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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스스로 채우고 베풀 때 빛난다!!


BY 미개인 2015-11-07

사랑은 홀로 설 수 없다.스스로 사랑을 채우고 이를 베푸는 것,그때 사람이 사람답고 세상은 아름답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발타자르 그라시안(1601~1658) 스페인.문필가.철학자.

로마의 위대한 철학자 세네카와 비견되는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열다섯 살에 발렌시아 사라고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고,열여덟 살에  아버지의 권유로 예수회에 입회한 후 평생을 수도사로 살았다. 

젊은 시절 탁월한 설교 솜씨가 스페인 국왕 필리페 4세의 눈에 띄어 한동안 궁정고문을 역임함으로써 남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 등

'생각은 남다르게,기발하게 하고 ,말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평범하게 하자'주의자였던 그는 글만큼이나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와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46년 종군 신부로 참전한 그는 전쟁터를 넘나들며 군인들을 격려하고 위안을 줌으로써 '승리의 대부'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세상을 해석하는 독특한 주관과 고집스러운 태도 때문에 상층부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했다.

그의 초기 저작 '영웅'은 시대적 ,정치적 상황을 절묘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스페인 국왕이었던 필리페 4세는, 이 책은 '위대함이 가득한 주옥 같은 책'이라 평하고,궁정 도서관 서가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라고 명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비판기,전3권', '지혜와 기술'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네이트 지식에서)

 

오늘은 민족문제 연구소의 산파역이신 임 종국 선생님의 26주기 추모식이 있는 날이었다.

시인이자 비평가.사학자인 그는 일제치하에서 친일을 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친일문학론', '흘러간 성좌' 등의 연구.집필을 포기하려고도 했었지만,

아버지로부터 숨기지 말고 밝히라는 말씀을 듣고 연구 및 집필에 몰두한 결과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집필을 완료했으며,

연구 과정에 확보한 친일 인명카드 12.000 장으로 친일 인명 사전을 발간하려 하셨으니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89년 60년의 생을 마감하셨다.

그걸 밑거름으로 삼아 국민들의 성금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후배들이 법적, 물리적 저항을 무릅쓰고 발간하였고,

'민족문제연구소'란 당당한 시민단체를 발기시키신 산파이시기도 하다.

 

나는 과거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후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친일매국노 척결을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과 1인시위를 하면서 ,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을 접하게 되고 ,지난 정기총회에 참석했다가 그 실체를 보곤 후원회원 가입을 하게 되고 드문드문 행사에도 참석을 하게 됐다.

적잖은 가격에 구입을 망설이다가, 어려운 민문연의 후원을 위해 얼마간의 시민역사관 건립기금까지 보태서 구입을 했고,

오늘 선생님의 추모식에 그 책을 들고가서 보여드리며 첫인사를 하게 됐다.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적잖은 비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셔서 참으로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특히 '우키시마 폭침사건'이란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그 진상을 알리기 위해 애쓰시는 전 재진 선생님을 뵙게 되어 특별히 감명깊은 하루였다.

그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뒤풀이 행사까지 하며 내 손을 꼬옥 잡아주시던 선생님의 ,'동양평화론'에 적극 공감을 하여 

그 자리에서 '세계평화론'을 외치기도 했고,많은  회원들의 각오도 접할 수 있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보이는 게 다라고 생각하는 듯한 생각을 하는 것에 반발하여 ,

나의 혁명론을 주장했다가 비웃음만 사고는 화딱지가 나서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척을 하며 와버리고 말았다.

일제와 친일매국노들의 1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한민족말살 음모를 인정하길 거부하며 ,

저것들의 치밀하고 집요한 음모를 인정하지 않고 ,보이는 게 다인데 보이지도 않는 걸 갖고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었지만,

임 종국 선생님 같은 분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계시고,우키시마 폭침사건 진상을 밝히시려는 전 재진 선생님 같은 분이 곁에 계시기에 ,

그리고 그 선생님께서 나의 트럭을 보시곤 꼭 한 번 찾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큰 희망을 갖게 된 하루였던 것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하루를 마감한 것이었다.

당장 뭔가를 얻어내서 누리려고 해선 절대 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텐데...

아직도 많은 개혁가들이 ,민족주의자들이,애국자들이 내가 기어코 이뤄내서 누리고 말리란 허욕들을 부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임 종국 선생님도 당신의 건강까지를 희생하시고 ,사리사욕을 내팽겨쳐가며 혼신의 힘을 다하시다 후배들에게 업적을 넘겨주고 돌아가셨으므로,

오늘 모인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고 결의를 다지게 하시는 힘을 발휘하시는 것인데...

선생님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는 어리석은 후배들은 당장 뭐라도 이뤄내서 누리고자 하고 있으니 ...

얼마간의 시간을 내고 있고,얼마간의 물질적 후원을 하고 있으니 그러지 못하는 사람보단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대안을 집요하게 묻기에 ,보이지 않는, 지면 밑에 흐르고 있는 수맥을 보자며 ,중간중간 터진 간헐천을 보고 그게 다라곤 생각지 말고 근본적인 치유책을 고민하자고,

단기간엔 죽었다 깨어나도 승리할 수 없는 불의와의 투쟁이니,그 자리에서도 누군가 인정했듯 우린 이미 친일매국노들에게 완패를 하고 있으니 ,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고도 지속적으로 ,저것들 일제나 친일매국노들보다 더욱 치밀하게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지만,

그들의 귀엔 황당한 3류 소설로만 들렸을까?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고,전 선생님께서 그나마 나의 손을 꼬옥 쥐어주시며 힘을 주셨지만,

그 자리의 사람들은 그 선생님까지도 술주정뱅이쯤으로 치부를 하는 것 같아 슬프기까지 해서 도저히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치가 하고 싶은 것일까?

현학이 하고 싶은 것일까?

글줄 몇 줄 더 읽었다고 잘난 척을 해대고 남의 말을 청해놓고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 시대 민중들의 절망스러운 태도를 접하곤 절망을 했다.

그런 중요한 시각을 갖추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행사 참여 횟수나 늘리자는 식의 문자를 보내온 것에 분노했다.

꾸욱~

 

차라리 나 혼자 길거리의 담배꽁초를 줍고,불우한 이웃들을 둡기 위해 파지를 주워모아서 보태드리는 나만의 애국을 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어보이지만,

그러나 일단 참여한 만치 ,그리고 지난 정기총회에서 본 희망의 불씨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포기는 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두들겨서 열어젖히고 싶다.

오늘 참석하셨던 전 재진 선생님께서도 말씀 하셨듯 그들이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고 ,작은 것에의 집착을 버리고 보다 크고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되기까지 ...

오늘처럼 툭 화두만 던지고 빠지는 식으로라도 끊임없이 두들기고 또 두들겨댈 것이다.

화두를 던지고 깨달으라고 독촉을 해 봐야 꼰대취급만 받고 말테니,역효과를 낼 게  두려워서이다.

그리고 나만의 투쟁과 실천도 쉬지 않고 하다가 가볍게,미련도 후회도 없이 죽어줄 것이다.

그들이 아직 자신의 잠재능력을 인정하지 못하고 ,하잘것없는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동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 ,

꽉찬 자신의 내면이 시키는대로 ,보다 크고,보다 보람찬 인생을 살 수 있게 되기까지 지원을 하면서 나대로 실천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가는 곳마다 욕심이 차고 넘치는 것 같다.

명예욕,권력욕,물질욕 등이 그들의 내면 채우기를 방해하고 있는데,그걸 놓지 못하고 소탐대실하고 있는 자신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운이 좋아서 이렇게 자유로워질 수가 있었고,그래서 스스로에게 집중해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채우는 데 집중할 수 있지만,

그들에겐 어쩌지 못하는 부양가족 등이 있고,앞날에의 불안이나 두려움이 무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끈기있게,참을성 있게 지켜보고 ,권고하고,나누면서 향상하길 희망해가리라.

자신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얼마나 많은 허물들을 뒤집어 쓰고 자신들의 아름다운 내면을 숨기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기 위해서 ,

나 스스로를 더욱 계발하고 실천하면서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다.

한 살이라도 더 먹고,코딱지만큼이라도 자유로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처세라고 생각하기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내면의 것들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알 때까지 두들기고 또 두들겨서 허물을 벗겨주고 싶다.

그러기엔 아직도 나 스스로를 채우는 데 부족하니 더욱 용맹정진하면서 스스로를 채우고 또 채워가리라.

그리고 나눠가리라.

그래야 나도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게 될테니...

 

부모님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자신의 내면이 시키는대로 따르는 데 매진하셨고,

그래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임 종국 선생님의 영면을 기원해 본다.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기에 더욱 존경의 염을 갖게 된다.

오늘 하루,나는 벅차도록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아 행복하다.

함 석헌 선생님이나 법정 스님,김 수환 추기경님의 곁자리에 선생님을 고이 모셔본다.

우리들 모두가 닮아가야 할 본보기적 삶을 살아내신 선생님을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