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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둘째 며느리의 글을 읽고


BY 삶의 무게 2000-09-15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아줌마 닷 컴에 들어와서 여러가지 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그중 서러운 둘째 며느리의 글을 읽고나니 문득 동병상련이란 단어가 생각 나는군요.
갑자기 저의 경우도 쏟아놓고 싶어져서 이렇게 몇자 적어봅니다.

저는 3남3녀의 막내인 남편과 결혼한 지가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날과 추석은 물론 제사와 시어른 두분의 생신까지 항상 저희 막내가 도맡아 해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장 재산도 없고 못사는 저희가......(10년만에 어렵게 장만한 28평 아파트는 IMF때
남에게 넘기고, 지금은... 25평 전세 살이를 한답니다.)
큰 댁은 시아주버님께서 큰 사업체를 운영하시고 큰형님(동서)도 대형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랍니다.
재산도 수백억이 넘는다는 군요.
자녀들도 대학원생이거나 유학 중에 있답니다.
그리고 작은 시아주버님도 약사시고 둘째 형님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사랍니다.
모두가 우리보다 나은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게로 항상 명절 아침에 잠시 왔다가
밥만 먹고나면 바로 가버린답니다.
3형제가 모두 같은 도시에 살고 있고 부모님 계신 시골도 자동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계신답니다.
그런데 저는 결혼초부터 (당시 저도 전문직을 갖고 있었으나 2년 뒤 출산 때 그만 둠)
지금껏 한 번도 행사에 빠져본 일이 없었습니다.
남편과 부모님 그리고 모든 집안 식구들은 명절 전날부터 와서 당일 밤늦게까지 뒷 치닥거리는 당연히 제
몫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서들은 당일에 오면서 미장원에 가서 한껏 치장을 하고 곱게 한복을 입고 나타나지만, 저는 언제나
너무도 초라한 모습으로 부엌에서 일하던 꼴로 그들을 맞이한다는게 무척 속상하고 가슴이 아프답니다.
그리고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모든 제사상 음식거리를 막내인 우리가 다 부담하고 자기들은 부모님께 용돈만
2~30만원 드리는데, 시부모님께서는 그들을 더욱 대접하고 위한다는 것입니다.
과일이나 참기름 기타 등등...... 아주 좋은 것들만 고르고 골라서 깨끗한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서 형님들께 주시는데
우리에겐 팔 수 없는 낙과나 먹다 남은 음식들을 그대로 비닐봉지에 넣어서 아무렇게나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부모님께서 돈이 필요하실 때면 언제나 막내인 남편에게 전화를 하셔서 돈이 궁하다고 하신답니다.
큰 댁은 큰 사업을 하기때문에 항상 은행 이자를 줘야하니까 용돈을 달라고 못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효자인 남편은 카드 빛을 내서라도 필요할 때마다 보내드리거나 직접 갖다드린답니다.
이 달에도 그렇게 해서 시댁에 갖다드린 돈이 70여만원이나 되어 우리집 생활비와 맞먹게 되었는데, 나는 지금껏 남편에게조차
한마디의 불평도 못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내가 밉고 싫은데..... 우리 동서들도 나를 얼마나 바보 취급을 할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막하고
병이 날 것만 같습니다.
동서들은 벌써부터 얘기하더군요
자기들은 바빠서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제사를 모실 수 없으니 자네가 모셔야될 것 같다고.

저도 학교 다닐 땐 우등생이었고 장학금도 받는 총명한 아이였는데, 지금의 나는 왜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우리 아이들 학원 하나 제대로 못보내면서도 부모님 생활비는 꼬박꼬박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희 친정이 동서들의 친정에 비해 너무도 평범해서 모두가 얕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자격지심이 생겨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계시다 7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지금껏 아버지의 제사에 한 번밖에 참석을 못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제사날과 시어머님의 생신날이 같은 날이어서......시어머님께서는 생신 저녁 늦게까지 남편을 붙잡고 멀리(3시간 거리)
까지 처가에 제사를 지내러 간다는 것은 무리라며 못가시게 한답니다.
그 일로 남편과 한 두번 다투었지만, 매번 시어머님께서 붙잡는 바람에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젠, 비록 남편이 시아주버님들처럼 돈은 잘 못벌어도 마음씨와 인간성이 너무 좋아서 결혼을 결심했었던 만큼, 모든 것을 스스로 이해하고 삭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런저런 마음을 처음으로 남에게 털어놓았는데, 왠지 가슴이 시원치가 않고 더더욱 답답하네요.
아마 제 가슴에 맺힌게 너무 많아 짧은 시간 안에 다 털어놓을 수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이 곳에 오니 아주 당당하신 아줌마들이 많군요.
하지만 저는 이 순간도 그 분들처럼 당당하게 나설 용기가 없네요.
저..참..바보죠?

안녕히 계세요.
또 들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