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설연휴를 이용해 차례를 지낸다음 성묘를 다녀왔다.예천 진호 양궁장 주변 시설 정리로
인해 선산이 일부 매각되어 해동과 더불어 이장이라는 큰 일을 목전에 두고 있어 성묘와
함께 정초를 고즈넉한 산사에서 원을 세우며 시작해보았다.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두운대사가 창건한 용문사는 국내 유일의 회전식 장경각인
윤장대(보물 제684호)와 지붕의 균형미를 보여주는 대장전(보물 145호), 대추나무에 불상을
조각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 사천왕상과 일주문, 조선
세조 친필수결의 용문사교지(보물 729호) 등을 보유한 지역 최대의 문화 유산 보고이다. .
용문사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재중 하나인 윤장대.
국내 1,000여 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용문사에만 있는 불교 공예품이다.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로서,
경전을 장대 안에 넣어두고 돌려가며 읽은 데서 윤장대라고 이름하였다.
(보물 제 729호 예천용문사교지(醴泉龍門寺敎旨) )
(보물 제 989호 예천용문사대장전목불좌상및목각탱(醴泉龍門寺大藏殿木佛坐像및木刻幀) )
보물 제 145호인 대장전은 고려 명종(1173)에 건축된 맞배지붕 건축물로 대장전 전면의 기둥위에
연꽃,붕어,귀면이 새겨져 있는데 1984년 초파일 행사후 연등 수거과정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1000도가 넘는 화마속에서도 대장전은 온전하여 사람들은 3가지 조각품의 주술적인 방어력때문이라
하며 신비롭게 여겼다 한다.
국보 1호 숭례문의 화재소실로 온국민이 망연자실한 지금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세로로 쓴
현판이나 숭례의 한자의미에 화기가 들어있어 화를 화로 누르는 의미가 들어있었단 기사를 접하며
무언가 기적이라도 일어나 주지 하는 마음은 부질없는 미련의 티끌이겠거니 한다.
문화재 거개가 목조인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방치되다시피한 문화유산 대부분에 대해 대대적인 보호와
보존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아래 극락보전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가슴이 쩡하고 울릴만큼 푸른 하늘과 날아갈듯한 용마루와 고운 단청들을 조심조심 눈빛으로
쓸어담는 엄마 맘을 아느지 모르는지 아이의 발걸음은 토끼마냥 즐겁고 빠르다.
훌쩍 계단을 넘어 극락보전 안으로 성큼 들어서며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아이의 윤기어린 까만
머리칼과 어여쁘게 포개진 발바닥을 바라보며 때이른 봄아지랑이 눈앞에 어린다.
오랜만에 들른 공양처에서 운좋게도(?) 스님이 날라준 떡국 공양까지 하게되는 행운을 입어서
그릇을 닦아놓고 나오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는데.
돌아온 일상에서 접한 숭례문 비보(悲報)!
한발짝 나서면 수천년 ,수백년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문화재가 소곤소곤 말을 걸텐데,그 한걸음이
부족했던 우리의 바쁜 일상들이 불탄 숭례문과 함께 가슴속 천근의 무게로 자리잡고 있다.
(자료:사진 일부 문화재청 참조)
김성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