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2월은 봄을 기다리며 느끼게 하는 희망의 달이다. 매년 2월이면 봄의 전령사처럼 다가오는 축제가 있는데, 학교 등에서 벌어지는 ‘Fasching’도 그중 하나다. 독일에서는 보통 4월경인 부활절이 되는 시점에서 역으로 40일 전까지 축제가 이어지곤 하는데, 도시마다 그에 따른 카니발이 펼쳐지곤 한다. 요번 우리 딸 학교의 주제는 요정이었다. 독일에는 요정종류가 참 많다. 아마도 아이들의 꿈과 낭만을 살려주기 위한 발로가 않을까. 요즘 일요일이면 어린이 프로그램(KIKA)에서 ‘바비’ 에니메이션을 방영하는데, 나 또한 바비가 너무 예쁘고 구성이 좋아서 아이들과 즐겨보곤 한다. 우리 큰 딸은 바비가 방영되는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다. 바비 에니메이션을 보면 요정들이 보이는데, 얼마나 앙증맞고 사랑스러운지.... 아무튼 요정은 독일말로 Fee라고 하고, 복수로는 Feen이라고 한다. 2월이 들어서는 시기가 되면 백화점은 물론 의류상가 등에서 축제옷들이 진열되고, 구경하거나 구입하는 손님들로 들썩인다.물론 매년 열리는 축제이기에 형제나 자매끼리 되물림하는 경우도 있고, 이웃이 물려준 옷을 입는 경우도 더러 있다. 딸아이와 매장을 돌아다니며 요정옷을 찾아나섰다. 맘에 드는 옷이 딱히 없었다. 그래도 딸아이는 매장에서 맘에 드는 요정옷을 발견했나 보다. 보라색이 도는 화려한 드레스를 고른 딸아이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다. 나는 썩 맘에 들지 않았다. 큰 딸은 내 협상에 고개를 끄덕인다. * 둘째딸 유치원에서 뒷모습을 보이는 우리 딸... 그 옆 수녀복 차림이 둘째딸 선생님이다. * 삐에로 분장의 유치원 원장님 *둘째딸 유치원 정경 *선생님들까지 분장을 하고~~ *큰 딸 학교의 파싱축제에서~~ 한복 예쁘죠? *베를린의 교육시스템이 한 반에 2학년이 같이 공부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어쨌든 옆은 같은 반 2학년 언니들과 친구~ 아무튼 집에 돌아와 그동안 내심으로 생각했던 한복을 입히기로 했다.
학교에서 열리는 Fasching(파싱)은 매년 주제를 정해 해당 옷을 입고 학교에 가서 춤추고 즐기는 축제다.
마치 이월상품을 파는 듯이 정갈하지 않는 진열이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한 벌에 20유로를 호가하는 가격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물론 인터넷쇼핑몰도 이러한
축제옷들을 할인해서 판매하기도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탓에 그리 저렴하지 않으면 선호하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주로 써먹는 요법인 협상카드를 아이에게 제출했다.
“주은아, 이번 달까지 선생님이 너의 독일어 실력에 대해서 'Sehr gut'(정말 잘했어)이라고 말씀하신 경우에 다음 달에 엄마가 사줄게.”
큰딸은 집에서는 독일어를 잘 구사하면서도 학교에서는 약간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아마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 그래서 가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라는 조언을 많이 하곤 하는데...
선생님 또한 ‘주은이는 영리하고 모든 학업능력이 좋으니 괜찮다’고 하시지만, 엄마인 나의 욕심이 발동한 게다. 게다가 내가 갖고 있는 어줍잖은 한국적 소심함이 유전된 듯한 느낌도 있고...
“그래. 우리 주은이 이번 달에는 선생님과 독일어로 이야기 잘하겠지?”
“네.... 그럼 엄마도 약속지키세요.”
딸아이에게 확실한 동기부여인 셈이다. 2월 한 달 동안 아이의 요정옷에 대한 미련이 사그라들길 내심 바란다. 이렇게 소기의 목적 달성.... 너무나 얄팍한 엄마다.
파싱축제날은 학교와 유치원 등이 들썩였다. 요정옷을 입고 춤을 추고 먹고 마시며 하루를 즐긴다.
둘째딸을 데리러 가기 위해 유치원에 갔던 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의 즐거운 몸짓에 나 또한 녹아들었다.
겨울의 옷을 벗어던지고 생활의 활력을 찾는 듯한 한낮의 몸부림.
긴긴 겨울을 화끈하게 날려보내는 시도가 파싱축제의 본연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겨울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독일의 일상에 작은 액센트로, 봄을 맞이하는 예의로 열정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독일에 축제가 많은 이유를 살면서 알게 된 것 같다. 무료하리만치 지루한 듯한 일상 속에서 정열의 일탈을 꿈꾸는... 건전한 그들의 속내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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