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rKH(아나키아)...그리스어로 '숙명'.
어느 날 노트르담 대성당을 살펴보던 28세의 빅토르 위고가 성당 한구석에 손으로 새겨진 이 단어를 발견하고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는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 위고의 대표작이자 낭만주의 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초연되어 전세계적으로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프랑스 뮤지컬 열풍을 몰고 있다. 지난 2005,2006년 오리지널팀의 내한공연에 이어 2008년 한국어버전으로 제작되어 공연 중이다.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비해 장엄하며 사색적이고 철학적 의미가 가득하다는 프랑스 뮤지컬을 단돈 ‘1,000원’에 관람하는 횡재를 했다. 드디어 천원의 행복에 당첨되었다!!! ‘서울시민 문화충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2007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입장료 1,000원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매월 1회 수준 높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2007년 최고의 문화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한 올해 처음 천원의 행복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갈라 콘서트였다. 15,000명 이상이 신청했다는데 여기서 당첨되다니 아싸~~!
방학이라 어린이용 전시체험만 다니던 터인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공연을 맛보게 되어 무척 기대가 컸다. 귀여운 아들(10살이지만 아직 귀여워 보임...엄마 눈에만^^)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외된 남편과 오랜만에 둘만의 데이트를 하니 일석이조 아닌가.
전석을 거의 곽 채운 관객들도 나만큼이나 공연에의 기대감이 가득 찬 듯 보였다. 2004년 초 리모델링으로 음향시설이 한층 보강되어 재개관된 세존문화회관 대극장은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예술의 전당보다 오히려 사운드의 깊이가 더해지지 않았나싶다. 개인 좌석 앞쪽으로는 해설화면 모니터가 장착되어 등장인물과 곡명이 나타낸다.
드디어 막이 시작되자 극중 집시 우두머리인 클로팽역을 맡은 배우 이정렬 씨가 가죽 자켓을 입고 고운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등장했다. 콘서트에서 사회를 맡아 뮤지컬 뒷이야기, 가수와 부를 곡 등을 소개해 주었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좋은지... 남편도 ‘인정’했다. 얼핏 포크 가수 한대수 씨와 살짝 비슷해 보이는 외모였는데 브로셔 사진을 보니 많이 다르다!
첫 번째 곡은 거리의 음유시인 그랭구아르역의 박은태 씨가 ‘대성당들의 시대’를 불렀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TV광고에서 많이 나오던 바로 그 곡이다. 가사가 원래 그런건지 ‘대성당들의 시대가....’하는 가사가 계속 반복된다. 한국어 가사는 윤상, 김동률, 박효신 등과 곡 작업을 해오던 박창학 씨가 맡았다. 박은태 씨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시작부터 아줌마의 마음을 심숭생숭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음 곡은 아마 우리 남편의 눈 동그랗게 뜨고 보지 않았을까~~ 아름다운 집시여인 에스메랄다 역의 오진영 씨가 부르는 집시풍의 노래 ‘보헤미안’. 에스메랄다 역엔 오진영 씨외 가수 바다, 문혜원 씨가 트리플캐스팅되었는데 세 남자의 사랑을 받는 역인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매력적인 목소리, 놰쇠적인 춤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에스메랄다의 매력에 빠져 약혼녀‘플뢰르 드 리스’를 배신하는 근위대장 페뷔스역의 김성민 씨가 ‘공포의 고음...배우들끼리 그렇게 부른다고~’으로 부르는 ‘괴로워’.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의 괴로운 마음을 정말 몹시 괴로운 목소리로 불렀다. 페뷔스는 양다리 걸치다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받지만 끝내 약혼녀 ‘플뢰르 드 리스’에게 돌아간다. 결국 행복한 고민? 김성민 씨는 헬스 트레이너를 했다는데 건장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차고 강한 음색이 인상적이었다. 현란한 무대 조명도 빼놓지 못한다. 두 여자사이에서 정말 괴로운 듯....
프롤로역의 서범석 씨가 얌전한 얼굴로 ‘신부가 되어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불렀다. 어릴 적부터 성직자로 길러져 강한 종교적 철학이 있던 그가 아름다운 여자 에스메랄다를 만나면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통받다 질투심에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도 콰지모도에게 최후를 맞는다. 앞의 페뷔스의 ‘괴로워’와는 또 다른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번뇌가 드러나는 곡이다. 등장인물 중 가장 선해 보이는 얼굴인데 나쁜 일을 많이 저지르는 악역.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 콰지모도가 등장해 ‘불공평한 이 세상’을 열창했다. 윤형렬 씨의 첫 목소리를 듣자마자 어찌 저런 목소리를 내는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음의 칼칼한 목소리... 고통과 아픔이 목소리 자체에 배어 있었다. 프랑스 오리지널 콰지모도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목소리가 흡사하다. 분장을 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매우 ‘꽃미남’과인데 목소리만 들으면 추악한 얼굴에 꼽추, 귀머거리, 애꾸눈에 절름발이인 ‘콰지모도’ 자체다. 에스메랄다에 대한 사랑과 프롤로 주교에 복종 사이에 갈등을 겪는다.
페뷔스(김성민), 프롤로(서범석), 콰지모도(윤형렬)가 함께 부르는 ‘아름답다’는 갈라콘서트의 하이라이트였다. 원제 ‘Belle'는 프랑스에서 44주간 1위를 차지하며 98년 당시 싱글 앨범으로 3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 뮤지컬의 대표곡이라 하더니 역시 명성 그대로다. 세 남자의 강렬한 하모니를 듣다가 아줌마 쓰러질 뻔했다. 사회자 이정렬 씨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이제 21세 된 신예 김정현 씨는 가녀리면서도 요부스러운 느낌의 플뢰르 드 리스역을 소화했다. 서울예대 무용과 2년이라는 그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뮤지컬 데뷔작이라고 한다. 맑고 깨끗한 느낌이 많이 나는 배우다.
엔딩곡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는 죽은 에스메랄다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콰지모도의 절절함이 묻어나는 곡이다. 뮤지컬의 실제 엔딩곡으로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의 종말을 묘사했다.
갈라콘서트는 실제 뮤지컬 공연은 아니었지만 출연 배우들이 총 12곡의 대표곡들을 선보여 완성도 높은 장면을 연출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실제공연을 1막 정도 실연했다면 더 큰 감흥이 오지 않았을까 싶은데 너무 욕심인가. 그래도 멋진 배우들과 그들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실제로 보고 듣는다는 것 자체가 '판타스틱'이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이정렬 씨는 왜 한곡도 안 불렀을까. 육성이 매우 좋아서 노랫소리는 얼마나 좋을까 기대를 많이 했는데 끝내 독창은 안하고 배우 인사 때 '대성당' 노래만 합창해서 아쉬웠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공연은 사실 티켓값이 만만치 않아 일반인들은 공연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단돈 1000원으로 수준 높은 세종문화회관의 공연을 즐기는 호사를 누려보자.
신청접수는 매월 5 ~ 7일
당첨자 발표는 매월 9일 15시
티켓 구입은 9일 15시 ~ 12일 19시
비당첨자 잔여석 구입은 매월 14일 10시 ~ 공연 당일
천원의 행복 홈페이지 및 예매 사이트는http://www.sejongpac.or.kr/happy_1000/happy_index.html
1월 28일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갈라 콘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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