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의약분업으로 인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평범한 주부입니다. 그런데
Korea Times 8월 9일자 제 6면에 나온 한국의 의약분업에 대한 한 미국 의사의 객관적 입장을 읽고 많은 것을 느꼈으며, 우리 한국의 언론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서툴지만 번역을 하여 인터넷에 올리고자 합니다.
Medical Crisis in Korea (한국의 의료 위기에 대하여)
나는 현재 휴스톤의 베일러 의대에서 수련을 받고있는 비뇨기과 4년차 레지던트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현재 한국의 의약분업에 관한 귀 신문의 비뚤어지고 편파적인
보도에 대한 나의 깊은 실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에 있는 의대생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투표를 하고 있다는군요. 아마도 곧 의과대학 캠퍼스는 텅 비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한 기사는 귀 신문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군요.
미디어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귀 신문은 이 문제에 대해 일반대중들을 잘 교육시키고
그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멀리 미국으로부터 본 몇 가지 관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그러나 의료제도는 공산주의 사회나 전제주의 사회의 것 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부는 의료수가를 정하고 따라서 의사들의 수입도 결정하고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이러한 수가를 정함으로써 한국의 많은 의사들은 적절한 생활 수준도 유지하지 못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적절한 생활수준일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제가 의대에 들어간 유일한 목적이 돈은 아니었다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즐깁니다. 아팠던 환자들이 다 나아서 병원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내게 없습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의사수련을 받지 않았다면 수련의 과정을 마치는 일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견뎌야 하는 것인지 깨닫지 못 할 것입니다. 나는 4년간의 대학과정을 마쳤고 4년간의 의대수업, 3년간의 의학석사 과정을 끝마쳤습니다. 나는 아직 레지던트 과정을 3년 더 거쳐야 합니다. 이 레지던트 수련과정이 끝난 후에는 3-4년간의 펠로우쉽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만약 나의 미래의 수입이 나의 자식을 그들이 선택한 대학에 보낼 수도 없을 정도라면 내가 이 모든 힘들고 긴 과정을 끝마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의사가 되기 위한 이 모든 수련과정을 거친 후에 안락한 집에서의 생활을 기대하는 것이 그리 큰 잘못입니까?
사실 의사가 되기 위한 나의 수련 과정에 대한 보상은 법조계나 사업 쪽으로 진출한
나의 친구들에 비하면 매우 미미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제가 의사로서의 저의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의사들이 어느 정도의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품위있는 생활 수준을 보장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터무니 없는 것 입니까? 왜 의사들만 다른 식으로 대우를 받아야 합니까? 저는 저의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저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의무도 있습니다. 귀 신문에 실린 많은 칼럼들의 밑바탕에 깔린 논리로 인해 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논리는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때에 사용했던 논리와 똑 같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미 낡아빠진 미국의 DRG(diagnosis-related group) 제도를 채용함으로써 한국의 현재 의료제도는 의학계의 기술혁신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발전된 의료기술을 사용해도 그에대한 보상을 받지 못 하는 의사들이 최신 의료기술을 사용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 타당한 일 입니까? 이러한 무분별한 의료제도의 당연한 결과로서 모든 한국인들은 제 3세계 수준의 의료혜택 밖에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삼성의 최고 경영진 같은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질병을 치료받기 위하여 계속 미국으로 오는 것입니다. 미국병원에 1달러를 더 사용하면 한국병원에는 1달러가 덜 가는 것입니다.
셋째, 현재 의료위기의 원인인 한국의 의약분업 제도는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못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제도는 약사가 사실상 의사 면허도 없이 의료행위를 하도록 허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약사들이 의료행위를 하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의대를 갔어야 했을 것입니다. 약학은 의학이 아닙니다. 의사로서의 훈련을 받지 못한 약사와 같은 사람들이 의료행위를 하도록 함으로써 항생제와 같은 의약품 남용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여기 미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전을 조금만 바꾸려고 해도 반드시 의사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사들이야 말로 환자들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느 의료제도에서도 그 핵심인물은 반드시 의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누가 의료제도를 총괄하고 있습니까? 의사가 내각의 일원이 되어본 적이 있습니까? 한국의 의료행정을 책임지는 부서에 최근 임명된 장관은 의학교육조차 받지 않은 사람이더군요. 이러한 일은 미국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의약분업 제도를 굳이 채택하고 싶으시다면
현재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선된 의약분업제도를 채택하십시오. 미국의 제도는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수준의 의료혜택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험단계에 있는 최신 의학기술, 즉 최소 한도로 상처를 내지 않는 수술과 같은 것들은 아직 부를 소유한 사람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습니다. 최소 한도의 치료를 보장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병원에는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 수준의 치료는 돈을 많이 내는 사람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의료기술을 혁신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료계가 계속 발전함으로써 부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던 이러한 최첨단 의료기술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게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현재 미국에서 이루어지는 담낭수술입니다. 80년대 초에는 담석을 찾기 위해서 담낭을 절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복벽경을 통해서 절개 없이 담석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최첨단 의료기술 개발이 한국과 같은 의료현실에서 가능하겠습니까? 의사들에게 제 3세계 수준의 급료를 주면서 어떻게 최고의 의료행위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한국의 현재 의료 위기는 탐욕스러운 의사 때문이 아니라 정부와 국민들의 비현실적인 기대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의사들은 능력으로 따지자면 최고중의 최고입니다. 그들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의학기술을 발전시킬 물질적인 여유를 필요로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의료계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의사들이 반드시 그 핵심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Issac Kim Scott
Baylor College of Medicine
Houston, 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