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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리 사장님이...


BY 미개인 2015-04-24

이제 오토바이도 못 타겠다고...자전거나 하나 주워다 주고 가져가라시며 전화를 주셨다.

마침 한가해서 찾아 뵀더니 ...

배는 볼록하고,기운은 하나도 없어보이시는 분이 양지바른 곳에서 앉아 기다리고 계셨다.

나의 아버지보다 세 살이나 어리신데,혼자 사시면서 곡기도 끊으신지가 오래됐다는 설명이시다.

동네 이발소에서 매일같이 고스톱을 하시는 것 외엔 흠잡을 데라곤 없는 분이셨는데...눈물이 핑 돈다.

일단 자전거를 내려드리고,오랫동안 안 타셔서 고물이 다 돼 있는 오토바이를 싣고 ,

근처 읍사무소로 가서 사용폐지 절차를 도와드렸다.

한참 절차를 밟고 있던 중 직원에게 헤어진 지 30년 된 가족들을 만나 보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 수 있느냐고 문의를 하신다.

민원실에 가셔서 알아보시라고 알려주는데,"에이...됐다!"며 안 가시려고 하는 걸 억지로 끌다시피 모시고 가서 문의를 했더니 

친절하게 절차를 갖춰주면 알 수 있다면서 알려준다.

3남매를 두셨었는데,아내와 아직 미혼인 아들이 함께 살고 있는 주소가 적힌 주민등록 등본을 떼어 준다.

 

그걸 받아들고 나오시면서 아내의 이름을 확인하시는 순간 울컥 하신다.

그 광경을 보고 코 끝이 찡해졌지만 애써 태연한 척 부축을 해서 차로 모시고 오는데...

갑자기 내가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당황을 하시면서 사연을 들려주시는데...

IMF외환 위기 때 오리사육을 하다가 사업이 망하면서 헤어졌다고...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보고 싶어서 알고자 했었노라며,아내의 이름을 보는 순간 미안해서 울컥했다고 들려주신다.

그동안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애써 잊어 보려 했지만,정작 죽음을 예감하게 되자 생각이 나더라는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며 ,

차를 도로 한 켠에 세워두고 엉엉 울어버렸다.

나의 미래상을 상상했을까?아님 그저 그 분이 불쌍해서 그랬을까?

이유는 분명치 않았지만,그렇게 한 바탕 울고 나니 기분이 싸~해진다.

 

누구나 죽는 법이라며 애써 태연한 척을 해 왔지만,막상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병원에 갈 필요도 없다며 그걸 기다리시는 분을 가까이서 뵈니,

죽음이란 게 그리 태연할 수만은 없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혼자가 된 지금을 아주 만족스럽게 상각하며,이렇게 살다가 노상객사를 하는 게 꿈이라고 말해왔던 사람으로서 

과연 그게 나의 진심이었을까를 생각하며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호탕하게 웃어 보여 드렸지만,설득력이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며 머쓱해진다.

당신께선 무엇보다 건강에 주의하라시며 다 알아들었다는 식으로 지그시 바라보시는데,참 고마운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참 좋은 분도 많고 ,훌륭하신 선생님도  많은 것 같다.

오늘...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참 많은 걸 깨닫게 됐고,또 많은 걸 배운 것 같은 생각도 든다.

한 뼘쯤 커버린 듯한 느낌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인생...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