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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댁이야기 ..........2


BY 주니 2000-09-30

백일을 어디서 할까 신랑이랑 신나게 토론하다 어머니께 전화가 왔어요, 아버님이 좀 피곤한거 같아 병원에 가셨더니 양쪽 신장에 주먹만한
돌덩이가(결석이라고 하죠) 있대요.그래서 입원을 하셨답니다. 저희아버님을 말하자면 저한테는 친정아빠와 다름없는 분이십니다. 놀래서 가보니 일단은 수술로 하는것보다 레이저로 깨는게 더 나을거 같다구 그러더군요.
그래서 그 때부터 아버님의투병 생활은 시작?瑩?..일주일에 한두번은 새벽 일찍 가셔서 레이저로 깨구 검사하구 하시는데 어머님이랑 동행을 하시죠.저희어머님이 관절염이 있으셔서 좀 많이 걸으시면 참으로 힘들어하십니다.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아다니시느라면 참으로 힘들겠죠.
다녀오시면 꼭 제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하신답니다. 너희아버님 때문에 참으로 힘들다구,뭔 그런 병이 다 있어 날 이렇게 힘들게 하냐구..그러실때마다 정말 우리 아버님이랑 같이 사는 분이 맞을까 의심스럽더라구요.
해 보신 분은 아실려나..? 그렇게 아프다네요.레이저 치료가 그거 하시고 오시는 날엔 퇴근하셔서 오시곤 꼼짝도 못하구 주무시기만 한대요. 결석이 깨져서 요도로 나오는데 그것이 나오지 못해 소변까지 나오지 않아서 그 때부터 돌아가신 작년 여름까지 배 한 쪽을 뚫어 그곳으로 호스를 연결해 소변 주머니를 차고 다니셨죠.그런데도 쉬지 못하시구(아들들도 둘 다 공무원인지라 사실 두 분의 생활비를 대어 드릴 능력이 되지 못해 그만 두시라는 말씀을 못 드렸죠.) 회사를 계속 다니셨답니다.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그걸 생각하면.....
그러면서 둘째는 태어날때가 되구 ...때마침 IMF가 터져 친정이 어려워지구 정신이 없었답니다.그래서 둘째도 몸조리를 친정서 할 수 없었습니다.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어머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시댁으로 오라구 하더군요,
정말 망설엿습니다.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다가 형님네로 가려구 마음을 먹구 조심스레 말했더니 흔쾌히 오라구 하길래 어머님께 말했더니 어머님왈,"너희형님이 나더러 너 몸조리 못하겟다구 그러더라.그냥 우리집와라.."그러시길래 다시 형님께 전화했더니 아니라구 오라구 하더라구요.그래서 다시 전화했더니 형님이 못마땅해 하는눈치더라구 가지 마시라길래 그냥 어머님댁으로 가기로 했죠.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서로 저를 맡기싫어 미루었다더군요. 그래서 시댁에 한 달전에 갔습니다.신랑이 아무래두 강원도서 아무때나 데려다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그렇게 왔죠.
와서두 만삭에 엎드려 다니며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너무 곰짝도 안하면 애가 큰다구 청소라두 열심히 하라시기래 그랬죠.애를 가지구 있어 에민한 탓인가? 참으로 서럽더라구요.자기의 딸이라도 저러셨을까?
언젠가 제가 시댁에 와서 저녁을 끝낸후 청소를 하는데 후니가 잠이와서 울길래 걸레를 나두고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재우는데 밖에서 큰소리가 나더니 신랑이 들어와 자기가 재울테니 저보구 나가서 마저 청소를 하라 그러네요. 나갔더니 저희 어머니가 화를 내시면서 걸레질을 하구 계셧어요.
"못난 새끼,내가 지 걸레질이나 하라구 저렇게 키었는줄 알아..."하시면서요. 어머님께 죄송합니다를 정말 거짓말 안 하구 백번을 하구 걸레질을 했습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그러다가 주니를 낳으러 병원에 갔죠.시설이 창으로 좋은 병원이라서 좋았습니다.저의 고모님(아버님의 동생) 따님,그러니깐 사촌 아가씨죠,아까씨가 저랑 같이 계시면서 후니를 봐 주시구 저는 누워서 삼일을 잘 보냈습니다.
퇴원하는 날..갑자기 어머님이 병실로 들어오시더니 열쇠를 받았냐구 그러네요. 방열쇠말예요.일인실이라서 열쇠가 있거든요. 그런데 저 들어와서 안 주길래 전 열쇠가 있는지도 몰랐어요.그러다가 퇴원하는 아침에 간호사가 열쇠 여기 있다며 주고 가길래 그냥 받아두었죠...
근데 어머님이 퇴원하는 날 아침에 제 병실에 들르지 않고 바로 원무과로 가셔서 계산을 하시려는데 열쇠를 반납하라는 말에 없다구 그런거 없다구 그러니 원무과 아가씨가 찾아보시면 있을거라구 하셨대요.한 성질 하는 저희어머님 거기 원무과를 뒤집어놓고 씩씩 거리며 올라 오셔서 제게 열쇠있냐구 그러니 영문도 모르는 저는 있다구 그랬죠.
그랬더니 '이 병신같은 년이 날 망신 시키네.이 나븐 년 시에미를 욕먹이는 년..."난리가 아니었습니다.아가씨랑 저랑 너무 놀래서 그냥 보구 있으려니 계속 소리를 지르시더라구요.그래서 간호사들이 왔답니다.
자초지정을 듣고도 전 어머님께 계속 잘못 했다구 그랬어요.그래두 계속 화를 내시구 전 울고만 있구 ..간호사 여섯명이 달려와 저희어머님계 사정을 하더라구요. "어머님 저희가 잘못했으니 며느님 나무라지 마세요"
전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님은 밖에서 계신지라 이런 상황을 모르시죠.대충 짐을 싸고 아가씨랑 어머님 저를태우고 아버님이 차를 모셨습니다.대충 눈치챈 아버님 어머님께 화를 내시더군요. 애기 낳은 애한테 뭔 짓 이냐구...
알고봤더니 오시기전에 아버님이랑 한판 하셨나봐요.그 화풀이를 저한테....후후
집에 오셔서 저흴 내려주고 아버님은 그냥 가시구 아가씨랑 저랑 어머님만 집에 들어왔답니다.제 2의 공격..."이 나쁜 년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을년...." 후후,전 그냥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어요."어머님 ,제가 괜히 어머님댁에 왔네요.안 왔으면 좋았을것을.."
그 말에 또 화를 내시죠.아가씨가 말려도 어?F게 할 수 있나여...그래서 더 버티지 못해 신랑이 오구 저의 주니는 태어난지 5일만에 광주서 구비구비 산을 넘는 강원도 현리까지 장장 8시간의 여행을 했죠.
그 날 너무 무리한 탓인가? 주니가 설사를 하는데 거기 현리는 정말 소아과라곤 없거든요. 의원이 있긴하는데 토요일 월요일이 끼어서 가지도 못하구.. 아예 먹지도 못하구 계속 설사만 하네요...신생아가... 가까이 잇는 가족진료소 가서 보이니 빨리 큰 병원가서 인큐베이터에 넣으라네요.아마 죽을것 같다구 그러면서..
울면서 구비구비 두 시간을 차를 타구 원주까지 와서 보였더니 일단은 인큐베이터에 넣으래요.설사로 탈수가 와서 전해질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래요. 태어날때 3.5Kg였던 주니가 설사 삼일만에 2,2kg가 되엇더군요.의사도 아마 살 지는 못할거라구 그러곤 가라 그러더라구요.
신생아 중환자실엔 아가만 있을 수 있다구.가서 입원하는것까지 보는데 그래두 우리 주니는 정상아였어요.다른아가들은 5개월된,6개월된 정말 태아상태같은 미숙아들이더라구요.
왜 그리 사람이란 간사한지 그것만으로도 정말 우리 애는 다행이다 싶더라구요. 오는길에 둘이서 얼마나 울었는지 가면 출생신고부터하자구 그랬어요.그리구...만약에 아이가 죽으면 밖에서 묻고가자구...(아이참 지금도 눈물이 난다...) 괜히 저걸 낳아서 우리가 죄만 짓는다구 그러구.......... 다행히 정말 기적같이 전해질도 정상수치를 찾아서 열흘만에 퇴원하엿답니다,,아멘...
어쨋든 정말 정이 떨어지더라구요.어머님한테.전 지금도 가끔씩 신랑이랑 싸울때면 어머님 애길 많이해요.그러면 안되는데..후후
그러다가 아버님이 한쪽 신장에 돌이 종양이란게 밝혀지구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시구 거기서 정말 죽을고비를 넘기셨죠. 한쪽 신장은 떼어내구 한쪽은 절개해 돌을 꺼내구.....대수술이었습니다.....덕분에 그런속에서 울 아들들은 백일이구 돐이구 그런거 한번 못하구 자랐습니다.
주니는 주니대로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참으로 힘들었죠.육체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