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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흔남...운수는 나빴으나 정겨웠던 날


BY 미개인 2014-08-25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밤이었지만,차도 살피고,나를 기다리고 있을 파지들도 만나야 했기에...

우비를 입고 조심조심 달리다 ,어제 고객의 집에서 바닥난 기름을 조금 보충해서  불안한 오토바이의 기름통을 채우기 위해 주유소로 들어가는데,

주유소 둘레에 홈을 파고 그 안에 철골을 심어 놓은 곳에서 바퀴가 미끄러지면서 빠지더니 쓰러졌다.헐~

오른쪽 팔꿈치가 아프고 허리가 약간 욱씬거렸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아 잠시 누워있었는데,

헐~자기 집에 온 고객이 쓰러져 있는데도 사람들은 저만치서 구경만 하고 있다.

이래봬도 대여섯 번은 왔던 단골손님인데,이리 야박할 수가...

툴툴 털고 일어서며 이 홈을 왜 파두셨느냐며 ,이 홈 때문에 넘어진 걸 말하니,법적으로 그래야 해서 파뒀을 뿐이라며 변명에만 급급!

괜찮느냔 물음도 없이 멀뚱멀뚱 서서 오토바이를 세우고 파지를 주섬주섬 주워 담는 걸 구경만 한다.

오른쪽 팔꿈치가 3센티미터 정도 푸욱 파였고 우비도 찢어졌네.우쒸~

저쪽으로 들어오지 왜 이쪽으로 들어와서 넘어졌느냐기에 어이가 없어 들은 척도 않고 "기름이나 5천 원어치 넣으세요,아자씨!"하고 말았다.

다니는 길목이고 다른 곳보다 리터당 10원 정도가 싸서 가끔 들르던 곳인데,정나미가 뚝 떨어져버렸다.

'절대로 오지 말아야쥐~'

 

난 대로 변의 육교 밑에서 장사를 하면서 겨울에 육교를 오르내리다가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사람들이 보이면 

냉큼 달려나와 다친 데가 없는지를 살피고 약도 발라주곤 했는데,

이건 자기 집에 온 손님이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시설물 때문에 넘어졌는데도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자기들 잘못은 없다는 투로 일관하다니...

세상 인심 한 번 고약하다!

사고 신고를 하고 보험처리를 하며 좀 귀찮게 할까 하는 생각도 순간적으로 해봤지만,쩝!관뒀다.

 

시위현장까지 가서 파지를 차에 옮겨 싣고 점검을 하며 차 앞의 바위에 걸터 앉아 담배를 태우며 한 숨 쉬고 있는데,

일가족이 산책을 나왔다가 이게 뭔가 하고 관심을 보이기에 슈퍼갑질의 실체를 알리고 ...

또 다시 툴툴 털고 일어서서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려 어둠컴컴한 시골길을 유유히 달려준다.

길 옆의 밭에서 포도와 고구마 등을 재배해 파는 원두막에 들러 고구마를 한봉지 샀다.

1킬로그램에 3천 원.싸다.덤까지 주신다!^*^

지나다니면서 봐온 바론 두 노친네가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는 것 같던데,많이 팔아드리면 좋으련만 ...

아직은 여름끝이기도 하고 해서 끝물쯤에 많이 사기로 하고 당장 먹을 것만 사면서 ,

잠시 걸터 앉아 손가락 굵기의 것들을 삶아 시식용으로 내놓은 것을 집어 먹으며  말동무를 해드린다 .

작년에도 출장 갔다 오다가 고구마를 사서 잘 먹었다며 운을 뗀 후 예전엔 직산에서 성거를 가는 길목이었는데,

지금은 큰 길이 저만치 나면서 예전같질 않겠다며 걱정을 해드리고,단대치대병원의 어이없는 만행에 저항하느라 이 길을 매일같이 오간다고 했더니,

거기 잘 한다고 소문나서 사람들한테 그리 가라고 해왔다던 아주머니께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신다.

그러더니 포도도 한 송이를 불쑥 내미신다.

3천 원 어치밖에 팔아주지 못하는 엉터리 손님에게 인심 한 번 후하시다!^*^

잘 먹고,  안녕히 주무시라고,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파지를 마저 채워서 갑으로 착한 아저씨 작업장에 부리고 돌아오니 밤 열 시.

중독이다.

귀찮다고 하루라도 쉬면, 새벽같이 쌓여있을 파지더미를 생각하며 즐겁게 나오실 아저씨가 얼마나 실망하실까 염려가 되어 

어제도,오늘도,그리고 내일도 뚝 차고 일어나 밤거리를 배회하는 미개인.

그리고 마무리로 냉수마찰을 하러 가며 뒷골목 언저리에 내놓아진 쓰레기 더미에서 추린 파지를 약속 장소에 쌓으며 즐거워하는 미개인.

남들이 못하는,아니 안 하는 일을 함으로써 단 한 분이라도 즐거워질 수 있다면 성공인생인 게야!^*^

덕분에 난 부지런한 근성을 유지할 수 있어 좋고,아저씨는 몸이 조금 찌뿌드드하거나 비가 오면 안 나오시고 컴컴한 골방에 홀로 들앉으셔서 텔레비전이나 보시던 데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와서  뭐든 하시면서 더욱 사는 재미가 생겼다며 만면에 미소를 그득 담고 다니시는 모습이 활력이 넘쳐보여 좋다.

오늘은 아저씨가 갖다 주신,당신이 직접 농사 지으셨다는 감자를 계란과 함께 삶아서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데,

감자와 고구마가 보약이라는 내용이 방송된다.

심심해서 한 일로 인해 보약을 거저 얻어먹고 있으니 감사하고 미안하다!

 

내일부턴 햇고구마로 ,더군다나 정겨운 아주머니의 숨결이 들어있는 고구마를 깍둑 썰어 넣고 지은 맛있는 밥도 먹을 수 있겠구나!

더욱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삭막하다는 와중에도 여전히 차고 넘치는 정을 느끼며 흐뭇하게 살아줘야쥐!^*^

쓰레기 집하장에서 주워온 ,거의 먹지도 않고 버린 치킨 덩어리들을 고양이 샤미와 강아지 복실이에게 사이좋게 나눠주고 나니,하루가 완결된다.

자정이 넘어서야...

나보다 알차게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햇!크허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