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직장생활이 힘들다는 딸아이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초복이라고 홍삼셋트를 부쳤다면서 더 좋은 걸 보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언제까지 보람도 없고 함든 직장생활을 견뎌야할지 모른다는 딸에게...
어차피 직장이라는 건 내가 향하는 길에서 내 손을 잡아주는 이웃정도의 기능일 뿐야.
그 이웃이 맘에 들면 다행이지만 그저 내 발 밑에 돌뿌리를 치워주긴 하는데
느려터지고 다정하지 못하는 건 운일 뿐이지.
그게 니가 지향하는 꿈이나 목표가 될 순없지.
부수적인 동반자정도의 개념이니까.
어르고 달래서 같이 가는게 현명하지,
밉다고 당장 손을 놓으면 갈길이 너무 멀고 돌뿌리에 채이잖아.
더 좋은 동반자가 나타나면 좋긴한데 좋은 놈이 기다릴지 더 나쁜놈이
기다릴지 모르니까.
내가 가는 길에 잠깐 거드는 이웃정도로 생각해야지 궁극의 목표는
너를 더행복하게 하는 최종의 동반자-일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그런 걸 품어야지.
"그런 걸 품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웃을 맘에 들어하지 않아.
그래도 손잡고 가는거야.
누군가는 그 시원찮은 이웃조차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고 그걸 넘어서
가지고 싶어서 열망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맘에 안들더라도 살살 달래서 돌뿌리 하나라도 더 치워달라고 해.
대략 이런글들을 나눴습니다.
딸아이는 지금의 직장전에 다녔던 직장을 힘들어하면서 다시 취업을 했는데요.
지금의 직장을 선택하고 시험을 보고 합격을 기다리던 순간이 떠오른 모양입니다.
그 때의 설레임과 기쁨을 기억해내고 다시 힘내보겠다고 하면서
내 위안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하네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분명 우리 젊을 때보다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는데 아이들은 많이 아프다고 합니다.
어떤 것으로 위안을 해야할지 어른으로서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