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처럼 난 대학로에 나오면 극장을 찾아 온 대학로 주변을 헤맨다.
지난 번 질러홀에서 드로잉 쇼를 보면서 분명 옆 극장에 잘자요 엄마 의 플랭카드를 보았다.
이번 만은 제대로 찾겠군. 여유롭게 대학로를 배회하다가 30분전쯤 극장 앞에 갔다.
이런 이곳이 아니다. 그렇다면
불이나게 뛰어 다녔다.
함께 보기로 한 동생이 조금 늦는다고 하여 극장을 알려주었는데 이론 ...
결국 헤매다가 아! 두달 전에 왔던 곳이구나! 생각이 났다.
헤~ 공연 15분 전이다.
오! 이순재 선생님이다. 정말 체구가 작으셨다. 옆집 할아버지 같았다. 므훗
공연보러 오셨나보다.
무대에는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다. 델마의 집 창너머로 내리는 비가 극이 시작하기 전 마음을 가라앉힌다.
자살을 하려는 딸과 막으려는 엄마.
자살. 순간적 충동? 이라 생각해 왔다.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하며 과연 죽음을 선택 할 수 있을까?
엄마의 대사가 귀에 맴이 돈다.
"너가 그렇게 외로운 줄 몰랐어"
누구나 나 아닌 상대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는 없을 것이다.
자살을 위해 방으로 들어가기 전 " 잘자요, 엄마 "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딸.
잠시 후 총성.
막막해지는 감정이다.
극의 시작과 거의 동시에 그쳤던 비가 내리고 있다.
무대 인사에 손숙 선생님은 감정에서 헤어나오시지 못하는 얼굴이다.
마음이 온통 자살해 버린 딸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자살로 인해 떠나가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
살면서 힘들었을 딸보다 앞으로 살면서 막막할 엄마가 가여워진다.
떠난 자 보다 남겨진 자의 마음에 기도하고 싶다.
살아가는 날이 모두 슬프지만은 않을거라고.
이 작품이 시간을 초월하며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출 문삼화) '가족'이다. 이 작품은 모녀간의 소통의 단절, 그리고 죽음을 통한 이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크게 보면 '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집에서 가족끼리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되나 생각해보면 많지 않다. 내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알아주겠거니 믿을 뿐 노력하지 않는다. 델마와 제시가 서로를 사랑한 모녀였지만 결국 제시가 혼자였던 것처럼 말이다.
제시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연출 문삼화) 제시에게 죽음은 삶에 대한 노력이고 선택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자신의 죽음을 이해시키고 싶어한다. 극의 초반,"엄마, 나 자살할거야"라고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연극은 이해시키려는 자와 이해할 수 없는 자의 지독한 심리전이다.
(제시 역의 배우 황정민) 델마와 제시처럼 자기식대로 타인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어요. 이 작품을 보시고 '제대로' 사랑하는 게 뭔지 생각하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즉 중 엄마 델마의 대사 중에 " 난 네가 내 것인줄 알았어" 라는 대사가 있어요. 그 말처럼 소유하는 사랑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그리고 존중할 수 있는 사랑을 발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무대디자인의 이토 마사코) 이 작품은 자살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묻는 이야기가 아니며, 또한 멜로드라마도 아닙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여성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고독,불안,희망,포기 등을 , 얽히고 설킨 인가느이 관계를, 죽음을 앞둔 순간에 필사적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가느이 삶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