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부정하게 대하지 말 것이며,남이 나에게 부정하게 못하게 하라.
--무함마드--
무함마드( 570 ~632 ) 이슬람 예언자.성사(聖使)
마호메트,또는 모하메드라고도 불린다.
메카의 지배계급 가문에서 태어났지만,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돼서 가난한 삼촌의 집에서 살며 무역활동을 하게 됐다.
삼촌을 따라 시리아로 갔다가 한 기독교 수사로부터 예언자의 징표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목동일을 하며 자라게 됐다.
이후 삼촌의 소개로 부자 과부인 하디자를 만나 ,그녀를 대신해서 무역을 떠나 큰 성공을 올리게 되고,
스물 다섯 살에 40세인 하디자의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부와 명예를 얻게 되고 금식하며 ,사색하며 진리를 찾게 됐다.
그러던 중 히라 산 동굴에서 명상에 잠기던 중 "무함마드여,그대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계시를 받게 되고,
그의 아내가 이비아니교의 사제였던 와라카 이븐 나우팔을 만나 ,그가 만난 것은 천사 가브리엘이었다며 무함마드가 예언자라는 말을 듣고 ,
그런 사실을 무함마드에게 모두 말한 후 무릎을 꿇고 최초의 무슬림 신도가 됐다.
친구들이 무슬림으로 개종을 했고,3년째 되는 해,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라는 정체성으로 자신의 친구와 친족을 모아놓고,하늘의 계시에 의하여 ,
유일신 알라의 전지전능함,만물의 천지창조,최후의 심판 및 천국과 지옥 등을 주장하고 설교를 시작했다.(위키백과)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에게 그 일을 하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것은 곧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할 수 있는데,무함마드의 저 말 역시 비슷한 맥락의 말이라 생각된다.
남에게 부정하지 말되,남들로부터 부정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방어를 할 이유도 있는 것이다.
도둑을 맞는 일이 생기면 도둑을 맞은 사람에게도 얼마간의 책임이 있다는 말들을 하는 것처럼,
나에게 부정한 짓을 하는 자는 나에게서 얼마간 허술한 점을 발견했거나 결점을 찾아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자.
나는 결혼 생활 중에 처남에게서 2억여 원을 사기당했다.
20여 년 전의 나에겐 고생끝에 겨우 마련한 전재산이나 다름없던,대출까지 받아서 한 투자였는데,그리고 처의 동생이었기에 믿거라하고,
아무런 근거도 남기지 않고 알아서 키워달라고 맡겼다가 녀석이 증발을 해버리는 일을 당한 것이다.
처음엔 한동안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얼마간 남은 대출금을 갚으면서는 분하고 억울해서 혼이 났지만,
몰둘 바를 몰라하는 처를 보곤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얼마나 멍청해 보였으면,내가 얼마나 허술해 보였으면 친누이 남편을 상대로 사기를 칠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기로 하고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사랑스러운 딸들의 어머니이자 나의 처이기도 했던 그 사람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자 마음이 아팠고,
혹여나 돈 잃고 사람까지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 결정을 내렸던 것인데,의외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처음처럼 일도 열심히 해서 얼마간 남았던 빚도 갚았고,조금씩 모으기 시작할 수도 있었다.
내가 녀석에게 부정한 짓은 안 했으나 ,내가 좀 더 철저하지 못한 탓에 녀석이 나에게 부정한 짓을 저지르게 만든 결과였다.
우린 이와 비슷한 크고 작은 피해를 많이 주고 받으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만 좋아서 남들로부터 당하고만 사는 사람도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그가 피해를 보고 마는 것으로 그치면 좋은데,그것은 다른 사람 하나를 망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요 놈한테 이렇게 해서 이득을 봤으니 다른 놈에게 해도 문제가 없겠지?생각하곤 상습적인 전과자를 만들게 되는 것이고,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도록 도와주고 방관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내가 좀 더 신중했고 철저했더라면 피해도 당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도 열심히 일해서 사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말이다.
오늘도 어제의 온순했던 사람이 아닌 ,분노로 들끓어있는 사람으로 변해서 난장판을 부린 한 손님과 시비가 붙었지만,
그래서 경찰들까지 와서 남세스러운 꼴도 당했지만,잠시 편하자고 타협하지 않았고,결국은 사과를 받아내고 ,
훈계까지 해서 보낼 수 있었기에 ,망신은 당했을지언정 마음만은 흐뭇할 수 있었다.
재차 다짐까지 받아내고,설사 나약해 뵈고,하찮아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절대 무시하거나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은 하지 말아달라고 사정까지 했으니,
그는 앞으로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와의 일을 떠올리며 잘 살아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게 됐다.
나잇값을 하기가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됐고,더욱 분발하며 살아야겠단 생각도 하게 해 줬으니 나로서도 얻는 바가 컸고...
오전 중에 민족문제 연구소 회원들과 독립기념관에서 회합을 갖고 ,교묘히 위장을 하고 ,사실 날조를 해서 당당히 독립기념관에 기념된 인사들을 규탄하고 왔다.
참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소극적인 행위에 불과했지만,그 일들을 하면서 적어도 난 이렇게 살진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할 수 있었기에 뿌듯했는데,
오자마자 손님과 얼토당토 않은 일을 겪게 된 것인데,마침 저 말을 얻어들게 됐다니...세상 참...
일거수일투족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언제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닥치는 망신이나 ,곤란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내일 아침에 귀태 새끼 중 하나인 박근령이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망언을 해댄 걸 규탄하는 자리에서 분신자살한,
최 현열님의 발인이 광주에서 있다고 하여 참석한 회원들 대부분이 가기로 했지만,
너무 장사도 안 되는데다가 피곤하기도 해서 나는 빠졌지만 마음만은 전하고 싶어 장례비 모금에 참여를 했다.
그 분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고,그렇게 함으로써 귀태의 새끼들에게 똑똑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까지 담아서 ,
독립군의 후손이기도 한 그 분의 ,초라한 장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정성까지 담아서 성의를 보였다.
그리고 우리 민족문제 연구소의 모태적 존재이신 임 종국 선생님의 생전의 요양처이자 집필장소이기도 했던 독립기념관 인근의 '요산제'라는 곳도 찾아
당신의 정신을 되새기며 그의 유혼을 헛되지 않게 하겠노라 다짐도 하고 왔다.
새로 주인이 되신 분들의 호의까지 넘치게 받으면서 새삼스레 믿지도 않던 풍수지리설의 덕일까를 생각하기도 했던,
귀하디 귀한 경험을 많이 했던 오늘이었기에...
가슴이 참 벅차고 행복한 날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민족문제 연구소 회원님들과 임 종국 선생님,그리고 독립유공자님 제위,끝으로 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나의 허튼 소리에 귀까지 기울여준 손님에게까지
진심으로,감사를 드리고 싶은 하루였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