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친정엄마"를 보고 왔습니다.
오랫동안 일 때문에 바쁘셔서 문화생활을 전혀 못하신 친정엄마와 함께 오랜만에 봤습니
다. 한 10년전쯤 외국번역작품의 연극을 친정엄마와 함께 본 적은 있었지만, 대사가 어렵
고 조금 지루한 경향이 있어서 연극 내내 졸고 계신 엄마를 보며 죄송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이번 연극은 아주 공감되는 내용이라 재미있게 보시더라구요. 연극을 보기 전에 미술관에
가서 "샤갈"의 그림도 감상하고, 맛있는 저녁도 사드리고 모처럼 딸노릇 조금 했네요.
친정엄마역할을 맡으신 정영숙 씨의 연기도 좋았고, 딸 역할의 배우도 감동을 주는 연기
였습니다. 서울댁 역을 맡으신 전원주 씨의 감초역할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극에 활력소를
주며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저는 "친정엄마"라는 동명의 영화를 이미 본 터라,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역시 영화에서
는 느낄 수 없는 라이브의 재미와 또 스토리도 영화와는 다른 부분들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 딸의 독백 장면에서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가방 안에 손수건은 있지만, 소리가
날까봐 열지 못하고 목에 두르고 간 목도리로 눈물을 닦는데 왜 그리 엄마에게 못했던 일들
만 자꾸 생각나는지 꺽꺽거리며 눈물이 소리로 변해 목도리로 입을 틀어막고 울었습니다.
엄마가 소리없이 저의 등을 계속 토닥여 주시더라구요.
그렇게 울고 연극이 끝났는데, 역시 우리 엄마는 저에게 대 반전의 웃음을 주시더라구요.
연극을 편하게 보시려고 그랬는지 연극이 끝나고 좌석을 일어서시며 바지 지퍼와 허리 단
추를 잠그시는 거에요. 한참 울다가 엄마의 허리춤 챙기시는 모습에 저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이 뻥 터졌습니다. 역시 우리엄마입니다. 연극 대사 중에 딸이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
아" 라고 하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저 역시 이 말은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엄마가 연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난 정말 우리 엄마에게 못난 딸이었다"하며 반성
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엄마 역시 연극을 보시면서 외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신 모양이에요.
좋은 공연을 보게 되어 엄마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연극 덕분에 우리집에서 하루
주무시고 가신 엄마, 우리집 오래된 주방용품들 보시더니 새로 사주시고 가셔서 저를 더
미안하게 만드신 엄마, 모처럼 효도 좀 해보려고 했는데, 제가 받은 것이 더 많네요.
아줌마닷컴 덕분에 행복한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연극 꼭 보세요. 영화와는 다른 감동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