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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행복은 사랑!


BY 미개인 2016-02-07

인생에서의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빅터 위고--

 

빅토르 위고(1802~1885) 프랑스.시인.소설가.극작가.

동부 프랑스의 브장송에서 나폴레옹 군대의 고급장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0대 초중반에 문호가 될 것을 다짐했다 한다.

스물세 살인 1825년 프랑스 왕실로부터 작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기사 훈장을 수여했는데,이 무렵부터 여러 잡지에 문학평론을 싣기도 하고,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간의 문학 논쟁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낭만주의 문학 이념의 초석을 다졌다.

7월 혁명의 해인 1830년2월,희곡 '에르나니'의 초연에 즈음하여 낭만파와 구전파 간에 문학사상 유명한 '에르나니 싸움'이 일어났다.

이 싸움에서 위고는 고전파의 방해에 대비하여 미리 수많은 동지를 '박수치는 사람'으로 극장 안에 배치,

청년시인 고티에가 빨간 조끼를 입고 싸움의 앞장을 섰던 일화가 유명하다.

이 싸움 승리 후에 낭만주의는 고전주의를 압도하여 이후 1850년 경까지 문단을 점유했으며,

위고는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여,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작가로서 소설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1841년엔 대망의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됐으며,1843년 이후 10여 년 간은 정치활동에만 전념하기도 했다.

가톨릭과는 화해하지 못했고,교회의 기도마저 거부하며 1881년 유언장에도 , 

"신과 영혼,책임감,이 세 가지만 있으면 충분하다.적어도 내겐 충분하다.그것이 진정한 종교이다."라고 썼다 한다.(위키백과)

 

나는 늘 당연한 사랑은 없다고 주장하며,사랑받는 데만 익숙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 왔다. 

사랑에 있어서도 엄연히 갑과 을이 존재를 하게 되면서 갑질이 일반화 돼 있다시피 한 현실이 안타까워 취해온 태도인데...

결국은 그런 사랑의 갑질의 일반화로 우리 나라가 이혼천국이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모나 조건,성별 등의 우위를 앞세워 갑질을 하는 게 당연시 되는 상황에의 반성은 없이 ,이혼 빈발에의 고민도 안 하는 사회가 안타깝기도 하고...

생로병사를 겪게 되고,흥망성쇠를 반드시 겪어야 할 운명을 하나같이 타고난 인간이기에,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상황은 수시로 벌어질테고,갑일 때 잘못한 쪽은 을이 돼선 처절한 복수를 당하게 되고...

그런 인생행로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갑질을 해댄 쪽은 늘 버림을 받으며 쇠락하게 된다.

더군다나 민주사회로의 전환이 친일매국노들에 의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한 한국사회에서의 이혼 빈발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역사까지를 왜곡하며 우리를 역사로부터 떼어놓으려는,그래서 그런 현상을 갈파하지 못하게 하려는  저들의 꼼수를 좀 더 깊이있게 파악하려 애써야 할 것이다.

 

이성간의 사랑도 그렇지만 부모자식간이나 이웃들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여서...

피로 맺어진 부모자식 간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당연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아가페라 하여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표현들을 하고 있지만,우리 모두는 부모이자 자식이기도 한 사람들일텐데...

내리 사랑은 그리도 잘 하면서 정작 치킴이 사랑엔 소홀하기만 하면서 결국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자신에게 소홀한 자식들을 원망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런 서운함을 당한 연후에야 깨달아서 효도를 하려 하니 이미 부모님들은 돌아가신 경우가 대부분이니...

문학으로,음악으로,그리고 철학으로 이런 우리의 모순된 행태를 바로잡고자 하는 시도는 끝없이 이뤄지고 있지만,

글을 읽고,노래를 흥얼거리면서,강연을 들으면서는 잘도 눈물 짓는 사람들이 정작 효를 행하는 덴 인색하단 걸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이처럼 모순된 동물이 생태계에 과연 존재할까 싶으면서 인간이란 것이 새삼스레 부끄러워지기도 하더라는...

 

철부지 자식들은 남의 부모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그 정도로 잘해주는 부모들도 당연하다며 공치사를 하지 않는데,

뭐 해준 게 있다고 공치사를 해대느냐며 바락바락 대들곤 하지만,늘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 생각하는 부모로선 할 말이 없긴 하지만,

과연 만물의 영장이라고,사고하고 말을 할 줄 알아서 고등동물이라 자부하는 인간으로서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

과연 그렇게 부모의 가슴에 난도질을 해대도 된단 말인지 ?

적어도 당신들보단 잘 살아주기를 바라면서 밤잠을 설쳐가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길러왔고,얼마간 머리가 크면 알아서 잘 커주기를 바라며 ,

밤낮없이 생업전선을 뛰어다니며 온갖 수모를 다 참아내면서도 어금니를 꽉 다물고 참아가며 살고 있는 부모들인데...

스스로 알아서 잘 커줄 자신이 없거든 시키는대로나 잘 따라주면 힘든 것도 잊고 고생을 할 수 있을텐데...

난 철이 없으니 잘못도 하고 속도 썩이면서 부모로부터 무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맥이 빠진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자식들이 원수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해선 기운을 빠지게 만들어댄다.

 

이웃들 간에도,내가 나이가 많다거나 ,조금 더 많이 가졌으니,아님 조금 약하니 ,권력이 있으니 무작정 나한테 잘하라고만 한다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더군다나 피붙이도 아닌 마당에...그런 생각이 있다면 내가 먼저 상대에게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자신들은 베풀기를 인색히 하면서 바라기만 하고,그게 뜻대로 되지 않으면 험담을 하거나 딴죽을 걸어대면서 싸움질을 하고 싶어하니...

조금 고상한 척 하는 게 고작 위화감이나 조성시켜서 기를 죽이는 정도라면?

참 사회적 동물이란 소리나 말든지...

문득문득 무인도로 들어가서 혼자 살고 싶단 생각을 하는 사람들 많을 줄 알지만,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어울려 살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 쌓이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사회가 온통 우울해져만 가고 있다.

 

우린 사랑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서 자기가 한 만큼 누리며 살게 설계돼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란 말이 진리인 것이다.

콩을 심어 놓고 금송아지가 안 달린다고 떼를 쓰는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단 말인가?

콩을 심은 데선 반드시 콩이 나고,가뭄이나 태풍이 휩쓸어가면 그나마도 못 거둘 수 있는 게 세상살이인데...

그러니 얼마간 손해를 보고 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삶 자체가 은혜로워질텐데...

바득바득 이익만 보려는 사람들 뿐이다 보니 가장 먼저 내 삶부터가 팍팍해지는 것이다.

대신 얼마간 손해를 보고 살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이내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이 가족들이나 이웃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알게 모르게 사랑을 받게 될테니...

처음에야 긴가민가 하겠지만,초지일관 한다면 스스로도 사랑을 받고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게 곧 최고의 행복임을 알게 될 것이란 저 말은 참으로 명언 중의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뭐 별 거 있는 것 같은지?

그저 순간순간 행복하단 생각을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게 곧 행복인 것이고,행복한 인생을 산다면 무슨 여한이 있을 것인가?

금괴덩어리를 제 아무리 많이 가졌다 한들 그걸 지키느라 불안불안 하다면 그게 사람의 삶인가?셰퍼트의 삶이지...

그리고 제 아무리 많이 가졌다 한들 죽어서까지 누리고 사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봤단 말인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지나는 것과 같다고 성서에서 말하고 있건만,

독실한 크리스천이란 사람들도 하나같이 부자가 못 돼서 안달을 해대면서 입으론 연신 천국행을 기구하다니...

생태계에 있어 인간만큼 모순 덩어리인 존재가 있을 것인가?

사고의 능력을 타고나서  그런 불행의 씨앗만 키우는 게 고작이라면 차라리 금수만도 못한 존재들 아닌가 말이다.

 

사랑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 보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려고 애를 써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