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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서재-희구당


BY dongsil112 2007-06-12

 
소설가의 서재 -희구당
 
배꽃향기 물씬 풍기는 유월.
논두렁길을 날아올라 목사동 고즈넉한 한옥집 마당에 문향이 퍼진다.
유월 팔일은 이들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다.
2002년 바로 이날 시골 소읍에서 십여명의 아줌마들이 뜻을 모았었다.
독서와 문학과 고향의 문화를 서로 나누기 위한 모임을 결성한 것이다.
이른바 "자운영독서회".
이날이 바로 모임이 결성된 지  꼭  6년째 되는 날이다.
지난 6년 동안 단 한번도 거르지않고 매달 필독서를 선정해서 독서회를 가져왔다.
가정의 모범적인 독서생활의 변화를 주도해오면서  지역 사회 활동도 앞장서서 할 정도로 역량있는 주부들의 모임인 것이다.
자운영독서회 회원들은 이날 독서회 고문이자 소설가인 이재백(69세) 선생 댁을 방문했다.
주렁주렁 광주리에 점심먹거리와 책꾸러미를 옆에 끼니 모처럼의 야외 나들이인 셈이다. 
지난 달  광주전남민족작가회의에서 주관한  518기념 시민과 함께하는 오월문학제 행사의 하나인 가족시`산문낭송대회 "이 땅의 눈물곷들이여" (5월16일개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들은 전남 지역은 물론 인근 광주 남원 서울끼지도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중견 작가들을 초빙해서 매년 강연회를 갖고 시화전및 시낭송 행사를 통해 많은 문인들과 교류를 해오고 있다.
 
이재백 선생은 6천여 평에 달하는 배농사를  지으면서도 끊임없는 창작 열기를 불태우는 이 지역 문인중의 큰 어른이시다.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신 선생은 월간 문학 신인상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하셨다.
2006년에는 창작집<돌각담>이 문화관광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독서회원들에게는 늘 문단데뷔의 욕심보다는 고급독자로서의 나아갈 길을 강조하시며 생활속의 독서를 강조하곤 하신다.
곡성군 목사동면 신전리 369번지에 위치한 선생의 서재는 많은  문인들의 사랑방으로서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직하다.
논두렁길을 지나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대문을 들어서자 유월의 싱그러움이 화사하게 눈을 적신다.
 왼편엔 갖가지 나물들이 밭고랑마다 줄을 맞춰 다정스레 미소를 띄운다.
맞은 편엔 범상찮은 스테인레스 기계가 눈길을 끈다.
배즙짜는 기계라고 한다.
수확하기가 무섭게 손수 배즙을 짜서 전국의 문인들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모습이 자그마한 정성으로는 결코 이룰수 없는 모습일터이다.
 고인돌만큼이나 거대하고 평평한 바위가 마당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걸터앉아 책을 읽거나 시라도 읊고 싶도록 문향을 풍긴다.
마당 여기저기 엉성한 듯 쌓아올린 돌탑이 소박한 선생의 성품을 그대로 닮은 듯 살풋 웃고 있다.
 

 
선생의 서재는  기쁠 희(喜), 두려워할 구(懼), 집 당(堂)자를 써서 "희구당"이라고 명명한다.
'기쁠 때도 항상 조신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서재가 어쩌면 선생님 집안의 역사를 대변하는 가훈이리라.
얼마 전 통독한 최인호님의 <상도>에서 보았던  "술잔을 넘치게 따르지 말라"는  계영배의 교훈이 문득 떠오른다.
조상님의 손때가 묻은 서책들을 병풍처럼 벽에 두르고 선생이 젊은 문학도였을 시절의 고뇌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지금은 폐간된 지 오랜 빛바랜 문학잡지들이 빼곡히 책장을 메우고 있다.
고조모님이 적적하실때마다 쓰셨다는 필사본을 꺼내시며 집안의 역사 자료의 보관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니 오래된 책의 가치에 대해서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아래사진이 그 빛바랜 한지 책이다.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적적한 시간들을 글을 쓰며 달랬을 선생의 고조모님.
단아한 한복차림으로 쪽진머리를 하고 다소곳이 서탁에 앉아 글을 쓰시는 모습을 그려본다.
150여년 전 붓을 먹물에 묻혀가며 고독과 문학을 벗삼았을 한 아줌마의 모습이 선생의 창작열기에 더불어 우리들 모두에게 한 편의 소설로 태어나리라 기대해본다.  
 

 
오랫동안 앉은뱅이 책상에서 글쓰기를 해 오신 선생의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참아왔을 세월을 상상해본다.
얼마 전에 들여놓은 허름한 긴다리 책상이 앉은뱅이 책상과 나란히 놓여있다.
그 위엔 아마도 요즘 집필중이신 작품 개요가 한눈에 들어 온다.
알전구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반사되고 있는 글귀로 보아 얼핏 장편소설을 구상하고 계신 모양이다.
한 독서회원이 용기를 내고 서가의 헌 책을 빼어 본다.
역시 폐간된 60년대 문학잡지이다.
시드니셀런의 작품이 보일듯 말듯  서가 안쪽에 꽂혀있는 것이 얼추 서른 권은 넘은 듯 보인다. 
'육당 최남선선생은 신문 한쪼가리라도 절대 버리는 법이 없었다'는 일화를 들은 기 억이 새삼 떠오른다.
서재 뒤편에 차근차근 모아둔 신문지까지도 고가와 어울려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을 사는 요즘사람들에게 시사하는 게 크다 할 것이다.
 

 
마당 가득 푸른 잔디가 초록빛 운동장을 수놓고 한쪽 구석에선 포리똥(보리수)열매가 선홍빛 수줍음을 머금고 흐드러지게 열려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정오 무렵.
 배는 솔솔 고프기 시작한다.
 가죽나무그늘 아래 싸온 짐꾸러미를 펼치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무공해 상추에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노릇노릇하게 불판에 굽고 집된장에 집에서 담근 복분자주에.....
맛있는 점심 식사 후에 나눈 담소 또한 바쁜 일상생활에서 이만큼이나 여유로웠던 때가 또 있었던가.
마냥 놀기는 희구당 나무 그늘만한 데가 또 있을까마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또한 다음을 기약하고 있다.
 

 
넓적바위에 모두 걸터앉아 한컷 누르니 그게 바로 추억의 소중한 한 장면이 될터이다.
농촌의 어디나 이때만큼 바쁜 시절이 또 있으랴.
그야말로 농촌은 대목이다.
천지의 곡식이 때를 맞춰 씨를 뿌려야  가을에 탐스러운 열매가 열리듯 곡성 고을의  밭두렁 논두렁마다 깨 심으랴 콩 심으랴 모내기 하랴 바쁜 한나절이다.
자운영독서회 초창기 맴버로  6년째  활동하는 이현자씨도 이 날 놉(인부)을 얻어 모내기를 하느라  참석 못한 걸 못내 아쉬워했다.
우리들의 일상은 늘 바쁘기짝이 없지만 한 번쯤 인생을 뒤돌아봤을 때 책 읽는 시간만큼 소중한 시간이 또 있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늘 넉넉하다.
만나면 마음으로 반기며 책을 통한 인사가 이어진다.
'요즘은 이런 책의 이런 대목이 생각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인사인가.
 

 
 
 
 
 


고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