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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 생각만 하면 심장이 뛰어요


BY 들국화 2000-09-28

저는 이 코너에 글을 처음 올린 답니다. 물론 컴퓨터에다 내 느

낌을 쓰는 것도 처음이고요. 항상 남이 올린 자료나 생각을 ?어

보기만 했고요. 며칠 전부터 '나 속상해'코너를 보다 비슷한 이야

기지만 소설보다 더한 이야기들이 많아 삼 일 밤을 세워 끝까지

다 보았답니다. 지금 내 몰골이 말이 아니지요. 남편이 한심한

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조금 목소리 톤을 높여 그만 자라고

할 정도였어요. 나의 남편은 화가 나면 목소리가 반 옥타브 올라

가거든요. 내가 여기에 처음으로 글을 올린 것에 대한 인사는 여

기에서 끝낼께요.
내 남편의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 좀 할께요. 8개월 전의 일이지만

나만 일방적으로 당해서 그런지 지금도 설거지하거나 청소하면

서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해지면서 심장이 아프

죠. 물론 여기에 글 올린 분들이 시부모나 시누이에게 당한 것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안되지만요. 일의 발단은 이렇답니다. 지난

구정 때였어요. 구정 전날 가서 일하고 차례지내는 것 옆에서 시

중들고 그 많은 설거지 끝내고 떠나려는데 시누이가 왔어요. 점

심먹고 가라는 것을 마다하고 그냥 나오니까 시어머니는 부엌에

시아버지는 거실에 그냥 계시더군요. 시누이가 현관에서 한마디하

데요. " 새 언니, 집안 행사에는 빠지지 마세요"라고. 머리가 하

애져서 아무 말 안하고 그냥 나왔어요. 내가 집안 행사를 밥먹듯

이 빠졌다면 시누이도 할말은 한거겠지요. 그런데요. 여기에 속상

해서 글쓴 많은 분들처럼 제가 '착한 과'가 아니거든요. 관습이

니까,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는 논리를 난 제일

싫어하거든요.

그러면 결혼 2년 동안 나와 시댁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말해 볼께

요. 나의 시부모님은 자식에게 돈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으로 이거

해가, 저거해라고 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장손이라 제사가 네 번

이지요. 신혼 여행 뒤 두 달 안에 제사 두 번, 시댁 집들이, 친

정 집들이를 했어요. 그런데 제사 때 시댁 고모가 한복을 입고

오라 하여 입고 가 조상님께 절을 한 열 번 한 것 같아요. 며느리

맞고 처음 제사라 친척들도 엄청 왔어요. 그 설거이 새 며느리가

다했지요. 열흘 뒤인가 제사가 있어 또 그렇게 했어요. 그 뒤 손

바닥이 하얗게 벗겨져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가을에 추석

지내고 제사 두 번, 어머님 생신, 그리고 구정, 아버님 생신. 아

버님 생신때는요. 시아버지 친척, 시어머니 친척 다 불렀어요.

25평 집에 한 25명 모이니 정신이 하나도 없데요. 시어머니 일하

시느라 고생 많이 했지요. 그리고 나는 설거지 하느라 고생.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설거지 도와주는 사람 없었어요. 모두 며느리

는 종년이니 그 많은 설거지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이지요.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수고했단 말하나 없었어요.


그 이후 시댁이 싫어지데요. 그래도 어버이날 선물가지고 찾아뵙

어요. 왜냐하면 시어머니에 대한 연민같은 것은 있었으니까요. 시

어머니는 그 집 하녀예요. 시아버지는 냉장고 앞에 서서 물떠오

라 하는 분이지요. 세상에서 하는 일이라곤 남 시키는 일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분 같에요. 그 뒤 제사도 가기 싫어 서울에

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공공근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두 번 가

는 거 한 번 갔지요. 전화는 결혼 뒤 1년 동안은 시어머니한테

한 달에 한 번 정도 했어요. 시어머니는 전화하면 '그래 잘있

다'가 끝이예요. 나 혼자 5분 떠들면 멀쑥하잖아요. 1년 뒤부터

는 두 달에 한번 했어요. 시부모님은 일이 없으면 절대 전화 먼

저 하지 않지요.

추석 때는 친정 엄마가 암이 재발하여 항암주사를 맞고 부작용

이 너무 심하여 시댁에는 사정을 말하고 내가 친정에 가서 제사

준비를 했어요. 그 때는 친정에 며느리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후

반기에도 제사 가기 싫어 학원 강사를 했어요. 학원은 밤에 가니

까 명분이 좋잖아요. 물론 돈도 벌어야하구요. 어머님 생신 때

부터 시누이 낮빛이 굳어져 있더군요. 인사해도 받지도 않고 말

한마디 안하대요. 나두 말안하고 시누이 아기만 이뻐했지요. 그

??는 아기까지 밉지는 않더군요. 시누이는 아마 추석과 제사

때 자기 엄마 혼자 일하게 하고 생일 상도 내가 직접 차리지 않

은 것이 미웠겠지요. 이해할 수는 있어요.(나요, 시누이 아기 낳

았을 때, 백일 때, 돌 때, 다 가서 보고 돈도 주고 했어요. 나,

이 정도면 최소한의 도리는 한 거 아닌가요).

나는 생각이 달라요. 모든 것을 조금만 바꾸면 서로 서

로 미워할 것이 줄어든다고 봐요. 먼저 내 부모는 내가 챙기자,

사실 며느리나 사위는 자식이 아니잖아요? 내가 내 마음이 가

서 부모님한테 잘하면 그만이지 그것을 남의 자식한테 강요할 수

는 없지 않나요. 나이가 50 이 넘었으면 할 수 없지만 왜 젊은 사

람들이 좋지도 않은 관습에 메여 사는지 모르겠어요. (나의 시누

이는 나보다 여섯 살이 어린 31 살이랍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

는 명문대를 나왔고 가장 진보적이라는 인문대를 나왔답니다).

나도 지금은 10년 어린 올캐가 있답니다. 올캐가 나의 엄마한테

못한다면 할 수 없는 것이고 잘하면 고마운 거지요. 나는 내 동

생한테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요. 다 자기 생긴대로, 자기

성격대로,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 아닌가요.

둘째, 부모님 생신 상은 외식하자.자식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외식하

고 사정이 되면 돈도 드리고. 누구도 일하느라고 힘들 필요 없잖

아요?

세번 째는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인데요. 연로하

신 부모님을 실버 타운에 모시는 것에 대해 죄책감 갖지 말자.

다시 시누이 이야기로. 그 이후 분하고 속상해서 시누이에게 전

화해서 따질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어요. 어머님도 안하시는 말

을 왜 아가씨가 나서서 하느냐, 그것도 부모님 다 계시는데서.

그리고 너의 집 행사가 많은거지 나는 기본적인 도리는 했다고

본다. 등등. 그런데 못했어요. 나, 남하고 안보고 살 수는 있어

도 싸우는 데는 소질이 없거든요.

그리고 남편하고 엄청 싸웠어요.(하긴 제사 때마다 싸우기는 했

지만 심각하지는 않았거든요) 이제부터는 추석, 구정, 부모님 생

신 때만 간다고 선언했지요. 한 두 달 싸웠어요. 난 그 때 내 요

구가 안먹히면 따로 살 것도 결심하고 있었지요. 싸우고 남편의

냉담한 얼굴과 등을 보면서 많이 슬펐어요. 한 번은 그러데

요. 일 년에 시댁 열 번, 친정 열 번 가자구. 돌아버리는 줄 알

았어요. 난 사실 친정 아버지 보기 싫어 친정도 가기 싫거든

요.내가 친정 자주 안가서 그러는 줄 아나보죠.( 엄마는 밖에서

자주 보고 엄마가 반찬해났다고 하면 가지러가고 해요. 길어야 1

년 사실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힘든데도 엄마가 김치

도 해주고 맛있는 것 해놓고 부르고는 해요.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너무 슬프고 열받아 소리를 고래

고래 질렀어요. 그 때 가 새벽 2시 였는데, 우리 아파트 사람들

무척 놀랬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 내 요구대로 하고 살아

요. 남편 혼자 제사가서 변명하느라 힘들었겠죠. 나는 내 남편

이 꼬박 꼬박 제사가는 것도 맘에 안들어요. 조부모님 제사만 가

면 되지 증조부모님 제사까지 꼭 가야하나요? 그렇다고 내가 가

지 말라고 하지는 않지요. 그 또한 자기 생각 이니까.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예요. 늘 시댁이 신경쓰이지요. 미안

한 것은 아니구, 관습이 주는 무의식 같에요..

오늘은 이 정도 끝낼께요. 긴 글 읽어주어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