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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명예는 정비례한다.


BY 미개인 2016-05-17

고통이 크면 클수록 그 고통을 이겨내는 명예는 더욱 크다.

            --몰리에르--

 

몰리에르(1622~1673) 프랑스.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와 더불어 희극의 개척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본명은 장 바티스트 포클랭이며 ,파리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상류층 교육기관에서 공부했다.

이 시기에 에피쿠로스 철학에 동조하는 피에르 가상디(프랑스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와 교류하며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이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그는 어려서부터 귀족들을 조롱하고 풍자하길 좋아했다고 한다.

많은 시련 끝에 파리에 입성했고 1658년 루이 14세 앞에서 '사랑에 빠진 의사'를 공연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

왕으로부터 오텔 드 프티부르봉 극장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었었으며,소극 '우스꽝스러운 프레시외즈들'로 대중적 성공을 거두게 됐다.

3대 성격 비극으로 꼽히는 '인간 혐오자','타르튀프', '동 쥐앙'을 남겼으며 '수전노','부르주아 귀족' 등의 희극사를 바꾸는 작품을 많이 썼다.

1673년 '상상으로 앓는 남자'를 공연하던 중 쓰러져 ,그 날 밤 숨을 거뒀다.(문학사를 움직인 100인)

 

나는 고통을 두려워하는 소인배다.

어려서부터 칭찬을 받는 데만 익숙했고,그러다 집에 들어가면 집안 가득 찬 공포 분위기에 질식할 것만 같아 두려움에 덜덜 떨며 눈치만 봐야 했다.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두렵긴 하지만 반항이라도 하는 듯 날이 갈수록 스스로 외톨이가 돼왔다.

밖에 나가면 외톨이가 아닌 듯 보이지만,늘 그들과는 딴 세상에 살면서 그들과 섞이길 두려워했다.

난 그들처럼 평범하지도 못하고,몇 푼 되지도 않는 등록금은 늘 꼴찌로 냈다.

중학교,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점점 나는 퇴보했고,고등학교 3년 동안 젓가락 하나만 들고 다니는 뻔뻔한 루저가 돼 있었다.

대학?안 가도 되는데,4년 이상을 더 이렇게 ?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요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기에,말도 안 되는 일류병을 빙자해서 진학을 포기하고 자유를 찾아 나섰다.

 

고통은 계속됐지만,나로 인한 것이어서 그닥 괴롭질 않았고,점점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고만 싶었다.

나름대로 열심히는 산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늘 자기중심적이었고,고통을 거부하는 비겁함이 다였다.

당연히 삶의 스케일은 점점 좁아져만 갔고,독선적으로 변해가다가 ,해선 안 될 결혼을 했고,결국 실패를 했다.

그래놓곤 그 어려움이 싫어서 두 번이나 죽으려고 바보짓을 했고,보기 좋게 두 번 다 실패를 했고,막말로 개쪽을 당했다.

그런데도 젊어서도 못한 고통 감내를 이제와서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며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또 다시 임시방편으로 살 길을 찾아냈다.

교활한 인간...이 바로 나다.

 

그래서 뭔가 폼나는 일이 하고 싶었을까?

3년 여 전에 주변에 득시글 대는 친일매국노 족속들과 그 주구들의 꼬라지가 보기 싫어졌다.

보란 듯이 그것들의 영지 내에서 친일매국노척결을 외치는 1인시위를 시작했고,햇수로 4년이 돼 가면서 참 더러운 꼴도 많이 봐 왔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바도 적지 않아 꼴같지 않게 부려대던 독선도 하지 않게 됐고,

우연이라기보단 필연적이라 해야 할 젊은 동지들과의 만남은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만들어줬다.

정말 고통을 피하면서 말초적 신경의 자극에만 혈안이 돼 왔던 나로선 이 열정적인 동지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게 요즘처럼 부끄러울 때가 없었는데,정말 부끄러워서 그들을 마주볼 수조차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고통은 싫고 미꾸라지처럼 폼만 잡다가 빠지려는 꼼수만 부리고 있다.

사나이로 태어났다면 적어도 자기 자손들에게 만큼은 얼마간의 명예랄 것을 남겨야 할텐데,난 그런 물건이 못 된다.

 

그래서 난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또 다시 임시방편을 찾아냈다.

3년 전 친일매국노 척결 시위를 시작할 때도 그랬고,지금 민족문제 연구소에서의 활동에 있어서도 불쏘시개 역할이라도 잘 해내잔 생각이다.

우리 나라의 모든 불의의 뿌리엔 하나같이 친일매국노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건 약간의 정신만 있는 사람이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더러운 친일매국노들을 두려워하며 못본 척을 하고 있는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며 그 더러운 무리들과 투쟁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어버이연합 같은 족속들은 서울광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핏덩이 같은 어린 것들이 운동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지나치고 있고,대놓고 빨갱이라고 욕하면서 지나치는 것들도 있으니 ...충절의 고장 천안이라 말하기 너무 부끄럽다.

제 3의 고향으로 삼고 ,아직까지는 여기에 뼈를 묻고 싶은데,요즘 같아선 천안이 싫어지려고도 한다.

친일연구의 선구자이자 대가이신 임 종국 선생의 동상을 천안에 건립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하고 추모하면서 애국심을 함양하게 만들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같이 루저들일 뿐인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친일매국노 족속들이나 되는 양 비웃고 지나치는 몰골들이라니...

그들을 보면서 또한 내가 50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게 너무 없어서 부끄럽다.

 

우리 조상들이 하지 못한 친일청산,

그래서 커질대로 커져버린 친일매국노 세력,

우리가 해내지 못하면 갈수록 점점 더 큰 짐으로 우리의 후손들을 괴롭히게 될테니...

당장 나라를 구하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들 떨지 말고 ,묵묵히 불쏘시개가 돼서 꺼지면 다시 불을 지피고 또 꺼지면 다시 지피면서 이어가자. 

불쏘시개 정신을 평생 견지해가고,우리의 후배들이 후손들이 본받고 싶어하도록 바른 생활들을 하면서 나잇값 좀 하고 살자.

주변에 열심히 살고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거든 제발,비웃지 마시고 그들의 손이라도 한 번 꽉 잡아주시게!

그 정도를 고통이라고 하긴 뭣하지만,워낙 시절이 어수선하니 그쯤의 생각도 갖기 힘들 터,

고통이라 인정하고 명예를 안겨드릴테니 ,제발...제발 비웃지들 마시고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

5.18민주화 운동을 기리는 행사조차 뜻대로 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친일매국노들과 독재의 망령들을 입모아 규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