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김영세--
김 영세(1950~ ) 디자이너.대학교수
물질만능주의를 넘어서 물신숭배의 세상이 돼 버렸고,그 과정으로 성공지상주의가 판을 치게 되면서 ,
뭐라도 하나만 잘 하면 되는 세상이 돼 버렸고,한국은 어느새 편협하고 자기만 잘난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 돼 버린 것 같다.
과연 성공은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것일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잘못 산 사람일까?
그리고 그 성공의 기준은 꼭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만 하는 걸까?
그리고 1인자의 자리에 오르면 모든 걸 독식해도 되는 걸까?
교수들이 학점을 빌미로 꼼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어놓곤 제자들을 강대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일삼고,부하직원을 성추행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정치꾼들이란 허섭쓰레기들 상당수가 어김없이 성추행범이면서도 뻔뻔하게 현직에서 나대고 있는 걸까?
행정부 수반의 자리를 도둑질한 년이 임기 중 전 민중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들면서까지 전 애인의 사위인 놈팽이와 성추행을 일삼는 걸까?
국가적 자산인 청와대를 아방궁처럼 독차지하곤 문고리 3인방으로 하여금 철통수비하게 만들어두고 ,본질적인 용도를 못하게 만들어두고 ,
귀태의 가정사를 왜곡하는 최후의 수단을 달성하기 위해 전용을 해도 되는 걸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성공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교수네 정치꾼이네 사장이네 댓통년이네 하는 것들의 그런 작태를 비난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그런 성공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사회가 이리 혼란해진 것은 바로 그런 성공지상주의에 기인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성공만 하면 쿠데타도 무죄,불법대선도 무죄인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버린 것이다.
내가 가장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한 방법으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반대급부 따위를 염두에 두지 말고 그저 내가 할 도리에 충실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얼마간 뜻하는 바가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실적과 업적을 쌓아도 추해보이기만 하는 것도 그런 때문일 것이다.
보라!
다들 주변의 크고 작은 모임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의 실적을 쌓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뛰는 사람들,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름답게만 보이는가?
너무 계산적이고 교활한 인간으로 보이진 않는지?
우린 감히 범접도 할 수 없는 정치꾼들의 모임을 보면 얼마나 추한가?
불세출의 영웅으로 시골에선 추앙을 받는 인물들이 머저리 꼴통같은 허섭쓰레기한테 굽신대며 총알받이로까지 나서서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
친일매국노란 집단을 위해서,색누리당이란 집단을 위해서 발벗고 뛰는 추한 몰골들을 우린 거의 매일같이 보고 있다.
배알이 꼴리기도 하지만,그것들의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고 불쌍하기까지 할 것이다.
인생이란 본질에 대해 생각을 해 보면 우리가 왜 성공지향의 삶을 살아선 안 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태계에선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칙이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간들의 삶은 그와 달리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며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원칙이 상식이다.
그래서 우린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미성년자들을 각종 법으로,상식으로 보호하고 있고,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성인이 돼서 사회에 뛰어들면 ,어른들끼린 다시 짐승적 원칙의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 걸까?
힘이 최우선이고,권위가 최고이며 물질의 다소로 인격의 질을 결정해버리는 세상이 과연 인간적인 것일까?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할 것이며,가지고 누리며 힘이 있는 것들은 당연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지역별,세대별 갈등이라고 단정짓고 말기엔 부족하다.
최첨단의 21세기에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인도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계층간 갈등이 엄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위 1퍼센트를 향한 99퍼센트의 레밍쥐의 행렬과도 같은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그 레밍쥐의 행렬에 뛰어들어 봐도 성공할 확률도 희박하기만 하지만,일단 성공을 했다 해도 짐승적 삶에 불과하니...
그 행렬에 뛰어들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인간적 삶을 추구한 가난뱅이보다 못한 삶이지 않은가?
우린 최근 자살을 한 성완종이란 인간을 알고 있다.
전형적인 레밍쥐 행렬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퍼센트 안에 끼어들기 위해 매진했다가 배신감에 치를 떨다가 전모를 밝히고 죽어버렸지만,
저것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짐승만도 못한 허섭쓰레기로 치부하며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반성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가 밝힌 전모를 근거로 처벌을 받는 놈도 한 개도 없다.
아직 선두권에 끼지도 못한 우리들의 미래상일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그러고 싶은가?
시민단체 등에도 보면 원래의 추구하는 바와 달리 자신들의 정치적 발판으로 삼으려는 똥파리급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모습을 깨달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다 보면 ,더 큰 절망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나마 그런 똥파리들이라도 있으니 이 단체가 유지되는 거 아니겠느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자리에 오르기까진 추상처럼 불의를 고발하고,그것에 맞서 싸우던 인물이 일단 정치권에 들어가면 ,
그동안의 수고 이상을 보상받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더 추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한 페친분으로부터 .'멀쩡해 뵈던 것들도 정치인 되면 다 쓰레기가 되나요?'하는 질문을 받게 된 것도,
아주 함축적으로 이런 불상사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희망적이게도 우린 그런 성공지상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지도자상을 눈 앞에 두고 있으니...
안 철수 의원과 이 재명 시장이 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을 지향하기는 하나 그걸 최고의 목표로,최후의 목표로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삶은 잔잔하지만 오래 가는,널리 퍼지는 향기를 풍기고 있다.
아직 이런 이전투구에 익숙하지 않은 안 철수 의원은 다소 서투른 면이 있어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이지만,
그의 외유내강형의 가치관이 엿보여 아직도 그를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 알지만,
험악한 안티들의 기세에 눌려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밝히기조차 어렵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순수하고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으며 단지 사명감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니며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기에 ,
아직까지도 그 주변을 뒤덮고 있는 똥파리들이 알아서 사라지게 되고,내공을 쌓아가노라면 미래의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다.
이미 무위로서,존재만으로도 정치권을 각성시키는 큰 일을 했다 할 수 있지만,앞으론 더 큰 일을 해낼 것이다.
성남 이 재명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도 ,얼마간 정치권에서 갈고 닦은 내공이 크고,임기응변에도 아주 능숙한데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계산적인 정치공학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해야할 말과 일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단 면에서 ,
나이는 안 철수보다 적은 줄 알지만 정치선배로서 먼저 길을 닦아줄 인물이라 생각되는 것이다.나로선...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이 재명이 먼저 정권교체를 달성해서 민중들을 잘 리드하며 발판을 멋지게 닦아주고,
그 사이 배우고 익히며 그의 모범을 본보기 삼아서 안 철수가 이어받아 완성형에 가까운 정치문화를 이뤄주길 바라는 것인데...
그들 둘이라면 현직에서는 물론이고, 전후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을 이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칼라일의 '영웅론'을 살펴 보면,그런 인물들을 키우기 위한 우리들의 자세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 작은 영웅이 돼야 할 것이다.
뭐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란 건 누구나 알 것이다.
내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진리임을 알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 영웅적 사고방식을 갖지 않는 한, 절대 영웅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영웅적 삶을 추구하며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노라면,
큰 영웅을 떠받들고,그의 행보에 동참해서 큰 영웅의 길을 함께 닦아갈 수도 있게 될 것이란 게 나의 생각이다.
결과는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주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지금 이 불의세상에선 그렇지만도 않지만, 우리들이 정의를 추구하며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머잖아 그런 세상이 다가와줄 것이다.
왜 이렇게 더럽고 불평등한 세상이냐고 불평불만할 시간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과정에 만족하고 사노라면 ,
성공하지 않고도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불안한 삶을 살지 않으면서도 행복한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 아닐까?
문득 '꾸뻬씨의 행복여행'인가에서 나오는 말이 떠오른다.
"행복은 의무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