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610

뿌린대로 거두는 게 삶이다.


BY 미개인 2016-12-05

당신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라.그러면 최선의 것이 돌아올 것이다.

                --M.A.베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아무것도 손해보지 않으면서 최선의 것을 얻기만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보들이다.

사기 등으로 공짜를 얻은 사람들도 ,반드시 댓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최순실 사태는 잘 보여주고 있잖은가?

그런데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는 ,감옥엘 가는 한이 있더라도 돈을 많이만 준다면 기꺼이 그리 하겠다 했다 하니 큰일이다.

은근히 최순실과 박근헤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없을까?

리틀 최순실이나 박근헤는 없을까?

이번 주말 200만 명,300만 명이 집결을 해서 불의세력들을 규탄한다 하더라도 침묵하는 다수들의 알 수 없는 속은 두렵기까지 하다.

 

오늘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게시물을 삭제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프리메이슨의 실체를 알리는 글을 스크랩 한 것인데,수백 수천의 곳에서 밝히고 있는 사실을 게시했을 뿐인데,

개인들 블로그까지 뒤지고 다니면서 겁을 주고 있는 유대족속들과 그 주구들의 짓인 것이다.

작금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조장한 장본인들이 바로 그것들,유대족속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신을 숭배하지 않을 수 없게 다양한 방법으로 세뇌를 시켜온 그것들은 전 지구촌인들을 빚의 노예로 만들어 그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영화 '인터내셔널'에서 주인공 중 한 사람이  '부채를 지배하면 모든 걸 지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그들의 속내를 함축적으로 잘 설명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상당 수준 목표를 달성했다고 보는데,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그 꼼수에 당하지 않을 방법은 있다.

우리는 불행하더라도 부자가 되기 위해 사는 것일까,아니면 가난하더라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일까?

마음은 후자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사람들의 손을 전자로 향하게 만들고 있진 않은지?

왤까?

이미 엄청난 빚의 부담에 짓눌려 살고 있고,욕망의 사과의 달콤한 맛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달콤한 설탕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고 취하며 병들어가는 현대인들에 비유하면 정확할 것이다.

 

일단 하고 싶은 걸 편히 하기 위해 빚을 쓴 사람들은 그 취한 것을 미처 향유햐기도 전부터 바로 빚의 부담에 짓눌리기 마련이다.

싸구려 쾌락을 취하려 고귀한 영혼을 싼값에 팔아가며 살고 있지만 정작 쾌락은 멀어져만 가는 것과도 같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을 느끼는 동시에 이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런 딜레마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간의 고통과 불편을 감수하고 내가 땀을 흘린 만큼의 결과에 만족하며,자기계발을 해 온 사람들은 다르다.

하찮은 성취감 등으로도 그것이 다 노력에 의한 것이기에 온전히 자신의 것이므로 불안하지도 않고 뿌듯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 정도의 행복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취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겼으므로 설사 잃게 된다고 해도 별로 걱정이 안 된다.

게다가 우리네 인간은 발전지향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거기 만족하면서도 한 단계 높아지려 애쓰게 되는데 그게 별로 힘들지 않다.

처음 한 발을 내딛기가 어렵지,일단 발길을 옮기기 시작하면 거기 탄력을 받아서 두 번째 걸음은 쉽게 옮겨진다.

시작이 반이란 말도 이래서 나온 게 아닐까?

 

나는 무수저였지만,공짜를 바라거나 빚을 내서 뭔가를 누리려 하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빚을 내고,아부를 하면서 성큼 앞서가는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보면서도 따라하지 않았고,배 아파하지도 않았다.

어려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다양한 분야의 일들을 하면서 산전수전을 겪는 데 몰두했고,

급기야는 굴삭기의 대표인 불도우저란 별명도 얻었고,태평양 한 가운데 갖다 둬도 어떻게든 살아나올 놈이란 평을 들었다.

아주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었지만,그렇다고 게으르게 살지도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결혼을 하고 치열하달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적도 있지만,그 치열함 때문에 파경을 맞고선 다시 원 위치.

그렇게 시행착오 체험식 삶을 살아오면서도 내공은 조금씩 쌓였고,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얼마간의 성과가 쌓이기 시작했고,지금은 그 작은 것으로 행복하기까지 하다.

 

나의 삶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시행착오란 파종을 하고 ,거기서 얼마간의 가르침을 얻어 다음 시행착오 때 덜 아프면서 성숙하는 게 삶일 것이다.

나는 지금 50대 중반의 나이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도전을 하고 응전도 하면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지나고 보니 당시엔 죽을 것만 같아서,사느니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몸서리를 치곤 했던 일들이 별 것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순풍을 타거나 역풍에 닥쳤을 때나 나름대로 의미와 기쁨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보니 이젠 슬프거나 두렵거나 불안하단 감정들로부터 좀 자유롭다.

끝없이 자신의 삶을  반추를 해가며 성찰과 반성을 거듭해 나간다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의 작가가 말한 '행복은 의무'란 말도 이런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이해하기가 아주 쉬울 것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할 자격도 있고,저마다 조건도 차고 넘치도록 갖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내면으로 잦아들어서 그 자격과 조건을 찾아내 닦고 기름칠 함으로써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행복을 느끼며 살 의무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 누구의 것과도 바꾸고 싶잖은 소중한 나만의 행복일진데,그걸 짓밟아 버리고 남의 것을 따라하며 살아가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란 세 잎 클로버를 꺾어 버리고,짓밟아대며 '행운'이란 네 잎 클로버를 추구하는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의 밭에 열심히 파종을 하고 잘 가꿔서 행복의 열매를 배가 터지도록 따먹으며 살기를 바라 본다.

 

특히 나의 분신들인 두 딸들이 너무 들뜨거나 힘들어 하느라 소중한 삶을 허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 본다.

딸들아!

지금의 역경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돼서 너희들을 더욱 강하고 멋지게 만들어줄 것이란 걸 알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