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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척 하는 딸이 되지 말자


BY 재재맘 2015-11-10

몇년전에 제 블로그에 올린 글인데요.

읽다보니 그냥 잘 보이는곳에 보관하고 싶어서 옮겨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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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딸 넷에 아들 하나, 5남매다.
우리 셋째, 넷째는 이름도 남동생 보라고 좀 남자이름이다. 그나마 내 이름까지는 여자이름이지만.
부모님은 지금 기억에도 참 열심히 사셨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시다.
아주 어릴 적엔 아빠가 미군부대에 다니셨고, 그래서 아빠는 미군부대에서 신기한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오시기도 했고, 그 옛날 '네모난 상자 속에 든 딸기 아이스크림'은 아마도 먹어본 아이들이 몇 안될 것이다. 그 딸기아이스크림의 맛은 아직도 40년 가까이 훌쩍 넘은 내 혀끝에 살아있기도 하다.
6살 이후 아빠와 엄마는 이사를 했고 우리집은 구멍가게를 시작했다.
가게를 한다면 친구들이 "야, 넌 맛있는거 많이 먹겠다!" 하고 부러워했지만
우린 10원짜리 아이스케키 하나 맘대로 먹을 수 없었다.
10원짜리 아이스케키 하나를 팔면 1원이 남던 시절, 
내가 아이스케키 하나를 먹으면 엄만 11개를 팔아야만 겨우 1원을 남길 수 있다는 걸..
그 때는 몰랐었다. 그래서 못먹게 하는 엄마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던지...
가게 단골 중 '삼촌'이라 불렀던 이가 계셨다.  때만 되면 '종합선물세트'를 사주고 가셨다.
그 종합선물세트는 뜯어서 가게에 다시 진열되어 판매되어야 했다.
엄마 아빠는 새벽부터 일어나 나물이며 생선이며 부식거리를 파셨다.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가져다 가게 앞에 '전'을 펴놓고는 새벽장사를 하셨다.
밤이면 가게 앞에 '포장마차'를 세워놓고 포장마차를 운영하셨다.
어린 마음에 포장마차가 신기해서 쫄랑쫄랑 재료 나르고 왔다갔다...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언니가 5학년이면 난 3학년 동생은 1학년 그 밑에 5살, 3살... 줄줄이 사탕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어떻게 사셨을까?
지금처럼 2구, 3구짜리 가스렌지가 있던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수도꼭지만 틀면 더운물이 콸콸 나오는 것도 아닌 그 시절...
새벽이면 연탄아궁이에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그 연탄은 또 아침 저녁으로 갈아주어야 했고,
겨울이면 찬물에 5남매 빨래를 모두 손으로...
그 당시 그렇게 사신 부모님이 비단 우리 부모님 뿐이랴만....
 
그래도 내 가슴 속, 기억 속에 우리 부모님의 삶은 나에게만은 그 누구의 삶보다 특별하기만 하다.
지금 내가 기억하는 이런 기억들은 우리 부모님 삶 중의 아주 작은 정말 깨알보다도 작은 일 중의 하나겠지.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힘든 시간들이 당신들께 있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친정아빠가 편찮으시다. 한 10년 전에도 어려운 고비를 한번 넘기셨는데 이제는 그 때와 또 달리 나이가 드신 지라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엄마는 혈압약을 드신다.  간간히 드리는 전화 한 통화,   한달에 한 두번 찾아가는 거,  그리고 가끔 용돈 챙겨드리는 거 외에 내가 할 수 있는게 뭘까?
아빠 몸 관리 때문에 엄마 힘들다 하셔도 내가 엄마 곁에서 아빠 곁에 붙어 앉아 삼시세끼 차려드릴 수도... 병원에 검진을 가셔도 시간내서 매번 쫒아갈수도 없는것이 이 딸의 현실이다.
남편은 나보고 착한 척만 하는 딸이랜다.
말로만 걱정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찾지 않는다고...
어제 그 일로 면박을 주는 남편이 오히려 고마웠다.
그런 남편의 성화에 일요일 늦은 오후 친정에 갔다.
가는 길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하는 '감자탕'을 '대'자로 2통 사갔다. 형부네 식구들이랑 동생들이랑 같이 맛있게 먹었다.
아빠는 늘 씩씩하시다.
엄마는 너무 피곤해보였다.
엄마, 아빠가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시골 집을 알아볼 참이다. 아빠 엄마가 편하게 서로 건강 챙겨가며 사실 수 있는 그런 공기좋은 시골집을 알아볼 참이다.
나서주는 남편이 고맙다.
내가 딸로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다 해드리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니 내가 할 수 없는 것도 필요하다면 해드리고 싶은 게 맞을 것이다.
부모님이 내게, 우리 5남매에게 해주셨듯이, 새벽으로 밤으로.... 비가오나 눈이오나 말이다.
착한척 하지 말고 정말 잘해야하는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