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1일-마음 울렁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광화문의 한 건물 벽에 내걸린
도종환의 ‘단풍 드는 날’.
시구만 봐도 빨갛게 타오를 가을산이 연상돼
도심 속 작은 행복이었다.
나무들이 마지막 향연을 할 채비를 마쳤다.
성질 급한 몇몇은 벌써 울긋불긋.
깊어가는 가을, 발길이 닿는 곳도 많고
눈길을 붙잡는 곳도 많다.
그러나 경기침체의 여파일까. 해외보다 국내 여행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경북 영주에서 사과 따기 체험을 하며
수확의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충남 공주에서 토실토실한 알밤을 줍다 보면
마음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강원도 정선 민둥산의 드넓은 억새풀밭은
상념에 젖기에 제격이다.
바람 불어 좋은 날.
출렁이는 억새밭 은빛 물결.
황혼녘 서걱대며 속울음 삼키는 황금갈대 숲.
억새는 민둥산 허리나 들길에 자라는 풀.
갈대는 강가나 바닷가 습기 많은 곳에 사는 물풀.
바람불어 은빛물결이더니, 황혼 녘엔 황금 파도.
둘 다 눈부신 가을 햇살에
피와 살을 말리며 진한 슬픔을 삭인다.
산들바람에 뼈를 씻어 속을 비우고,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다.
억새와 갈대는 ‘바람의 사리’다.
너희들 참 외로웠구나.
그래서 훨훨 자유롭구나.
속을 텅 비워서 더욱 꼿꼿한
대지의 ‘미라 꽃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