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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선언문.의열단선언문(1)


BY 미개인*친일청산 2014-05-10

조선혁명선언ㆍ의열단 선언문 / 펌


1.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國號)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 천택(川澤), 철도, 광산, 어장 … 내지 소(小)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 가옥세, 인구세, 가축세, 백일(百一)세, 지방세, 주초(酒草)세,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 소득세 …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을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웬만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 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오, 대다수 인민 곧 일반 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종년(終年) 소득으로 일신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진공하여 그 살을 찌워주는 영세의 우마(牛馬)가 될 뿐이오, 
내종(乃終)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輸入)이 연년(年年) 고도의 속율(速率)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아귀(餓鬼)부터 류귀(流鬼)가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 경찰정치를 여행(勵行)하여, 우리 민족이 촌보(寸步)의 행동도 임의로 못하고, 
언론, 출판, 결사(結社), 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회한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 뜬 소경이 되고, 자녀를 낳으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무(誣)하여 소잔오존(素盞嗚尊)의 형제'라 하며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라고 
일본놈들이 적은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하면 강도(强盜)정치를 찬미하는 반(半)일본화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 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하에 감옥에 구유(拘留)되어 
주리, 칼 씌우기 ,차꼬 채우기, 단금질, 채찍질, 전기(電氣)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매는, 콧구멍에 물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刑律)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서 옥문을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廢疾者)가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斷絶)하며, 진취활발의 기상은 경우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 편태(鞭笞), 구박, 압제를 받아 환해(環海) 삼천리가 일개 대감옥이 되어 
우리 민족은 아주 작은 인류위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 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초개로 보아 을미 이후 십삼도의 의병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군대의 행한 폭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삼일 운동 이후 수원, 선천 … 등의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 서간도, 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주민을 도륙(屠戮)한다, 촌락을 소화(燒火)한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오욕(汚辱)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인신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악형한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을 '산 송장'으로 만들려 하는도다.
이상의 사실에 거하여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異族) 통치가 우리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殺伐)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내정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가 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평화', '한국독립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이 묵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 재산 자유 보호', '조선인민 행복증진'등을 신명(申明)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이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 보느냐? 
삼일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 민원식 등 매국노 한둘을 시키어 이따위 광론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하는 자는 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적(奸賊)이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막대한 도량이 있어 개연(慨然)히 차등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민족은 일반의 아귀(餓鬼)가 될 뿐이 아니냐.

참정권은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몇 노예대의사(奴隸代議士)의 선출로 어찌 아사의 화를 구하겠느냐.

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가종의 자치임을 물문(勿問)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제국'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그 부속하에 있는 조선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허명(虛名)으로써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일본이 돌연히 불보살이 되어 일조(一朝)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환부(還付)하며, 
내정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환(撤還)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허명의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봉대(奉戴)한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

일본 강도 정치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는 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능이 있으랴.
쇠망한 인도족, 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일(一)은 금전의 힘으로 그 선조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일(一)은 그 토지의 넓음과 인구의 많음으로 상고(上古)의 자유발달한 그 여택(餘澤)을 지키고 보존함이니, 
어디 모기와 등에같이, 승냥이와 이리같이 인혈을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보존한 전례가 있더냐?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자오(自嗚)하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거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자(내정독립, 자치, 참정권논자)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자(문화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강도 일본의 구축(驅逐)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아래와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제일은 외교론이다. 
이조 오백년 문약(文弱)정치가 '외교'로써 호국의 장책(長策)을 삼아  그 말기에 더욱 심하여 
갑신 이래 유신당, 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외원(外援)의 유무에서 판결되었다.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갑국(甲國)을 끌어들여 을국(乙國)을 제함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 의존의 습성이 일반 정치 사회에 전염되었다. 
즉 갑오, 갑신 양 전역에 일본이 누십만의 생명과 누억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 노 양국을 물리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하는 이들은 
일검(一劍) 일탄(一彈)을 우매하고 탐욕스러우며 난폭한 한 관리나 국적(國賊)에게 던지지 못하고 
공함(公函)이나 열국(列國) 공관에 던지며 장서(長書)나 일본 정부에 보내어 국세의 고약(孤弱)을 애소하여 
국가존망, 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이 처분·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 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천 년 만의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哈爾賓 )의 총, 종현(鐘峴)의 칼, 산림유생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자(勇者)로 보면 침 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인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리고도 망국이후 해외로 나아가는 모모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일미(日美)전쟁, 일로(日露)전쟁 등 기회(機會)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었고, 
최근 3·1운동에 일반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過信)의 선전이 
도리어 이천만 민중의 분용(奮勇)전진의 의기를 타소(打消)하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제 2는 준비론이니, 을미조약의 당시에 열국공관에 빗발듣듯하던 종이쪽으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해아밀사도 독립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불계(不計)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아관대의(峨冠大衣)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산양포수의 화승대(火繩隊)를 몰아가지고 조·일전쟁의 전선에 나섰지만 신문쪽이나 본 이들은 - 
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리 할 용기가 아니난다. 

이에 '금일 금시로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사졸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감각(感覺)되어,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었다.

경술국치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몰하여 십여 년 내외 각지에서 목이 터질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없는 회(會)뿐이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력(誠力)의 부족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 경제 양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의식(衣食)의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지 일의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실로 한바탕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4.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驅逐)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 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위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 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 세력, 곧 신구 양 상전 중 누가 어질고 누가 난폭한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보아 
그 향배를 정할 뿐이오, 직접의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주기군이조기민(誅其君而弔其民)'이 혁명의 유일종지(宗旨)가 되고,
 '단식대장이영왕사(簞食壺漿以迎王師)'가 혁명사의 유일미담이 되었었다. 
그러나, 금일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 팽창의 열기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궤(定軌)에 벗어나 
무전무병(無錢無兵)한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구(外寇)도 구축하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제일보는 민중각오(覺悟)의 요구니라.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규(熱叫)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 부자연, 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선각한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先驅)가 됨이 민중각오의 제1로(路)니라.

일반 민중이 기(飢), 한(寒), 곤(困), 고(苦), 처호(妻呼) 아제(兒啼), 세납(稅納)의 독봉(督棒)에, 사채(私債)의 독촉, 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이다. 
이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主因)되는 강도정치의 실시자인 강도들을 격폐(擊斃)하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에 전하며 모든 이가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사람마다 그 '아사(餓死)' 이외에 오히려 혁명이란 일로(一路)가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자는 그 의분에 못이기어, 약자는 그 고통에 못견디어 모두 이 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널리 전파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활잔폭(奸猾殘暴)한 강도 일본이 필경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불러 일깨워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養兵) 십만이 일척(一擲)의 작탄(炸彈)만 못하며 억천장(億千張) 신문잡지가 일회 폭행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끝이려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벼랑끝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아니 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이전 경과로 말하면 갑신정변은 특수세력이 특수세력과 싸우던 궁중 일시의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대의로 격기(激起)한 독서계급의 사상이며, 
안중근, 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熱烈)하였지만 그 후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1운동의 만세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잠시 드러났지만 또한 폭력의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 폭력' 양자 중 하나만 빠지면 비록 굉열장쾌(轟列壯快)한 거동이라도 또한 천둥같이 끝나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의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라', '일본을 구축(驅逐)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奸猾)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참절장절(慘絶壯絶)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흑암(黑暗)한 함정이오,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명한 활로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참절장절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 - 암살, 파괴, 폭동 - 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

1.조선총독 및 각 관(官) 관리
2.일본천황 및 각 관 관리 
3.정탐노(偵探奴), 매국적(賣國賊)
4.적의 일체 시설물

이외에 각 지방의 신사(紳士)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적 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中傷)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서 갚을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강도 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 폭력을 파괴하려는 것은 
제1은 이족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족 그것이 전제(專制)하여 있으니, 
이족전제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한 조선을 발현하기 위하여 이족통치를 파괴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