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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단상> 베를린의 가을, 그리고 하늘


BY kyou723 2007-09-19

9월 들어 기온이 뚝 떨어졌다. 한국이라면 푹푹 쪘을 8월에도 이곳에선 오리털 파카를 꺼내입을 때도 있었다. 물론 추웠다 더웠다 변덕스런 날씨를 적응하지 못해 질긴 감기에 KO된 탓이기도 하다. 때론 겨울옷을 정리하지 못하게 하는 날씨가 얄밉기도 하지만 여름에도 겨울옷을 입어볼 수 있다는 즐거움도 제법 쏠쏠하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선심 쓰듯 태양이 반짝 얼굴을 내밀 때가 고맙기만 하다. 이런 날은 약속이나 하듯이 히멀건 독일인들은 허물을 벗어던진다. 겨우 끈 하나 걸친 조각옷을 걸치고 태양을 숭배하는 듯 하늘을 향해 몸을 디민다.  한국에 살면서 뜨거운 햇볕을 피해 양산문화에 길들여진 탓에 태양이 대지에 내리면 이곳 사람들처럼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머리를 디밀지 못했다. 얼굴에 나기 시작하는 기미 주근깨와 비싼 선크림도 믿을 수 없는 자외선의 파격적인 시선이 두려웠던 탓이다.


 ▲ 샤를로텐부르크 궁전 정문의 하늘

드디어 깜짝햇볕마저도 아쉬운 고독한 겨울로의 진행이 9월부터는 시작되는 것 같다. 그와 함께 난 어쩌면 자연스럽게 하늘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하늘. 한국의 가을하늘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이곳 독일의 하늘도 내 시선을 고정시킨다.

친구 미나와 ‘운터 덴 린데’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 했었다. 네덜란드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꼭 바이킹 타는 것처럼 어지럽다고...  이곳도 가끔 하늘을 보다 구름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 바라보면 현기증을 일으키곤 한다. 가끔 부엌식탁에서 바라다보이는 하늘에 빨려들어가는 충동을 받은 적 있다. 독일의 하늘을 바라보면 구름의 움직임이 우리네 인생의 세월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빠른 구름처럼 앞으로의 인생도 빠르게 가리라는 아쉬움까지...


 


 


▲ 지게스조일러 탑 위의 하늘

한국에서 가져온 달력을 들여다보니 9월말이면 추석시즌이다.

지금쯤 서울은 추석상품이니, 추석명절로 들썩거릴 것이다. 아마도 추석명절 예산을 짜고 선물 준비에 열을 올릴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시댁과 친정을 무엇을 선물할 것인지 고민했었는데 오히려 그때의 부산함이 그리울 정도로 지금은 적막하다. 저녁 8시가 넘어서면 쥐죽은 듯 조용한 주변, 그들 문화에 순응하기 위해 시끄러운 두 딸들도 잠재워야 하는 억지스러움도 아직은 생경하다. 어느새 잿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시간의 고즈넉한 하늘도 어색하다. 서울의 저녁하늘은 왠지 활기차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고보니 친한 미나도 지금은 옆에 없다. 미나는 독일인과 결혼한 베를린의 내 친구다. 며칠전 남편과 함부르크 근처의 작은 마을에 있는 시댁에 간다고 했다.

미나와 난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암컷인 개와 고양이의 엄마인 그녀와 딸만 둘인 나는 공통점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평행선을 걷다보면 언제나 만나는 꼭지점을 발견하곤 했다. 보수적인 한국인 남편의 단점은 독일인 남편을 둔 미나에겐 장점이 된다. 서로의 어려움과 힘듦이 때론 서로를 돌아보며 위로를 삼는 계기가 된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미나는 가끔은 피렌체의 하늘을 그리워했다. 물론 유럽의 하늘이야 그 하늘이 그 하늘이겠지만... 자신이 느끼는 하늘의 색깔이 있는 것이다. 내 20대의 하늘의 색깔이 낭만과 감상주의적 산물이었듯, 미나에게 있어 피렌체의 하늘도 예술로 점철된 20대 낭만의 발현이었다.

미나는 결혼하면 시댁과의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는 나로 인해 자신은 조금 위안을 삼는 것 같다. 독일 남자와 결혼했지만, 자신은 한국여성들처럼 시댁의 어려움은 겪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래도 날 위해 한 마디 동병상련의 심정인 듯 이야기하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처음 결혼해서 독일어가 어눌하잖아. 말이 안통하니 하랄드의 부모님과 대화가 안되잖어. 그래서 벙어리 3년 했지 뭐야. 언어가 안되니 서로에게 스트레스도 없지. 그냥 난 벙어리로 있는 거구..."

언어가 안되면 무지 힘들고 이방인 같을텐데, ‘스트레스 없다’는 말로 미화시키는 미나의 본심을 나는 안다.

독일의 결혼문화는 한국과는 달리 부모에게 예속되거나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거의 보기 힘들다. 18세가 되면 대부분 독립을 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시부모님에 대한 책임도 그만큼 덜하다.

그래도 꼬박꼬박 시간을 내어 시댁을 향해 발길을 돌리는 미나가 정겹다. 미나에게 친정엄마는 그냥 엄마로 존재한다고 했다. 언제나 정겨운 어린날의 그 엄마로... 그렇게 이야기할 때는 무언가 모를 괴리감이 느껴진다. 친정과 시댁이라는 이분법의 논리에 길들여지지 않는 순수성이 부럽기도 하다.

페미니스트도 아니지만 순종적인 여성성도 갖지 않은, 주변인적인 사고로 딜레마에 빠져있는 나같은 한국며느리보다 물들지 않는 그녀의 천진난만함이 사랑스럽다.


 


▲ 빌헬름교회 건너편에서 바라본 하늘


난 고민한다. 멀리 있음에도 어줍지 않는 맏며느리 탓에 죄인같은 느낌이 드는 것, 전화를 해야 하고 죄송하다고 이야기해야 하고 그리고 무언가 의식적인 손놀림과 몸짓을 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움이 내 뇌리를 자극한다. 9월의 하늘이 잿빛이다.

미나가 돌아오면 내가 느꼈던 지금의 하늘을 이야기하리라.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넋두리를 풀어놓으리라. 나의 가을하늘이 맑아지도록....


박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