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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시댁서 돌아왔네요!!!


BY 심심해 2000-09-12

결혼한 첫해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저는 홀로 차례상을 준비한답니다. 올해도 어김없었구요.
울 시어머님 추석전날 가니 당연히 안계셨지요. 저혼자 음식준비하고.... 어머님은 저녁이 되어서야 오셨답니다.

작은집은 보통때는 음식 다 해놓았을 저녁에 오는데 요번에는 아예 오지도 않았지요. 어머님은 무슨 일이 있는거 아니냐며 계속 잠을 설치시며 전화기만 붙드셨구요.
전 왠지 놀러갔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요....
알고보니 정말 놀러갔더라구요. 제주도로 가족들이 모두 여행갔더군요. 아버지 어머니 차례상에 정작 자식들이 아무도 없는 꼴이였답니다. 저의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그러니 손주와 손주며느리가 지낸꼴이지요!

처음엔 너무 억울하고 힘들고 우리부모님이 힘들게 사랑으로 키워준 딸이 기껏해야 홀로 시댁가서 뼈빠지게 일이나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하시겠어요? 하지만 이젠 제법 당당해졌어요.
똑같은 음식을 준비해도 예전엔 해놓고도 잘못했다 야단이나 안맞나 생각들고 그랬는데.... 정말 억지로 일했는데....
이젠 당연히 저밖에 할 사람이 없다 생각하니 왠지 제가 무지 중요한 사람인거 같구.... 음식도 꾀안부리고 더 많이 준비하고... 이젠 속도도 빨라져서 금새 전이 나오고 나물이 나오고 잡채가 나오고...

예전엔 늦게 돌아와서 해놓은 음식보고 짜네 싱겁네 별로 한것도 없네 하던 어머님도 이젠 더이상 잔소리안하시고 생전 표현한마디 수고했다는 빈말한마디도 못하시는 분이 맛있다 얘기하시고.... 많이 했다고 하시고... 조금씩 맏며느리로써의 내 자리가 확고해 지는 느낌이 드네요.

단지 요번 명절 화가 나는게 있다면 다른때는 명절 차례지내고 점심먹고는 친정으로 갔는데 올해는 울 어머님 당신자식들과 모두 함께 있고싶다고 해서 저는 오늘 친정에 못갔답니다. 그래도 이왕 못간거 기분나쁜 표 내지말자는 맘으로 지냈지요. 어머님은 12시도 전에 딸들한테 전화해서 언제오냐고 하시더군요. 우리 시누이들 모두 1시전에 도착했지요. 그럴땐 정말 울 시어머님 너무 이기적인것 같아 밉지만요.

남편과 아주버님들은 옥상에 올라가 새우와 조개를 사다 구워먹고 술마시고.... 정말 명절은 남자들만 좋은것 같아요.

낮에 시누이들 오기전에 차례지내고 좀 자고있는데 어머님 깨우시더니 시누이들오면 먹일 갈비하라고 하시대요. 그럴땐 참 밉지요. 당신 며느리는 보낼 생각 전혀 안하시면서 당신딸들 기다리고 당신딸 먹일 음식 하라고 할때는....
갈비찜 푸짐하게 해놓고 저녁들 모두 먹이고...
울 남편 낼아침 당직으로 출근해야 하기에 그 핑계대고 전 9시에 일어났답니다. 물론 울 어머님 자고가지.... 하셨지만요.

근데 울 남편 밖으로 나온 저에게 먼저 가라더군요. 아주버님들과 술 더 마신다고. 그래서 울딸 데불고 먼저 차끌고 집에 왔답니다. 저는 귀성길이 넉넉잡고 10분이거든요.

울남편 오면 분명히 못박을 거예요. 친정에 못가는건 요번이 첨이자 마지막이라고... 그래야겠죠?
시누이들이 멀리 살아 명절때 아님 얼굴보기 힘들다면 모르지만 전부 같은 지역에 살아 보통때도 놀러가고 그러는데 굳이 시누이들과 함께 명절에 있을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울 시누이들 이젠 홀로 일하는 제게 미안한지 다른 시누이들은 친정오면 손도 까딱안한다는데 많이 도와주네요.
설겆이도 시누이들이 다 하고....

울 어머님들도 조금씩 느끼시나봐요. 요즘 젊은 사람들 제사상에 뭐가 올라가는지도 모르는 세상인데 홀로 명절이며 제사며 알아서 다 챙기고 일하니까.... 어머님께 드린 10만원 도로 주시며 옷사입으라고 하시더군요.

결혼해서 내가 왜 부엌떼기로 일해야하나? 이혼도 생각하고 화도 나겠지만 꼭 억울한것 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제 자신의 경험상으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맏며느리란 자리가 물론 고되긴 하지만 조금씩 할 말도 하게되고 모두 조금씩 눈치도 보게되고요.

예전엔 울 어머님 제가 남편에게 상들어달라는 것도 싫어서 내아들 시키지 말라고 당당히 한마디 하셨던 분인데 이젠 울 남편이 설겆이를 해도 암말 못하신답니다.

당신이 아무일도 안하시니 그래서 작은어머님들까지 와서 일 하나도 안하거나 아예 안오시니 저한테 할말이 점점 없어지시지요.
저도 이젠 당당히 도련님에게 아가씨에게 남편에게 분담해서 일을 시킨답니다. 그 기분도 괜찮더라구요.

제 나이 이제 30. 결혼 4년이 지나니 이제야 조금씩 제 위치가 확고해져감을 느낍니다. 3년까지는 죽었다 깨도 무조건 억울하다는 생각만 들고 명절날이 곧 부부싸움하는 날이었답니다.
새내기 맏며느리여러분! 고진감래 아시죠?

저는 정확히 한달뒤 또 제사가 있답니다. 아버님제사요
저 말고는 아무도 제사날짜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지요.
제가 일주일전에 시누이들과 어머님께 알려드리고 준비한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전생에 죄가 많으면 맏며느리가 된다구요.
그만큼 힘든것 같아요.

명절날 모두 힘드셨을 우리 주부님들! 푹 쉬시구요 혹시라도 친정에 친정못간 올케가 있는분들~ 친정갔다고 쉬지만 말고 많이 도와주시고 올케님 친정갈 수 있게 힘좀 팍팍 쓰세요.
모두 수고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