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기자2014.01.06 11:33:11
오랜만에 안철수에 관해 글을 쓴다. 좋은 소리든 싫은 소리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섣부른 평가를 하기 보다는 좀 더 지켜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정치분석가로서 객관적 근거없이 주관적 바람대로 평가하고 전망하는 것은 그 이후 결과에 대해 사람들에게 책임질 수 없는 행위가 될 위험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지방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안철수 신당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범야권 지지층 내에서 안철수 신당을 둘러싼 찬반논란이 가열되는 듯하여, 안철수 신당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내놓는다.
1. 내가 안철수 신당에 주목하는 이유
나는 안철수 신당을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안철수가 새누리당 정치세력의 확장 내지는 재집권에 동의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면서도 야권 정치인 누구도 갖지 못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대목이 있다. 이 두 가지, 즉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키는 동시에 지지기반의 확장성을 함께 갖고 있는 정치인을 발견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70년 역사를 향해 가고 있는 우리 현대정치사에서 (제2공화국 내각제 아래 장면 정권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선거를 통해 민주세력이 집권했던 것은 단 두 차례에 불과했다. 그런데 민주세력의 후보였던 김대중, 노무현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키며 단독으로 집권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각기 DJP연합,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사실 김대중이 5.16 쿠데타의 주역인 JP와 손잡고, 노무현이 재벌정치인인 정몽준과 단일화하는 것이 말은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고서는 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는 표의 구조였기에 그러한 기형적 연대조차도 수용될 수 있었다. 그만큼 민주세력의 후보들이 자기 힘만으로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정체성의 훼손을 감수하면서라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불가피했다.
그런데 안철수의 경우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독특한 사례가 되고 있다. 범야권의 범주에 포함될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제까지의 정치인들과는 다른 확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지지층 가운데는 기존의 야권 지지층 이외에도 새누리당 지지층이 적지않게 유입되어 있고, 이 확장성은 18대 대선정국 이래로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여론조사 상에서 가상의 안철수 신당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배경이다. 그 지지율이 거품은 아닌지, 여야를 초월한 지지기반이라는 것이 신기루는 아닌지는 이후에 판명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주목할만한 현상임에 변함이 없다. 어차피 올해 지방선거야 여야 각 정치세력이 나눠갖는 결과가 예상되고, 중요한 것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인데, 민주당 단독으로 새누리당을 이길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가 갖고 있는 확장성은 범야권의 소중한 자산이다. 18대 대선에서 그 점을 애써 외면하고 계파적 사고에만 갇혀있던 세력과 그 지지층들이 안철수를 압박하다가 정권교체를 무산시킨 역사적 과오를 범한 바 있다. 같은 우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라는 정치적 자산을 야권을 변화시키고 종국적으로는 야권의 힘을 압도적으로 키우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2. 안철수는 대안이 될 수 있나?
그래서 안철수 신당의 등장은 의미있는 일이다. 혹자는 야권분열의 우려를 앞세워 안철수가 신당 창당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단기적으로 일면 일리있는 얘기일 수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 지역에 따라 새누리당이 어부지리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위험은 존재한다. 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치적 지혜와 노력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말고 이대로 가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제까지 그랬듯이 야권내 민주당 중심의 독과점체제를 유지하고 앞으로도 선거에서 계속 패배하는 길을 가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기존 질서의 해체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안철수 신당의 등장을 통해 야권의 기존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문제는 안철수가 그러한 도전을 할만한 중심적 인물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과연 안철수와 그 세력은 대안적 정치세력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이 시점에서 그 질문에 대해서는 책임있는 답을 내놓지 못하겠다. 안철수에 대한 정략적인 비판들은 물리치고라도, 나의 눈에도 안철수의 정치는 여러 가지로 부족해 보인다. 너무 원론적이이서 모호하게 들리는 언술, 지나치게 신중하여 답답해 보이는 행보, 역동적 리더십의 결여.... 큰 변화를 선도할 주역으로서의 리더십을 아직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안철수가 자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지금의 모습에 머무른다면 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실제로 있다. 안철수에게는 안철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절대적 과제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안철수 신당의 최종적 성패에 대해서는 섣부른 전망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현재로서는 우리의 시야 속에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그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은 민주당을 진작에 제치고 새누리당을 추격하고 있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 세력의 도전이 가능하다면 성공할 수 있도록 우호적인 시선을 견지하는 것이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단지 안철수 세력의 성패가 아니라 한국정치의 성패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 신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실패한다면, 솔직히 말해 나는 더 이상의 대안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게임은 새누리당의 승리, 새누리당 15년 집권의 시대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나는 2012년의 패장이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 잘해서 다음 번에는 이길 수 있다고 하는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여러 차례 확인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의 예정된 패배의 행진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비겁함을 선택하느니, 성패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도전을 성원하는 것이 옳다고 나는 본다.
3. 안철수 비토론에 대해
하지만 안철수는 우리 편이 아니지 않은가?.... 여기서 정체성을 문제삼아 안철수를 비토하는 견해들이 있다. 보수-진보 혹은 여-야의 중간에 위치하려 한다, 새 정치라는 모호한 구호를 신뢰할 수 없다, 시국에 대한 대응이 너무 안이하고 소극적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정국의 주요 고비에서 함께 투쟁하지 않는 안철수의 모습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논평만 하고 사라지고 함께 촛불을 들지않는 정치인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나는 그러한 지적에 절반은 공감한다. 2013년의 그 가파랐던 정국에서 안철수와 그 세력은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정치현안에 대한 입장표명이 강화되었고 특검법 제안같은 의미있는 행동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존재감을 찾기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 많았다. 정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역 의원이라고는 단 두 사람인 상황에서 불가피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더 역동적인 행보를 보여주지 못한 것은 그들의 대응능력의 한계였다. 꼭 촛불을 드는 방식이 아닌 안철수식 방식으로라도 정치현안들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이 필요했다. 정치 리더는 조성된 여론을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때로는 여론을 선도하는 리더십을 보일 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지적에 ‘절반’만 동의하는 것은, 안철수라는 정치인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야당을 하는 정치인의 리더십이 촛불을 드는 투쟁을 통해서만 획득되는 것은 아니며, 야당 정치인의 힘이 전통적 야권 지지층의 열광만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촛불을 들어 힘을 보태주어 권력에 항의하는 일도 중요하고,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이길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는 일도 중요하다. 물론 이 두 개의 길이 동시에 가능하면 좋겠지만, 필요하다면 서로가 나누어 갈 수도 있는 길이다.
과거 DJ가 야당을 이끌던 시절, 정국의 고비 때마다 그는 재야세력과 연대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선을 긋고 회군하는 선택을 자주 했다. 재야세력은 그렇게 장외투쟁의 김을 빼버리는 DJ를 기회주의라고 비판했지만, DJ는 거리보다는 국회를 자신의 거점으로 삼아 투쟁하는 방식을 택하곤 했다. 권력에 의해 ‘용공’의 낙인이 찍혀있던 DJ는 집권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한 노력을 쉬지않고 기울였고, 결국에는 DJP 연합까지 해가며 집권에 성공했다.당시에는 나 역시 그런 DJ를 비판했지만, 지나고 나니 DJ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과연 집권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시민들의 촛불투쟁과 정치인의 투쟁이 그 방식에 있어서 다르더라도 그것을 문제삼기 보다는 역할을 달리하며 전체의 힘을 키워가려는 시야도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4. 결국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들의 투쟁은 그 차제로 완성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선거를 통한 권력의 교체없이는 촛불은 완성될 수 없다. 시민들의 자발적 투쟁을 조금이라도 과소평가 하려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투쟁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실질적으로 권력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익히 경험했듯이 결국은 선거에서 패한다면 대부분의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간다. 오늘날 선거가 갖는 힘은 전통적 교과서에 쓰여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은 결국은 정당정치의 과정을 거치며 선거를 통해 그 결실이 맺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투쟁을 목소리를 높이는 것 이상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대안적인 정치세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박근혜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한쪽에서 박근혜를 아무리 비판해도, 우리 사회 다른 한쪽에는 박근혜를 향한 묻지마 지지층이 존재한다.그들이 두텁게 존재하는 현실에서도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실현하고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대안적 정치세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그 점에서 안철수 신당은 선거에서 이길수 있는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많이 갖고 있는 세력일 수 있다. 절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절반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이 측면 때문이다.
나는 안철수가 이 절반의 가능성을 버리지말고 보존해야 한다고 본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확장성을 얻기 위해 JP와 손잡기도 했고 정몽준과 손잡기도 했다. 그런데 안철수는 굳이 그런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확장성을 갖추고 있다. 어색하고 불편한 정치적 제휴를 하지 않아도 자기 것을 지키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라고 한다. 현충원을 참배했을 때 굳이 박정희 묘역은 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한다. 박정희는 독재자이다. 압축적 경제성장의 공이 있다 해도 그것이 유신독재의 역사적 어둠을 거둘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회에는 그런 박정희를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국민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정희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그들조차도 껴안아야 하는 것이 정치의 숙명일 될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부가 박정희 기념관에 국고지원을 했던 것도 박정희가 독재자였음을 몰라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잇달아 지고 결국 박근혜 정부를 들어서게 한 현실은, 지난 과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2007년 대선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왜 반복적으로 졌는지에 대한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성찰이 없다면 아무리 박근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16년 총선에서, 2017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다시 승리를 구가할 것이다. 그리고 나라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때 패배자들은 또 다시‘ 힐링’하고 있을 것이다.
5. 안철수에게 주문한다
이 글은 안철수를 엄호해주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단지 작금의 시국과 나라의 앞길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안철수를 보다 전략적 사고 속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안철수를 향해 굳이 어느 편인가를 묻고 정치적 알리바이를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벗어나, 이기기 위해서는 안철수라는 자산을 껴안고 갈 필요성이 아직도 유효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가 자신과 같은 편임을 확인하는 일 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더라도 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하고 평화친화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정치인이 분명하다면, 같이 손잡고 가려는 접근법이다.
그러나 안철수를 향한 여러 비판이 모두 전략적 사고의 부재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안철수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안철수의 정치행보가 보여준 그동안의 여러 문제 혹은 한계들에 대해 여기서 재론하는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다만 현재의 시점에서 몇가지만 주문하고 싶다.
첫째, 신당창당을 하려면 지방선거 이전에 신속하게 해야 한다. 안철수 세력의 입장은 아직도 신당창당 ‘추진’이다. 지방선거가 6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그 이전에 창당할지 조차 국민에게 밝히지 않고 있다. 굳이 창당을 일찍해서 지방선거에서 모험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라는 생각 때문이라면 결코 정치변화를 선도할 수 없는 안전제일주의 행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높은 지지율이 허물어질까 조심스러워 소극적인 행보로 일관하다가 결국 지지율이 하락하고 민주당에게 잡아먹혔던 것이 불과 1년여 전의 일이었다.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모든 것을 걸고 결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정치인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국민 앞에서 주저하며 자신있게 나서지 못하는 세력이 어떻게 한국정치의 판을 바꾼단 말인가. 신속한 신당창당을 통해 모호함의 정치와 결별하기 바란다.
둘째, 안철수 신당은 야당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새 정치라는 최상위 슬로건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안철수 세력 자신이 야당임을 물타기하는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정당 가운데 여당은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야당이다. 그런데 안철수 세력은 자신을 구태여 야당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 여야를 넘어선 새 정치? 물론 여야 모두 극복해야 하지만 안철수 신당은 ‘새 정치 당’이기 이전에 야당이다. 그것은 진영논리의 소산도 아니요, 정권을 견제하는 야당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한다는 정체성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확장성의 기반이 되는 보수적 지지층의 이탈을 염려하여 야당의 역할에 주저한다면 정작 집토끼를 다 잃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달리는 설국열차 안에서 중립은 없다.
셋째, 논리로 정치를 하려하지 말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를 해야 한다. 안철수는 흔히 기승전결식의 논리로 자신을 이해시켜려 한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도 어렵고 듣는 사람도 어렵다. 때로는 한마디의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경우가 있다. 나는 안철수가 사람들과의 정서적 연대를 강화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를 하기 바란다. 언제인가 페이스북에 누가 올린 얘기가 생각난다. 2012년 11월 안철수가 사퇴하던 날 밤, 안철수의 선거사무소 앞에는 그의 사퇴를 만류하는 지지자들조차 없었다고.... 문재인이 사퇴발표를 했다면 사퇴를 만류하는 지지자들이 몰려와 밤을 지새웠을텐데.... 신당을 함께할 사람들과, 지지자들과, 그리고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사람들과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착한 안철수’도 아니요, ‘똑똑한 안철수’도 아니요, ‘마음을 함께하는 안철수’이다. 자신을 향한 많은 시비를 해소할 수 있는 마스터 키는 사실은 안철수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을지 모른다.
- 글이 길어졌습니다. 더 길어지면 읽는 사람들 힘들테니 이쯤에서 맺겠습니다.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답답하기만 했고 조마조마 하기도 했던 나의 마음을 정치적 논리로 후련하게 해 준 좋은 글이다.
물론 100% 다 공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부족,논리부족으로 답답하게 가슴만 치던 데서 벗어나 새로운 길에의 희망을 보여줘서,그리고 그의 존재가 아주 긍정적이라는 데서 큰 기쁨을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