열심히 벌다가 과로로 쓰러져 5년 여를 고생했고,최근엔 이혼까지 하고 혼자가 되기도 했다.
죄절을 하기도 했지만 ,1년 여만에 극복을 하고 ,정리를 한 끝에 혼자서 죽을 때까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방편까지를 마련하곤 바보처럼 히죽대며 산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선 스카웃 (?) 제의도 받곤 하지만,이젠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에 정중히 거절하고 ,
대신 사회운동을 활발히 하는 시민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가능성을 체크하면서 아직은 소극적 참여를 하고 있다.
아주 간단히 50여 년의 삶을 반추해 봤지만,그 막간엔 자질구레한 추태도 많이 행했고,자질구레한 치욕과 수모도 많이 당했다.
10여 년을 진전이라곤 모르고 정체된 듯 살았던 적도 있었고,후퇴를 한 적도 있었지만,
지내놓고 보니 결과적으론 업그레이드를 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럽고,감사할 뿐이다.
슈퍼스타가 되지 못했으니 찌그러진 종이상자 마냥 조용해야 한다곤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나같은 못난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길 뻔뻔스레 함으로써 자칫 삶의 의미쯤을 찾지 못하고 스러질 사람들에게 용기나 희망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런 걸로 인세를 챙긴다거나 할 생각은 정말 한 적이 없고,욕심이 있다면 죽기 전에 자비로라도 한 권 남기고 싶은 생각은 있다.
딸들에게 남길 유서를 대신한다고나 할까?
한가해지고 따분해지면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두려워질 것이지만,그런 때 지나온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정말 좋겠다.
팔자 늘어진 소리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그렇다,아직 직업이 있고,혼자 살면서 ,씀씀이가 헤프지 않은 습관을 들인 덕분인데,
팔자가 늘어져선 아니고,아주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고,욕심도 없어서일 것이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참으로 부지런히 산 데 대한 은총이라고도 생각하는데,
두 손이 부지런하면 그 안에서 많은 것이 샘솟듯 솟아날 것이란 말을 하려면서 제목을 망하진 않을 것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나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약게든, 미련하게든 ,끈질기게든,드문드문이든 부지런한 사람은, 크게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을지라도 망하진 않을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이다.
성공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그럴수록 성공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만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차라리 행복지상주의자가 돼서 분수껏 살 수 있는 것쯤에 만족하며 행복해 하다 보면 ,
성공의 꽁무니만 쫓아 살던 사람보다 훨씬 잘 산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잘잘못의 기준도,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어쩌면 그것은 철저히 주관적인 것일 수 있으니 ,나만 좋으면 그만 아닐까?
그렇다고 소아병적 이기주의를 추구하잔 말은 아니고,공연히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의 기준에 맞춰 살진 말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이다.
일이든, 생각이든,공부든,봉사든,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범죄행위만 아니라면 뭐든 부지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돈이든,명예든,보람이든,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고,그런 얻음은 아주 소중해서 자신의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것이다.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조심스러워질 것이고,그것 또한 그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줄 것이다.
스탕달이 저 말을 한 것도 그런 유형무형의 것들을 망라해서 함축된 말로 표현한 건 아닐까?
'할 일이 있어야 부지런히 하지?'하지 말고,여기저기 많고도 많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다니며 두 손을 부지런히 놀리면,
정말 아주 많은 것들이 그 두 손으로 솟아나온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의 이 거친 두 손이 지금의 행복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하니,감개가 무량하다.이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