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숨은 소우주, 솔방죽을 줍다.
제천역 밖으로 나온 나. 그러나 막막함이 밀려온다. 당초 배론성지를 목표했으나 먼 것은 둘째치고 교통편이 어렵다. 시외터미널서 원주터미널행 시외버스를 탄 뒤 40분간 성지순례를 하라고 하지만, 당일치기 코스로의 시간도 그렇거니와, 초행길엔 상당히 어렵다 싶다.
결국 나는 무턱대고 걸어나갔다. 역에서 직선대로로만 걷다가, 어느샌가 의림지로 목적지는 변경됐다. 제천 10경 중 제1경, 제천의 가장 명소라는 그 곳으로.
버스를 타지 않고, 마냥 걸었다. 이정표를 보면 6킬로미터라고 하는데, 홀로 걷는 외진 시내는 보다 멀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잠시 나는 옆길로 새게 됐다.
솔방죽 생태공원. 200미터 앞이라는 푯말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좌회전. 의림지에 앞서, 예정에 없던 사이드 메뉴를 하나 집어든 것.
무성한 갈대밭이 나온다. 그리고 그 옆을 유유히 흐르는 냇물. 바람에 흐드러지는 갈대가 청순한 여인의 머리결이 휘날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보자, 노랜 색이니... 금발의 제니? 외화에 나오는 금발 소녀를 연상케 한다.
학교가 빨리 파했나. 소년들이 자전거를 타고 노닌다. 28종 수목과 80여 야생초가 서식한다는 생태공원. 의림지에서 흘러나온 물을 농업용수로 받는 이 저수지.
바람이 거세다. 흩날리는 바람 소리, 그리고 공원의 노랫 소리, 사방에 펼쳐진 넓은 자연을 동영상에 담아본다.
여기는 스케일이 큰 공간은 아니다. 사방에 펼쳐진 평야는 광범위하지만, 그 가운데 위치한 이 공원은 아담한 습지. 혹시 이 글을 읽고 찾아왔다가 너무 작다는 느낌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자그마한 쉼터가 난 맘에 들었다.
독특한 새 한마리가 내 발걸음 가까워질때마다 멀리 날아가 앉는다. 여기는 소우주. 그랬다. 작은 우주 공간이었다. 새와, 숲과, 물고기가 한데 어울린 곳. 틀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그 틀안엔 너무 많은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멋진 감흥이다.
갑자기 흘러간 팝송이 떠오른다. 제목을 기억 못하겠다. 매우 구슬픈 멜로디에 여가수의 보컬이 실린 그 노래는, 어느 시골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대한 내용을 연상케하는 그런 제목이었다.
제천의 10경에는 들어 있지 않은 곳. 그러나 나는 마치 숨어있는 보물을 찾은 듯 만족하며 다시 채비를 한다.
아이리버 E100 시즌2에 전원을 넣고,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길을 계속 걸었다. 이전 자그니님의 커피 모임에서 득템한 앤의 1집 리핑 목록을 듣는다. 의림지로 향하는 길에 걸린 푸른 하늘을 보며 걷는 길. 그건 마치 바람의이름은아무네지아에서 와타루가 걷던 그 길과도 같다.
멋진 곳이다, 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