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갈망하고 추구하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J. 플레처--
존 플레처(1579~1625) 영국.극작가.
1606~25년 경 프랜시스 보몬트 등의 극작가들과 협력해 많은 희극과 비극 작품들을 남겼다.
아버지 리처드 플레처는 존이 태어난 구역의 목사였다가 ,나중에는 궁정 목사,주임 사제,주교를 역임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재판 때 그녀에게 가혹한 비판을 가하고 가차없이 그녀의 처형을 집행함으로써 유명해진 사람이었다.(다음 백과사전)
'필라스터',처녀의 비극', '왕이로되 왕이 아니다'의 세 편이 영국 연극의 고유한 장르를 완성시킨 낭만적 희비극의 대표작으로서 ,
셰익스피어의 낭만극에 영향을 미친 공적과 함께 높이 평가된다.(위키백과)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며 주저앉아 버리거나 ,비판을 하며 폭력적 저항을 일삼기도 한다.
하지만 희망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갈망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생겨나는 것이다.
성서에서 '두드려라,열릴 것이다'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말일텐데...
문 저쪽엔 희망의 세상이 펼쳐져 있는데,문 앞에만 서 있을 뿐 저절로 열리기만 바라는 사람에겐 결코 희망의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잘 살고 싶다면서 일을 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실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서 공부를 하긴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황당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 그런 황당한 일을 저지르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갈망하고 추구하지 않는 건 생각지 않고 세상이 왜 이렇게 절망적이기만 하냐고 따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니...
공적,사적 빚이 숨통을 조여오지만,그것이 다 우리들이 빚은 것임을 자각하는 사람은 없고,
박근헤 정부가 빚탕감 조치를 취할 때 ,사람들은 빚을 안 갚고 버티지 못한 것을 애통해 했고,
이후 빚을 지기는 하되,언젠가 또 있을지도 모르는 빚탕감 소식을 기대하며 갚을 생각을 안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아연실색!
공적인 것이든 사적인 것이든 다 우리들의 무책임과 공짜심리,도덕적 해이 등이 빚은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이 갚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빚을 부추긴 친일 매국노가 중심이 된 기득권층들의 조장은 괘씸하기 그지없으나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우리들 자신이었으니,
저것들만을 탓할 수도 없는데,여전히 빚을 져서 빚을 갚으며 현재의 방만한 경제철학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다.
초이노믹스란, 말도 안 되는 경제정책으로 가장한 친일 매국노 장사치들의 상술이 횡행할 때도 별 생각없이 놀아나곤...
이제 와서 그 빚의 족쇄때문에 옴쭉달싹도 못하겠다면서 앓는 소리를 해대고,살려내라고 떼를 쓰는 꼴이라니...
친일 매국노들의 음모가 1세기가 넘도록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300명의 국개의원들 중 적극적으로 친일 매국노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자 ,찾을 수가 없는 현실에서,
성남시장 이 재명이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친일 매국노 잔당 청산,우리의 의무이자 사명이다"라고 외침으로써,
본인의 의사완 상관없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전하며 ,전국적인 지지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긴가민가 하던 나도 저 말을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외치는 모습을 보곤 그의 팬이 돼 버렸다.
최근엔 아산을 방문한 그의 강연을 들으러 일찌감치 가게문을 닫아걸고 찾았고,
뒤풀이 장까지 끝까지 함께 하면서 자정이 넘도록 그를 응원하고 왔다.
사회정의를 외치면서,정작 불의세력의 핵심인 친일 매국노들을 외면하고 그들과 타협하는 정치꾼들의 비겁함에 치를 떨어왔다.
'안 철수 현상'으로 어렵사리 정치권에 입문한 안 철수 신당에서 슬로건을 공모할 때도 ,
나는 '친일 매국노 척결당'을 슬로건으로 내걸자고 응모를 했고,그 해 국회에서 신년회를 함께 하면서 직접 구두로도 강조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친일 매국노 아니라 그 할배들의 표 하나라도 아쉽다는 식으로 어정쩡한 행태를 보이며 실망감을 키워가고 있다.
당장 뭐라도 해내리란 조급증이 보이지만,그게 얼마나 큰 패착인지를 그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안 철수 현상이란 거품에 아직도 취해있는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난 그의 초심을,그리고 어렵사리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때의 사명감을 느끼고 있기에 기다리고 꾸준히 응원을 하고 있다.
왕초보인 그에게 왜 아무것도 못하느냐고 이죽거리는 민중들도 문제지만,
왕초보 주제에 단칼에 개혁을 해내리라 욕심을 부리며 구정치인들의 구태의연에 동참하는 그가 더 큰 문제이지 않은가 생각은 하면서도,
워낙 순수하고,영리하며,사심이 없고 ,도덕적인 그는 조만간에 현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대안을 찾아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내일 아침 10시 반,
천안의 독립기념관 집입로 초입에서 민족문제 연구소 주최로 '홍난파 단죄문 건립 행사가 벌어진다.
친일 매국노 음악가인 홍난파는 버젓이 독립기념관 안의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지금 독립 기념관 입구의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대기하고 있다.
'광복의 동산'에...
거기에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그의 친일 행적을 소상히 적은 안내판을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제작해서,홍난파 비 옆에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현충사로 이동하여 친일 매국노 화가가 그린 이 순신 표준영정 교체 서명운동을 한다.
지난 번 같은 친일 매국노 화가가 그린 유 관순 표준영정을 교체한 업적이 있는 민족문제 연구소의 다음 표적이다.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의 표준 영정 역시 친일 매국노 화가 장우성이 그린 것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무관심한 사이 우리의 일상 깊숙이까지 침투한 친일 매국노들의 흉계는 가히 공포적이랄 만하다.
워낙 어마어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에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보냐며 수수방관을 해야 할까?
단국대학이 설립자 장형 선생의 독립정신을 배반하고,후손인 듯한 현 명예총재 장충식이 ,
친일 매국노 홍난파의 기념비와 음악관을 설립하여 기념하고 있고,
그의 이름으로 의료사고를 당해서 피해를 입은 본인을 소송으로 괴롭히며 보상하지 않으려 갑질을 해대고 있다.
그러면서 단국대는 임시정부 독립정신을 계승한 대학이라고 널리 선전하고 자빠졌다.
친일 매국노 협력기관인 광복회장이 참석한 설립 기념 학술회의를 하는 이중인격적 행태를 일삼고 있다.
이율배반적 행태의 표본적인 작태를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이 지역의 민족혼을 어지럽히며 후학을 양성한답시고 나대고 있는 것이다.끔찍하지 않은가?
[출처] "단국대는 임시정부 독립정신 계승한 대학"|작성자 11
하나같이 절망만 하고 수수방관하거나 그것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사이 반민특위의 후신이랄 수 있는 민족문제 연구소에선,
끝없이 친일 매국노 정권의 방해공작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저것들의 협조단체로 전락하고 만 광복회 등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광복회가 친일 매국노 세력으로부터 지원 등을 받으며 친일 매국노 협조기관으로 변절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지만,
민족문제 연구소가 만여 명의 회원들의 후원금만으로 묵묵히 벌여온 일들과 이뤄온 업적은 실로 혁혁하다 할 수 있다.
최근 여타 단체들과 공동으로 발기한 민주주의 국민행동(민주행동)의 활약상 역시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친일 매국노들을 덜덜 떨게 만들고 있다.
매주 토요일이면 쥐새끼를 잡으러 강남역에서 출발하여 쥐새끼가 사는 집까지 행진을 하고 있고,
서울 광장에서의 친일 매국노와 독재세력을 규탄하는 시위 등에 앞장서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사생활을 접다시피 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며,사생활을 접고 나서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 의해 이나마라도 나라가 유지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은 것 같다.
아니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빨갱이라거나 ,할 일 없는 놈팽이들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접하면, 절망도 하게 되고 전의도 상실하게 되지만,
우리는 묵묵히 옳은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험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는 마음으로...
내일 딱히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독립기념관 진입로 초입의 광복동산으로 모이자!
가족들 모두 참석하고,드넓은 독립기념관 안의 가을정취를 만끽하며 민족혼을 고취하는 기회로 삼아주면 좋겠다.
주차비 외엔 입장료도 없으니 ,김밥이라도 싸서 찾으면 ,피크닉을 하기도 정말 좋은 곳이 우리 주변에 있다.
시간이 되는 사람은 기념관 뒤편의 흑성산 등산을 해도 좋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가을 나들이가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정의로운 사회에의 희망은 쑥쑥 자라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