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양서를 읽는다는 것은 지난 몇 세기 동안에 걸친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
--데카르트--
르네 데카르트(1596~1650) 프랑스.물리학자.근대 철학의 아버지.해석기하학의 창시자.
그는 합리론의 대표주자이며 본인의 저서 '방법서설'에서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는 계몽사상의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주체'의 근본원리를 처음으로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1606년 예수회가 운영하는 라 플레쉬 콜레즈에 입학하여 1614년까지 8년 간에 걸쳐 철저한 중세식,인본주의 교육을 받게 된다.
1626년부터 2년 동안 수학과 굴절광학을 연구하며 미완성 논문 '정신지도의 규칙'을 쓴다.
1628년 말,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다시 저술활동에 몰두해 '세계론'을 프랑스어로 출판했으며,
1637년에는 '방법서설'에 굴절광학,기상학,기하학의 세 가지 부분을 덧붙여 익명으로 출판했다가,후에 프랑스어로 '방법서설'을 완성한다.
1644년 자신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라틴어로 '철학원리'를 출판했다.
그 후 그는 여러 사람들과 편지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곤 했는데,보헤미아의 왕 프리드리히의 딸,팔츠의 엘리자베스에게 최고선에 관한 자신의 생각들을
편지로 보낸 것들이 모여 1649년 출판된,그의 마지막 저서,'정념론'이 된다.폐렴으로 54세에 세상을 떠났다.(위키백과)
참으로 많고도 많은 책들이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넘쳐나고 있는 요즘 ,과연 어떤 게 양서인지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스터디셀러로 인정돼 온 인문학 서적 등을 잘만 선별해서 곱씹으며 읽는다면 참으로 좋은 시간이 될텐데,
사실 나부터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서부터 독서량이 부쩍 줄어든 것을 부인할 수 없다.
1992년 처음 컴퓨터 통신을 시작하게 되면서 두문불출하고 그 비싼 통신료와 전화비를 2중으로 물어가면서 통신에 빠져있던 적이 있는데,
2G폰을 고집하면서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의 그런 중독현상에 대해 한심하다 했던 나는,적어도 그러진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90년대의 컴퓨터 통신과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나를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채팅 위주의 컴퓨터 통신과는 달리 사회참여에의 의미까지 있다 보니 나름대로 의미까지 부여하게 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어서 벗어나서 독서삼매경에 빠져들어야 할텐데...
그러나 '손가락 혁명'이라 이 재명 시장이 명명한 것처럼,이런 사회참여의 방법도 생각하기에 따라선 현대사를 읽는 것이라 할 수 있을테니...
불특정 다수와 생각을 나누고 ,몰랐던 것을 배워가면서 ,차후의 사회활동의 밑거름으로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정치혐오증에 걸린 환자였다가 최근들어서야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보이지 않는 이면의 훨씬 많은 진실을 보게 되면서부터 자극을 받고 있으니...
스마트폰으로 오락이나 하지 말고,드라마만 보지 말고,얼마간 세상 돌아가는 데도 관심을 가지고 양서를 읽는 듯한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한다.
물론 모든 삶의 이기로부터 벗어나 고요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독서를 하고 명상을 하는 시간을 매일,잠시라도 가졌으면 한다.
불안감이나 욕심을 키워줄 뿐인 허접한 프로그램 등은 꼭 봐야한다면서 ,정작 중요한 양서와의 만남이나 명상엔 소홀한 사람들은 불행할 수 밖에 없잖을까?
최근 한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스타 지망생들을 키우는 방법을 거론했는데...
그것은 조곤조곤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라면서 ,스스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들의 기량을 보고,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도 하고,좌절하며 상처도 받으면서 자극을 받아 스스로 분발을 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게 그 비법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 나라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운영자로 알려진 인사다.
우리가 양서를 읽는 것도 어쩌면 그의 말처럼 자극을 받기 위한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방편이지 않을까?
같은 말을 만 번 들으면 그대로 된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우리들이 때론 저항을 하고,귀를 기울여 듣기도 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같은 말을 들은 때문에 우린 어느새 부모님을 닮은 성인이 돼 있더라는 논리다.
허섭쓰레기같은 억지주장이 사회를 온통 뒤덮다시피 하고 있는 요즘...
그런 쓰레기성 소음으로부터 빗장을 닫아걸고 ,훌륭한 사람과의 단독대면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무병장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내 안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가는 것도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다시 말하면 우린 모두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생인데,
스스로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도록 공부에,일에,취업에,빚에,비교.경쟁에 내몰리며 일벌레처럼 살아서야 되겠는가?
헌법에 보장된 이 나라의 주인들이 과거 매국범죄인들의 후손들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하고,탄압을 받으며 살아서야 말이 되겠는가?
군주시대에서나 가능한,그리고 무지한 탓에 과도기적 고통을 뼈저리게 느껴 본 사람들이나 감지덕지할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의 부당함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당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서야 되겠는가?
우리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있다 보니,그리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다 보니 우리 사회 모든 부조리의 원흉인 친일매국노들은 살판이 나지 않았는가 말이다.
평화적 시위군중을 차벽으로 가둬버리곤 거기서 뛰쳐나오려 몸부림을 친 것을 공권력에 도전한 것으로 언론과 함께 윤색해서 민심을 어지럽히고,
나를 포함한 그 날의 14만 명 시위군중 모두를 폭도로 몰려고 일선경찰서들에선 쉬지 않고 소환을 해대고 있는 것을 아는가?
소환에 응해 봤지만 말도 안 되는 혐의사실을 계속 추궁해대며 제압을 하려는 고압적인 모습을 견찰들이 보이고 있단 말이다.
심부름꾼이 주인을 불러서 세워놓고 꾸지람을 하는 형국이다.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상황을 당하고 나서는 기분은 그야말로 다 때려부수고 싶은 심정일 뿐이었다.
하지만 저것들이 이러는 것은 우리의 이런 억울한 심정을 폭발시켜 폭력을 자행하게 만들고,여론을 조정하려 하는 것임을 알기에 ,승리하는 그날까지 참기로 한다.
우리는 짓밟히고 또 짓밟히면서도 절대 폭력적이어선 안 된다.
그것은 곧 저것들의 꼼수에 휘말리는 것이니 ,당장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참고 또 참아야 한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공연한 싸움질에 정력을 허비해선 안 되고,또 명예까지 더렵혀선 안 되기 때문이다.
깡패새끼들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고 더러워서 피하되 반드시 신고해서 처벌을 해야 하는 것처럼,
폭력적 독재세력들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고,내년부터 있을 선거에서 조용히 표로 심판해버리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것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들이나 ,협조를 하는 것들도 발본색원해서 반드시 추려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막연한 의지만으론 안 된다.
옥석을 가리는 안목을 갖추기 위해 역사 등의 인문학전 양서들과의 접촉도 늘려가야 할 것이며,
스마트폰을 통한 현재사의 흐름도 적확히 분석하는 능력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
현재 쓰여지고 있는 역사이기에 현대사와 구별하여 현재사라 이름붙여 봤다.
그리고 틈틈이 현장에 나가서 그들 정의로운 세상을 이룩하기 위하여 힘을 합치고 있는 동지들과의 스킨십도 늘려가야 할 것이다.
뜻을 모으기 위한 서명행사도 찾아다니면서 서명을 하며 용기를 붇돋워주고,시위에도 동참하며 피부로 느끼기도 하고,
뜻이 맞는 곳에서 늘 함께 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성의껏 기부도 하며 감사하노라면 정의로운 세상은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만 알고 그쳐서도 안 된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지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함께 동참도 하면서 진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모범적인 사람이 돼야 할 것이다.
도리를 다하고 살면서 주변인들로부터 욕을 먹지 않는,소위 '법이 없어도 사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슨 소리를 해도 상대방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설 수 있고,동참도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자신은 효도를 하지 않으면서 남들더런 효도를 하라고 하면 콧방귀 밖에 더 뀌겠는가?
우리들 스스로 정의롭게 살아가면서 남들더러도 정의롭게 살자고 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뀌는 만큼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그래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