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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새댁들에게. 못된 새댁이.


BY 공주 2000-10-24

결혼생활에 실망하고 외로와하는 새댁들에게 저희 엄마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저희 엄마는 참 맘에 안드는 엄마셨어요. 엄마가 나에게 헌신적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못하고, 참 이기적이다라는 생각은 많이 했었지요. 예를 들면, 맛있고 귀한것 (내가 어렸을때는 바나나.... 미제 초코렛..... 미제 베이컨......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촌스럽지요?) 이 있으면 감추어놓고 엄마 먼저 먹고 남은것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셨지요. 재비새끼들처럼 입만 쫙쫙벌리고 있던 저희 형제들에게서도, 엄마 입은 입이고 저희 입은 주둥이입니까? 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지요. 그러면 엄마 말씀은,
엄마가 행복해야 너희들이 행복하단다. 떠들면 준것도 압수다.

매사에 그렇게 엄마가 행복을 먼저 챙기던 엄마가 서른이 넘으니까 이해가 되네요. 이해만 되는것이 아니고 저도 엄마 비슷해지고 있어요.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못하는 내가 누구를 행복하게 할수 있나요?

이곳의 많은 분들에 비해 전 시집에 참 못되게 구는것같아요.
시집에 얼마나 자주 가는냐하면 최소 이주일에 한번, 보통 일주일에 한번가는데, 그 시기를 정한것은 저예요. 시집에 얼마나 전화를 자주 하느냐하면, 특별히 할 말 없으면 전혀 안해요. 그렇게 하기로 제가 정했어요. 남편에게 그랬지요, 니네 엄마에게는 니가 안부전화해라, 우리 엄마에게는 내가 하마.
제 글을 쭉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돈은 참 신나게 뜯기는데, 그 외의 부당한 일은 당하지 않아요. 내가 시집에 어떻게 하는지는 내가 정하니 까요.
물론.
우리 시부모님이 좋은신분들이라서 마찰이 적은것일수도 있지만, 뻔히 아시기도 하거든요. 내가 뭉게봤자 뭉게지지가 않는다는걸요. 다리도 누울 자리가 있어야 뻗는것 아닌가요?

시집에만 못된것이 아니고, 남편에게도 못되었어요.
저,맨날 밥 안해요. 일주일에 두번정도? 나머지는 같이 나가서 사먹던가, 남편보고 퇴근길에 사오라고 해요. 요즘 직장을 옮기는 일로 한달정도 집에서 놀고 있는데, 남편도 네가 집에서 놀면 맨날 밥을 할줄 알았나봐요.
"밥을 하는 사람은 아내, 엄마가 아니고, 밥 먹는 사람이다."
틀린 말인가요?
솔직히, 아직 신혼이기때문에 내가 밥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을 진작부터 심어줄려고 의도적으로 조정을 하고있지요.
또, 전 맘만 먹으면 남편만큼 돈도 벌어올수 있지만, 일부러 그렇게 안벌어요. 남편의 한 60%정도 벌어와요. 왜나하면, 남편은 살림이 꽝인데, 전 살림은 잘 하거든요. 청소, 빨래, 다림질, 등등등. 저보고 계산적이라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억울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싶지 않아요.

전 남편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묻지도 않아요. 남편이 물어보지요, 데이트하자구.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으러 가자고. 제 남편도 툭하면 주말도 없이 일을 하고 하루에 열몇시간씩 점심도 못먹고 일을 하게 일복이 많은 남자예요. 저도 남편이 없어서 외롭다면 무진장 외로와질수 있는 처지에요. 그래서 전 남편없어도 영화보고 저녁먹고 즐길수 있는 조직을 가지고 있어요.
저희 아빠는 엄마를 두목이라고 부르는데, 저희 엄마도 각종 조직을 가지고 계시지요.

우리는 한번도 '이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적이 없는데....... 제 남편은 알꺼예요. 내가 이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걸. 남편이 있든 없든,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있든 없든, 내 인생, 내 행복은 내가 책임지니까요.
전 남편에게 살벌한 여자는 되고싶지 않지만, 최소한 당당한 여자가 되려고 노력을 해요.

....... 실은 나도 입만 살아서 주절주절 잘난척은 하지만, 실제로 그다지 썩 잘나가는 여자는 아니고요...... 뭐, 그래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산다는거죠.
남편과의 삐그덕거림으로 속 상해하는 새댁들이요......
힘 좀내셨으면 해서요. 남편문제 아니여도, '나의 문제'로 생각할꺼 많아요. 남편, 시댁, 이런것 잊어버리시고요, 어떻게 나를 내가 행복하게 해줄까..... 이런 생각 좀 하셨으면 해요.
서기 2000년입니다. 나 책임져줄 남자 없어요.