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바라보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제게 요즘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았던 그림들을 이제는 갖고 싶다는 거죠. 그래서 미술품 경매시장을 기웃거리는 중이었는데 어제 충격을 받았습니다.
COEX 3층 컨벤션홀에서 열리는 '제1회 아트옥션쇼'에 갔었는데 그림 볼 욕심으로 9월 12일부터 16일까지 전시기간 내내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1인당 만원)을 산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입찰을 통해 그림을 사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내 주머니 사정에 맞는 그림들을 골라보려고 했지요. 마침 박수근미공개작품전, 제2회 White Sales전, 제108회 근현대, 고미술품전이 1부, 2부로 나뉘어서 전시가 되기 때문에 꼼꼼히 보았답니다.
COEX 컨벤션홀 3층 아트 옥션쇼 입구 1층 대서양홀 앞 프리펑션 존앞에서 반대편 전시장
박수근의 미공개작품 9점이 공개된 전시장 (15일 가보니 작품 한 점이 없어졌더군요.)
입구 왼쪽에서는 일본, 프랑스작가가 판화로 제작한 1900년 근대 한국의 풍습, 복식, 생활전이 있어서 스크랩북을 통해 직접 사진으로 100여년전 조상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어요.
너무 자세히 보다보니 친구와 동선이 엇갈려 무려 2시간 동안 서있었던 터라 잠시 쉬러 휴게광장에 갔더니 한쪽에 온라인경매장에서 몇몇 분들이 열심히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더군요. 마치 주식장세를 바라보는 듯한 눈길로.
여러분! 앤디 워홀 아시죠? 거 왜 마릴린(메를린이라 해야 옳은 발음이라데요) 먼로 사진 수두룩 찍어놓거나 통조림깡통 찍어놓는 미국 작가말이죠. 그 양반의 조그만 작품 '자화상'에 무려 27억이 붙어 있더군요.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은 18억. 사팔눈 인물을 주로 그리는 중국작가 워중지엔의 작품은 7억. 아아아! 저 어제 5도 지진이상의 충격 받았습니다.
에이그! 내 주제에 그냥 그림이나 감상할 것이지 가격은 무슨 가격확인? 낙찰가에 붙은 동그라미 세다가 오히려 작품을
제대로 음미하지도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발길을 돌려 만만하게 생각하는 근현대, 고미술부 전시장에 갔더니 이응노, 김환기, 이우환, 사석원, 장욱진, 박서보, 김흥수화백의 몇 천만원 내지 몇 억짜리 작품들이 다시 저를 주눅들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특히 천경자의 1989년작
'여인'은 6억, '테레사수녀'는 1억이더군요. 작품이 뚫어질 정도로 한참을 들여다보다 나왔습니다.
천경자 '여인' 천경자 ' 테레사 수녀'
그렇다고 제가 포기할 사람이 아니지요? 이제는 내 주머니 사정과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작품들만 눈여겨 보기로 작정하고 신진작가들 부스로 발길을 돌렸는데 아주 독특한 작품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동재의 ' ICON'(오백만원)이었는데 쌀 한 톨을 검은 바탕의 캠퍼스에 일일이 붙여 남자 얼굴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들였을 공력과 땀방울, 정성을 생각하니 눈물겹더군요. 김형근의 '옥잠화 여인' (천만원)도 인상적이었어요.
이동재 'ICON' 김형근 '옥잠화'
개인적으로 이응로의 '통일무'라는 작품이 뇌리에 박혀 있고, 친구의 중학교 은사셨던 이숙자의 '보리'연작도 무척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뻔 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묵란도' (2억)진품을 볼 수 있어 감격스러웠지요. 미술관, 박물관 전시때 유리벽 밖에서만 보다가 육안으로 보니 군란들이 상당히 치밀하고 섬세하더군요. (에구! 누가 보면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겠네) 특별히 오세훈 서울특별시장께서 기증한 민복진의 '환희'라는 청동조각이 일백만원에, 현대자동차에서 기증한 페트릭 휴즈의 작품도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이응로 '통일무' 민복진 '환희'
이숙자 '청맥' 페트릭 휴즈 'Shutter'
제가 한참 보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어느 아줌마가 큐레이터와 함께 다가와 '나 이 그림 정말 맘에 든다. 나도 좀 껴줘'
라고 하더군요. 저도 관심이 있었던 석철주의 작품이었습니다. (검은 가죽자켓에 흰 바지를 입으셨던 아줌마! "존경합니다. 이 작품은 마지막 경매일에 보니 3백 6십만원에 낙찰되더군요.)
발디딜 틈 없이 빼곡한 응찰자들 경매도중 윤항락 작품 앞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 16(일)은 오후 5시까지 열리는 제1회 아트옥션쇼에 저는 하루만 빼고 매일 다른 친구와 가서 봤습니다. 초단위로 20만원씩 뛰는데 순식간에 일백만원에서 천만원대로 경매가 진행되더군요. 낙찰이 되면 진행자가
'땅'하고 지휘봉을 친 뒤 가차없이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기를 40여회. 대단들 하시더군요. 도대체 어떤 분들이 경매에
참여하나 눈여겨 보았습니다. 모처럼 현장감 있는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하여튼 그림이 있어서 행복했고 그림을 실컷 볼 수 있어서 흐뭇했던 시간이었으니까요.
최중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