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심도를 내려오며... 식사를 마치고 섬 일주를 계속 했다. 폭 500m 길이 2km 정도로 섬 전체 면적이 대략 10만평 정도인 지심도는 선착장에서 섬 중앙의 넓은 잔디밭까지만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었다. 그곳까지의 길이 섬 전체의 일주의 반정도였고, 그곳부터 나머지 반을 더 보기 위해 가야하는 길은 포장되지 않은 작은 오솔길이었다. 그 오솔길은 아직 사람들의 통행이 많지 않은 좁고 길이었고, 가끔씩 작은 나뭇가지들이 길을 덮고 있는 곳도 있었다. 그 좁은 길들을 걸으며 우리가족이 느낀 한가지는 섬의 나뭇잎들이 유난히 반짝거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나뭇잎들이 일부러 닦아 놓은 듯 반짝이고 있었다. 구불거리는 좁은 길을 걷다보니 써치라이트를 보관한곳, 망루 등 일제시대 잔재가 나타났다. 아직도 생생한 그 잔재는 서러웠던 역사를 한 부분을 아직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망루에서는 바다 쪽 바위 위로 길이 나 있었다. 그곳으로 내려가니 암석으로 둘러싸인 섬의 동쪽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동안 파란 바다 구경을 한 뒤 써치라이트를 보관했던 곳까지 되돌아 나왔다. 그 창고 앞쪽으로 경치 좋은 대나무 숲이 하나 있었다. 섬 곳곳에 꽤 많은 대나무들이 있었지만, 창고 앞쪽 대나무 숲이 가장 예쁜 모습이었다. 대나무 숲에서 나오니 이번엔 매화꽃밭이다. 하얀색 매화가 눈부셨다. 그 꽃을 배경으로 우리가족이 사진을 찍고 있을 때 관광객 한분이 우리가족에게 다가왔다. "이런 좋은곳에서는 가족이 함께 찍어야지 않나?" 그렇게 말하시며 가족이 함께 사진 찍기를 권했다. 아직도 우리사회엔 재미있고 마음 고운 분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꽤 많은 걸음을 걸었나 보다. 매화 꽃밭을 나와서는 가끔 애들의 투정이 터져 나왔다. 경치 좋은 대나무 숲이며, 매화 꽃밭도 아이들의 투정을 막지는 못했다. 그때쯤 부두 700m의 이정표가 보였고, 몽돌해수욕장 가는 이정표도 함께 나왔다. 아이들이 힘들어했지만 물수제비 뜨기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현석이 다솜이의 투정이 좀 잦아들었다. 물수제비 뜨기는 물 가까이 갈 때면 아이들이 즐기는 놀이다. 가파른 비탈을 걸어 내려갔다. 해변에 내려가 꽤 실망을 했다. 멋진 몽돌 해변을 기대했는데 해수욕장은 정말 손바닥만하다. 그것도 커다란 어른 손바닥이 아니고 갓난애기 손바닥이다. "이게 해수욕장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꺼낸 아이들이 "그래도 물은 맑아..."라며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둥글고 납작한 돌들로 물수제비뜨기를 했다. 바닷물은 물결이 거칠어 세 번이상 물수제비뜨기가 어렵다. 몇번 돌을 던지다가 아이들은 예쁜 돌을 찾는다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날이 흐려지고 있었다. 장승포에서 섬까지 들어오는 배를 몰았던 선장이 남풍이 불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말이 맞을 것 같았다. 우리는 몽돌해변을 빠져나와 부두에 돌아가는 것으로 섬 일주를 끝마쳤다. 섬 일주에는 2시간 30분이 소요된 셈이다. 부두에서 장승포로 향하는 배에서 이번 여행을 돌이켜 봤다. 이번 여행은 아이들에겐 작은 모험과 같은 여행이었으리라. 나무들이 하늘을 덮은 좁고 어둑컴컴한 숲길을 헤치며, 음침한 탄약고를 돌아보며 탐험가 같은 생각이 들었으리라. 물론 어른들에게도 아름다운 동백꽃을 보는 즐거움도 컸고, 숲길 곳곳에서 파란 바다를 보는것도 아름다움도 좋았다. 장승포에서 대전으로 돌아와 여행은 마무리 되었다. 삶의 힘들 때, 힘들진 않더라도 도시의 시멘트 벽들이 괴물처럼 느껴질 때 아름다운 지심도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떠오를 것 같았다. <에필로그> 지심도 동백은... 서천 마량리의 동백은 텔레토비 집처럼 생겨 아이들이 좋아했었다. 동백꽃을 보러 가자는 여행 제의에 아이들은 먼저 그 동백을 생각했었다. 지심도의 동백은 하나 하나의 모습도 예뻤지만 군락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포장된 길보다는 아직 맨 땅을 걷는 길이 더 길은 지심도를 돌아보고 이곳은 맨땅을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