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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왕이랑 결혼하지 그래?


BY kyou723 2007-05-15

남편이 일하는 곳의 독일인 동료에게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다.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된 궁전이 자신의 집 옆에 있다나. 후훗.. 자신의 집이 그 고성 옆에 있는 게 아니고... 표현에 따라 재미있게 들려진다.

오리고기를 소스에 발라 오븐에 구은 요리와 간단한 야채샐러드, 후식으로는 케잌과 과일 등을 내놓았다. 고기의 양이 다소 많았지만, 소스의 향과 어우러진 고기가 먹음직스러워 주변 상황 볼 것 없이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저녁상을 물리고, 산책을 하자고 한다. 그가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며 여유를 즐긴다는 고성의 정원은 다름 아닌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샤를로텐부르크 궁전이었다.



이 궁전은 바로크식 건물로 1695년에 지어졌고, 전쟁으로 불타는 바람에 현재는 어느 정도 복원된 상태이다. 남편 왈 ‘10여 년 전에 유럽 배낭여행 와 이곳에 왔을 때 한창 공사중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간헐적으로 콘크리트 더미가 오가고, 어울리지 않게 먼지트럭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배를린은 산이 없고, 평지인데 이곳 정원 안에는 그리 높지 않지만, 이들에게는 높아보일 것 같은 구릉이 있었다. 모두 흙을 얹어서 만든 작은 구릉이라고 하는데, 너무 자연스러워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 구릉을 오르는 게 ‘등산’이라고 하면 등산일 게다. ㅎㅎ.. 이 구릉에 오르다보니 등산하다 쉬라고 하는 것인지 벤취도 눈에 띈다. 이들에게 백두산과 한라산을 구경시켜주고 싶은 욕망이 인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의 멋스러운 계절별 느낌을 만끽하게 해주고 싶다.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중앙 건물인 크노벨스도르프 프뤼겔(Knobelsdorff Flugel)이 있는데, 왕들이 사용했던 식당과 19세기의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는 로만틱 갤러리 등과 도자기 컬렉션도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인 것 같았다. 이날은 입장이 파장시간이어서 들어가지 못했고, 나중에 다시 와서 이곳 식당에서 근사한 저녁 한 번 먹어보자고 한다. 아무튼 프리드리히 1세 국왕이 부인인 조피 샤를로테 왕비의 이름을 본 따 만든 여름별장이라는데,정원이 어마어마하게 넓다. 초록이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을 시녀와 하인들의 수종을 받으며 사뿐이 걸어다녔을 왕비의 모습이 자연스레 캡쳐된다. 우아한 드레스 속 풍만한 패티코트로 잘록한 허리를 만들고, 레이스 나풀거리는 앙증맞은 우산을 쓰고 정원을 배회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아무리 왕비라도 아내를 위해 이렇게 거대하고 아름다운 별장을 만들다니...


곁에 있는 남편에게 괜히 딴지를 건다.“어떤 아줌마는 남편이 여름별장도 지어준다는디....누구는 뭐할까?” 남편이 이럴 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꼭 응수를 하는 것이다.   “헤헤...그럼 왕이랑 결혼하지, 왜 나랑 결혼했어? 고놈의 왕은 와이프 별장 하나 지어주려고 백성들 허리 많이 휘게 했겠구만...”  우리부부의 오고가는 대화의 핑퐁을 알고싶어하는 동료에게 남편이 독일어로 설명을 하고 함께 웃는다.  그 동료 왈 ‘큰 딸 주은이가 예쁘니 담에 왕자랑 결혼시키면 된다’고 했다나...ㅋㅋㅋ,,.  그렇담 지금부터라도 딸네미 왕비연습이라도 시켜볼까나...왕자한테 ‘장모님’이라는 소리 듣는 것도 싫진 않겠지.  그렇잖아도 지난 주 내가 다니는 독일교회에서 진짜 왕자를 보았다.  독일의 마지막 왕손이라는 그는 영국의 찰스황태자와도 친분이 두텁다고 했다. 정말 얼굴이 갸름하고, 파리하면서도 귀티가 잘잘잘 흐르는 게 심상치 않아 보였다.  특히 군악대인지, 왕자 전용 오케스트라인지 모르겠지만, 악기들을 대동한 연주가들의 멋진 하모니도 왕자의 귀티를 돋보이게 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영국의 찰스황태자나 그 아들들도 그렇고, 유럽의 작은 나라들의 왕자들을 볼 때도 귀티가 있기는 하나, 핏기없고 유약해보이는 느낌이 남성다운 이미지를 사라지게 하는 것 같다. 역시 그래도 난 듬직한 등판과 혈색도는 거무튀튀한 우리 영감이 최고여!!

주책맞은 아줌마, 7살 큰딸에게도 한 마디 던진다.“주은아!!! 너는 왕자랑 결혼하고 싶어?” “엄마는...왕자가 어디 있어요? 동화책 속에서나 나오는 거지...”

“뭐.. 너, 지난 주에 교회에서 왕자 봤잖아!!!”“왕자가 뭐 그래요. 못생긴 것 같고, 왕자옷도 안입었잖아...”

그래... 남자는 모름지기 너희 아빠 같아야 하느니라. 난 다시 오락가락 팔불출 아줌마가 되어 있다.




박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